세계를 피로 물들인 ‘평화로운 명절’
  •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 호수 509
  • 승인 2017.06.22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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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에 전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일어났다. IS는 라마단에 맞춰 테러 독려 영상을 내보내고 테러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배후임을 자처한다. 10여 일 만에 230명이 사망했다.

올해 라마단(이슬람 금식월)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줄줄이 테러가 일어났다. 2017년 라마단 기간은 5월27일부터 6월25일까지다. 라마단 시작 5일 전인 지난 5월22일 영국 맨체스터 아레나 공연장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나 22명이 사망했다. 라마단 하루 전날인 5월26일 이집트에서는 콥트 교도들이 탑승한 버스에 무차별 총격이 가해져 최소 29명이 사망했다. 바로 그 이틀 뒤인 5월28일에는 이라크 바그다드 북부 대로변에서 일어난 자살폭탄 테러로 최소 10명이 사망했고, 또 그 이틀 뒤에는 바그다드 도심 시장에서 차량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결국 5월31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외교 공관 밀집지에서는 폭탄이 무려 1500㎏이나 실린 트럭이 폭발하면서 사망자가 150명이 넘는, 올해 최악의 테러가 일어났다.

ⓒAP Photo6월7일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알제리 출신 이민자가 둔기로 경찰을 공격했다.

6월 들어서도 테러는 그치지 않았다. 6월3일 영국의 런던 브리지와 근처 버러마켓에서 괴한 3명이 차량을 몰고 인도로 돌진한 뒤 흉기를 휘둘러 7명을 살해하고 5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6월7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하루 평균 3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대표 관광지인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둔기를 든 알제리 출신 이민자가 경찰을 공격했다. 6월5일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의 한 아파트에선 테러범이 인질극을 벌이다가 인질 한 명과 함께 사망하기도 했다. 가장 큰 충격은 이란에서도 테러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테러 안전지대인 줄로만 알았던 이란의 수도 테헤란 한복판에 위치한 의사당과 시아파의 성지인 이맘 호메이니 영묘에서 테러범이 총을 난사하고 폭탄 조끼를 터뜨려 12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다쳤다(50쪽 상자 기사 참조).

이 모든 사건이 겨우 10여 일 사이에 벌어졌다. 이유는 단순하다. 라마단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은 원래 평화로운 이슬람 최대 명절이다. 그러나 이슬람국가(IS)가 2014년 이라크 북부 모술에서 자신들의 왕국 수립을 천명한 뒤부터 라마단 기간에 전 세계 곳곳이 피로 물들었다. IS는 라마단 개시를 앞두고 세계 전역의 추종자들에게 테러를 감행하라고 선동했다. 올해에도 유튜브를 통해 “IS의 땅에 올 수 없는 유럽의 이슬람교도 형제들이여, (유럽) 본토에서 그들의 집과 시장, 도로, 광장을 공격하라”고 말했다. 테러가 발생하면 IS는 매번 배후를 자처했다. 이번 영국 맨체스터 테러의 경우도 치밀한 방식으로 보아 IS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 이란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 레자 세이폴라이는 테헤란 공격과 관련해 “테러범들은 이란 출신으로 IS에 가담했다”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IS는 자신들의 선전 매체인 아마크 통신을 통해 “IS에서 온 전사들이 테헤란 의회와 호메이니 무덤에서 작전을 폈다”라고 밝힌 바 있다. IS는 테러 당시 의사당 내부에서 찍은 동영상까지 공개했다. 라마단에 맞춰 테러 독려 영상을 내보내고, 테러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배후임을 내세우며 IS는 이번에도 자신들의 존재감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AFP PHOTO6월3일 영국 런던에서 차량 테러가 발생했다(위). 왼쪽부터 테러범 쿠람 버트, 라치드 레두안, 유세프 자그바(오른쪽).

