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여성이 목소리를 높이기 힘들 거라는 기류가 확산됐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자 대통령을 뽑았다는 자부심도 잠시, 대통령과 비선 실세 두 여성이 대한민국을 ‘말아먹은’ 정황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다.

다행히 새로운 여성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에서 진가를 발휘하며 거대 정당의 남성 후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제1야당의 여성 대표는 정당 중심 선거를 진두지휘하며 자기 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그렇게 대통령 자리에 오른 새 대통령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외교부 장관,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여성을 지명하며 양적·질적으로 여성 리더십 키우기에 나섰다.

여성 리더십을 재조명하기에 딱 좋은 때다. 2주에 한 번꼴로 대한민국의 ‘센 언니’들을 〈시사IN〉이 만난다. 정치 영역에서 먼저 시작한다.

ⓒ시사IN 신선영심상정 의원은 정의당이 유력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정의당의 비전을 구체적인 법과 정책의 형태로 내놓는 것, 당의 인적·물적 토대를 넓히는 것, 이것이 가능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혹시 채식하시는 분 있으세요?” 인터뷰가 잡힌 날 아침 심상정 의원실에서 문자가 왔다. 바쁜 일정 사이 도시락 점심을 함께 먹으며 면담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동석하는 기자 중에 혹시 채식주의자가 있는지 물어온 것이다. 정치인과 밥 자리 메뉴를 정하면서, 그것도 도시락을 주문하면서 채식주의자 여부를 ‘질문당한’ 건 처음이다. “섬세하군요”라고 답 문자를 보내며 생각했다. “역시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이 남다르군!”

소수와 약자를 대변한다는 건 심상정과 정의당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 중 하나다. 그러나 ‘다수결’과 ‘승자 독식’이 위력을 발휘하는 정치의 문법에서는 종종 약한 고리로 작동한다. 대권은 고사하고 국회의원 당선에도 걸림돌이 된 게 여러 번이다. 18대 총선 때 성 소수자를 진보신당 후보로 서울 종로에 공천했다가 곤욕을 치른 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목사 80여 명이 진보신당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그를 찾아와 “종로 공천만 철회하면 (당신은) 당선시켜주겠다”라고 회유했다. 지역 표심에 개신교계가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아는 처지에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당 대표라도 다른 지역 공천을 좌우할 권한이 없다”라며 거부했고, 결국 일산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떨어졌다. 전후 사정을 아는 지인들은 “왜 이리 어려운 진보 정당을 하느냐” “다수를 대변해야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 따위 걱정도 하고 핀잔도 주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도 그는 초반에 언론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당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촛불 민심과 소통하고 박근혜 탄핵에 기여했지만 그 결과 치러지는 대선에서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왕따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어렵사리 참여한 텔레비전 토론에서 ‘대박’을 터뜨렸고 단박에 호감 가는 정치인 리더 반열에 올랐다. 비록 기대했던 두 자릿수 득표율을 올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역대 진보 정당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높은 득표율(6.2%)을 기록했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높이 평가할 만한 대목은 “박근혜 탄핵을 계기로 당분간 여성이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 쉽지 않겠다”라는 세간의 인식을 뒤집었다는 점이다. 〈시사IN〉이 문재인 정부 들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여성 리더십을 다룰 ‘센 언니가 간다’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심상정을 호명한 이유다. 7개 열쇳말로 그를 분석했다.

ⓒ유튜브 갈무리지난 대선 당시 심상정 후보 캠프는 노동절에 ‘떼인 돈 받아주겠다’고 약속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왕따’ 지금이야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지만,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심상정의 인물 됨됨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마터면 그 상태로 대선을 치를 뻔했다. 지난 대선에서 중앙선관위가 주관하는 텔레비전 토론의 초청 대상은 국회의원 5인 이상이 소속된 정당의 후보 또는 직전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에서 득표율 3% 이상을 받은 정당의 후보였다. 그런데 자체 텔레비전 토론을 기획한 KBS에서는 국회의원 10인 이상 또는 직전 비례대표 국회의원 득표율 10% 이상을 받은 정당으로 기준을 확 높였다. 유승민 후보는 원내교섭단체 소속이라 가능했지만, 심상정 후보는 자격 미달이었다. 한번 기준이 정해지면 다른 방송사에서도 배제될 판이었다. 정의당은 물론이고 시민사회계가 들끓었다. 다음 아고라에서는 심상정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청원운동이 벌어졌고 결국 KBS가 손을 들었다. 심 의원은 “공정이 핵심 화두인 요즘 불공정의 원형이 정치다. 내가 이렇게 왕따를 당하는데 이 땅의 수많은 흙수저들은 얼마나 더 큰 고통을 당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버텼다. 내가 포기하면, 우리 사회의 수많은 왕따가 희망을 잃는다는 우려가 컸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시민의 힘으로 텔레비전 토론에 참여하게 된 심상정은 잘 다듬어진 정책과 송곳 같은 질문, 당당한 태도로 ‘토론을 가장 잘한 후보’에 연거푸 꼽혔다. 대선 이후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엄청 늘었다. 특히 초등학생들까지 ‘야 심상정이다’라며 사인을 요청하는 건 순전히 텔레비전 토론 덕이다. 마트에서, 거리에서 자신을 알아보며 씩 웃어주는 아이들을 보며 심 의원은 간절하게 소망한다. “투표 연령을 얼른 낮춰야 할 텐데….”