하지만 모든 일을 IS가 벌인 것 같지는 않다. 추종 세력이 알아서 벌인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들도 있다. 영국 런던 브리지 테러의 경우 범인들은 차량과 칼을 동원했다. 이른바 ‘DIY 테러’라 불리는, 전형적인 아마추어 수법이다. 맨체스터 테러로 영감을 받은 테러범들이 라마단 기간 중 성스럽게 순교하겠다며 벌인 ‘자생 폭력’으로 추정된다. 물론 IS는 이 사건도 자신들이 했다고 주장했지만 ‘홍보용’일 가능성이 높다. 오스트레일리아 테러의 경우도 비슷하다. 범인 야크쿱 카이레(29)는 2009년 오스트레일리아 군을 노린 뉴사우스웨일스 주 테러 계획에 연루되었다가 최근 가석방됐다. 경찰은 카이레가 범행 당시 지역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이건 IS, 알카에다를 위해서다”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IS와 알카에다는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앙숙 관계다. 카이레가 그 두 단체를 구분하지 못했던 점을 미루어볼 때 조직의 지침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도 IS는 아마크 통신을 통해 “멜버른 공격의 집행자는 IS 전사이다. 연합국을 겨냥하라는 (우리의) 부름을 이행했다”라고 주장했다. 현지 경찰은 카이레가 IS의 일원이라거나 다른 외국 세력의 지시를 받아 범행을 저질렀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민간인 테러로 존재감 과시하려

IS의 지침을 받았건 안 받았건 이번 라마단 기간 테러에는 변함없이 사악한 공통점이 있다. 먼저 계속해서 불특정 다수 민간인인 ‘소프트 타깃’을 노렸다는 점이다. 맨체스터 테러는 공연장 관람객을, 파리 테러에서는 관광객을 겨냥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침 시간 출근하는 시민을, 이란에서는 성지에 모인 순례객을 타깃으로 삼았다. IS 조직원이나 추종자가 무장한 군대를 상대하기에는 화력이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군대를 공격해봤자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도 않는다. 전 세계에서 누구나 테러를 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을 키워 그 존재를 과시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일종의 심리전이다. 최대한 사람들이 밀집한 장소를 노렸다는 점도 공분을 자아낸다. 테러범은 되도록 많은 사람을 죽여서 이름을 얻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과 자비를 근본으로 하는 성스러운 종교의식 기간에 사람을 최대한 많이 죽이겠다는 터무니없는 욕망이 전 세계를 휩쓰는 게 역설적이다.

ⓒEPA

테러가 일어나면 정치·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다. 대형 테러 두 건이 발생한 영국은 총선을 앞둔 상태였다. 결국 테리사 메이 총리를 비롯한 영국의 주류 정치 세력은 총선에서 손해를 보고 말았다. 2015년부터 대형 테러로 몸살을 앓고 있는 프랑스도 6월11일(1차 투표)과 6월18일(결선투표) 총선을 치른다. 6월7일 노트르담 성당 테러가 일어난 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긴급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했다.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영구 안보 조치들을 취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오는 7월15일 종료되는 국가비상사태를 11월1일까지 연장하도록 의회에 요청할 예정이다. 이란 테러는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간 종파 전쟁에 기름을 부었다. 아프가니스탄 테러 역시 정치 상황을 심각하게 흔들어놓았다. 테러 장소가 독일·영국·터키 등 외교 공관이 밀집한 와지르 아크바르 칸 구역이라는 점이 교묘했다.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제협력 의지를 약화하려는 노림수이다. 또 이곳은 대통령궁을 비롯한 정부 주요 청사가 있는 곳이다. 이러한 곳에서 테러가 터지면 국민은 정부의 보안 능력을 불신할 수밖에 없다. 테러가 발생한 뒤 카불 시내 외교 단지 인근에서 시민 수백명이 모여 정부의 부실한 테러 대응을 비난하며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테러가 반정부 시위에 불을 댕겼다. 의도했든 아니든 테러는 사회 전반에 혼란을 야기한다.


이번 라마단은 6월25일 끝난다. 테러가 빈발하는 지역은 초긴장 상태이다. 테러범들은 막바지에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라마단 기간에는 테러로 421명이 숨지고 729명이 다쳤다. 올해 벌써 사망자 수는 230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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