‘심블리’ 진보 정당 후보에게는 으레 ‘과격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따라다닌다. 2012년 대선 때 “당신 떨어뜨리려 나왔다”라며 박근혜 후보를 몰아붙이던 이정희 당시 통진당 후보는 한편으로 시원했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보수적인 유권자들에게는 ‘과격하다’는 선입견을 더욱 강화시킨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대선 초반 정의당 내부는 지레 위축된 기색이 역력했다. 이를테면 당의 정책자문단에서 제시한 슬로건은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 정의로운 대한민국 건설’이었다. 심 의원이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제안했지만 급진적으로 들리지 않겠느냐며 당 내부에서 말렸다. 하지만 심 의원은 “‘노동이 당당한 나라’는 곧 ‘삶이 당당한 나라’라는 얘기다. 국민 삶을 당당하게 만들겠다는 국가 비전이 뭐가 과격하냐”라며 고집했고 텔레비전 토론에서는 이를 국민 감수성에 맞닿게 설명하느라 애썼다. “육체노동 하는 사람은 도지사보다 월급을 더 받으면 안 된다는 얘기냐”라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후보와 홍준표 후보 간 설전을 보다 못해 1분 찬스까지 쓰며 한 동성애 발언도 마찬가지다.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성 정체성은 말 그대로 개인의 정체성입니다. 저는 이성애자이지만 성 소수자의 인권과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라는 심상정의 호소는 동성애 찬반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의 기본 가치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이냐를 제시해 많은 이의 공감을 샀다.

텔레비전 토론 사이사이 예능 프로그램이나 방송 광고에 나가서는 원 없이 ‘망가졌다’. 20대 당원이 대다수인 홍보팀의 요구대로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엽기적인 모습으로 국민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해서 25년간의 노동운동과 9년간의 수배 생활 등을 거치며 ‘철의 여인’으로 각인됐던 심상정은 ‘심블리’와 ‘심크러시’, ‘2초 김고은’으로 거듭났다. 요즘 국회의원들을 소개하는 공식 앱에 들어가 보면 심 의원의 취미와 특기란에 ‘매력 발산’이라고 적혀 있다.

‘지못미’ 5월9일 대선 당일 저녁 8시.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본 심 의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기대보다 예측치가 낮았다. 선거 막판 지지율이 올라갈수록 그는 사표(死票)론에 시달렸다. 그 표정을 지켜본 시민들이 정의당에 하룻밤 사이 3억원 가까운 후원금을 보내왔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후원금이었다. “처음부터 사무총장에게 빚지는 선거는 안 된다며 나도 당도 갚을 능력이 없으니 없으면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래서 유급 운동원도 안 쓰고 브로슈어도 8쪽짜리로 만들었다. 빚보다는 당원들의 실망이 컸는데 국민들이 그 아쉬움을 보듬어줘서 다 상쇄가 됐다.”

심 의원은 이번 대선이 정의당의 가능성을 확인한 선거였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동안 진보 정치가 실패를 거듭하면서 당원들이 절로 위축되고 과연 대선 같은 큰 게임을 제대로 치러낼 수 있을까 겁먹곤 했는데, 이번 대선을 거치며 ‘노동이 당당한 나라’ 같은 진보의 가치가 일반 국민에게도 먹히는구나, 진보 정당 후보가 완주해도 ‘죽일 놈’이 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실제로 본선 시작과 함께 연차 쓰고 월차 쓰고 특별당비 내며 선거운동에 나선 정의당 당원들은 이번처럼 신나는 선거는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시사IN 조남진5월26일 심상정 의원이 숙명여대에서 ‘약속 투어’를 진행하며 여성, 청년, 성 소수자 문제와 관련해 대학생들과 토론하고 있다.

‘어음’ 거리에서, 상점에서 만나는 시민들은 대선이 한참 지났는데도 “텔레비전 토론 잘 봤다” “재미있었다”라며 호감을 표한다. 심 의원은 이를 국민이 준 ‘어음’이라고 여긴다. 언젠가는 ‘현찰(지지)’로 바꿀 수 있는, 그 어음이 얼마나 가치 있을지는 정의당 하기에 달렸다. 현찰로 바꾸기에 가장 적절한 타이밍은 2020년 총선이다. 2020년 총선은 촛불 민심이 대통령을 바꾸는 정권교체로 역할을 다할 것이냐, 개혁의 걸림돌이 되는 국회를 바꾸는 쪽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냐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선거다. 다음 총선에서 국회가 개혁된다면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의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초 선거(founding election)’가 될 것이다. 심 의원은 “이번 대선을 기점으로 정의당이 군소 정당의 시대는 벗어나게 됐다. 2020년 총선에서 제1야당을 목표로 뛰어 유력 정당으로 도약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유력 정당은 최소한 원내교섭단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지난 대선 때 제시된 정의당의 비전을 좀 더 구체적인 법과 정책의 형태로 내놓는 것이다. 둘째, 지금 당세가 너무 약하니 당의 인적·물적 토대를 획기적으로 넓히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불출마’ 심상정 의원은 오는 7월 치르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의당에도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고 더 많은 간판급 스타들을 키워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에서다. 사실 그에게 확고한 권력의지가 생긴 건 통진당 사태 이후다. 그 전에는 골수 노동운동가였고, 2004년 국회에 입성하고는 유능한 국회의원으로 인정받는 정도가 목표였다. 하지만 통진당 사태 이후 정치를 계속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심하다 정치는 결국 책임을 지는 것이고 자신이 추구한 진보 정치의 꿈을 실현하려면 확고한 권력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정의당을 만들고 당 대표를 맡아 몸을 갈았다.

이 과정에서 심 의원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당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과거 진보 정당은 경기동부연합이니, 인천연합이니, 참여계니 하는 식으로 특정 계파의 영향력에 좌우되거나 소규모 모임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어느 한 계파의 사건이 터지면 당 전체가 ‘한 방에 훅 가는’ 모순을 되풀이했다. 그래서 당과 국회의원이 따로 놀던 방식을 바꾸어 의원들이 당 회의에 참석하도록 하고, 국회의원들을 당이 만든 미래정책 내각의 책임자로 앉혀 분야별로 정부를 상대하는 전문성을 키우도록 하고, 시도당만 크고 지역위원회는 취약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지역위원회에도 당비가 내려가는 회계 구조를 만들고, 연수원을 만들어 신입 당원과 간부 교육이 365일 돌아가게 하는 등 말 그대로 꼴을 갖춘 정당을 만들고자 애썼다.

‘약속 투어’
대선 이후 심 의원은 지방 출장이 부쩍 잦아졌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전국 어느 곳이든 부르면 달려간다. 대선 때 지지했던 이들, 중앙선거에 매여 직접 만나지 못했던 이들, 정의당에 호감을 보이는 이들을 찾아가 지난 대선을 복기해보고 정의당의 가능성 등을 얘기하는, 이름하여 약속 투어다. 대선 직후 바로 시작했는데 요즘은 하도 요청이 많아 대학이나 당의 지역협의회를 통해 들어오는 요청에 먼저 응하고 있다.

기자가 지켜본 숙명여대 약속 투어(5월26일)의 주제는 여성, 청년, 성 소수자였다. 주최 측이 마련한 50여 석은 심 의원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찼고, 토크쇼가 진행되는 중에 서서 경청하는 이들이 점점 더 늘었다. 심 의원은 25년 노동운동을 “(투사가 아니라) 여러분이 촛불집회에 나가는 심정으로 했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일해도 돈을 모을 수 없는 10대 소녀들의 노동 현장을 지켜보다 이건 아니지,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목소리를 높이다 보니 25년이 흘렀다.” 대선 공약 1호였던 ‘슈퍼우먼 방지법’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결혼 전 권영길·단병호 같은 노동운동계의 대선배들이 나를 ‘슈퍼우먼’이라고 소개하곤 할 때는 내심 우쭐했다. 그런데 결혼 후에는 이 말이 출산, 육아, 가사 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여성에게 독박 씌우는 용어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늘 엄마로서의 책무를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미안했는데 따져보니 이게 여성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더라. 저출산이 왜 여성의 문제인가, 노동의 문제지. 그래서 육아휴직을 늘리고, 급여를 높이는 것 외에 아빠도 3개월 이상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을 하도록 하는 게 슈퍼우먼 방지법의 핵심이다. 맞벌이 시대는 왔는데 맞돌봄 시대는 오지 않았으니 엄마 아빠의 노동조건을 개선해서 가족 있는 노동을 보장해야 출산 문제가 해결된다는 취지다.” 청중 사이에서 박수가 절로 나왔다.

그는 국회의원을 하면서 ‘빅사이즈법(여성 옷을 작은 사이즈만 만들지 말고 큰 사이즈도 만들도록 한 법)’을 왜 만들었는지, ‘성(性)인지 예산제도(공중화장실을 만들 때 여성의 사용 시간이 긴 것에 비례해 여성용을 남성용보다 더 많이 만들게 하는 식의 예산편성. 외국에서는 아동기금이 주로 축구장·야구장 등 남자아이를 위한 운동시설에 쓰인 것에 문제의식을 느낀 여성단체가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후 여자아이들을 위한 시설에도 예산이 투입된 사례가 있다)’를 어떻게 관철시키고 있는지 등을 설명했고, 청중은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과 성 소수자 정책에 대한 질의 답변이 이어지면서 약속 투어는 2시간을 훌쩍 넘겼고, 토크쇼 후에는 셀카를 찍으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이 역시 대선을 거치며 달라진 풍경이다. 심 의원은 “대표 등 지도부는 당면한 정치 현안을 처리하느라 시민들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대표는 새로운 인물이 맡아 리더십을 경험하고 나 같은 사람이 전국을 다니며 당의 저변을 넓히는 쪽으로 역할 분담을 하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대선 마지막 유세장에서 심상정 후보와 포옹을 하던 한 학생이 눈물을 쏟고 있다.

‘시선’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다른 야당들은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네 마네 시끄러운데, 정의당 쪽 불만은 색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심 의원이 낸 공약이나 발언을 똑같이 따라 하고 있다는 불평 아닌 불평이다. “우리만 밀착해서 연구하는 사람이 있나 봐(웃음). 병사 월급 올리는 건 작년에 우리가 법안 냈던 거고, 특수활동비 없애겠다는 것은 내가 대통령 되면 가장 먼저 할 일이라고 텔레비전 토론에서 얘기했고, 현충일에 무명용사탑 헌화 간 것도 그래. 역대 대선 후보들이 현충원에 가면 대부분 전직 대통령 묘소까지만 가고 무명용사탑에는 안 가거든. 내가 대선 후보 되고 처음 갔는데 문 대통령이 바로 가셨더라고(웃음). 내가 대통령은 떨어졌지만 해놓은 건 많아.”

말 나온 김에 문재인 정부 내각에 들어가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텔레비전 토론에서 어려운 문제를 따져 묻는 심 의원에게 “제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 함께 해결해봅시다” 하는 말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심 의원도 가능성을 닫아놓지는 않은 듯했다. “그 질문들이 하도 많아서 얼마 전 국회를 방문한 신입 당원 200여 명에게 물어봤더니 80%가 찬성하더라. 그만큼 우리 당도 기대가 크다는 얘긴데, 하지만 득실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명분이 맞아야 하고, 급이나 직 이런 거보다 실질적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하고. 당에서는 우리도 국정 운영 경험이 필요하다 하는데 장관 한 명 달랑 들어간다고 될 일도 아니고 내가 장관이 꿈인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일단 제안이 오면 당에서 투명한 논의 과정을 거칠 거다. 지금은 그런 제안이 온 바도 없고 검토한 바도 없으니 일단 우리 역량을 키우는 게 급선무다.”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시선은 이미 1년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2018년 지방선거 전에 논의키로 한 선거법 개정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3년 후 총선, 그리고 정의당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쯤 갔을 때 집권당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또한 비례대표가 확대되는 등 선거법이 바뀌어 굳이 큰 당 후보가 아니어도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면 이념과 노선에 따라 정치인들이 새판을 짜는 정계 개편이 가능하다. 거대 정당에 몸담고 있는 진보 정치인들이 과감하게 진보 정당으로 올 수도 있다. 그때에 대비해 조직을 정비하고 비전을 가다듬는 게 지금 정의당이 할 일이다.”

심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목표는 민주주의 정상 국가를 다시금 세우는 것이고, 정의당은 그 토대에서 국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정리했다. 문재인 정부가 오늘이라면 정의당이 만들 다음 정부가 미래라는 것이다. 그 미래를 당기기 위해 심 의원은 인터뷰 직후에도 지방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자명 이숙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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