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파괴 뒤에 현대차가 있었나
  • 김동인 기자
  • 호수 509
  • 승인 2017.06.2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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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7일 유시영 유성기업 대표가 노조 파괴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5월19일 검찰은 현대자동차 임직원과 법인을 노조 파괴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했다.

현대자동차가 협력업체인 유성기업의 ‘노조 파괴’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됐다.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은 5월19일 현대차 직원 4명과 현대차 법인(회사)을 노동조합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원청인 대기업이 법률적으로 엄연히 다른 회사인 하청업체의 노동조합을 파괴한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이번 기소는 2011년 5월 유성기업 아산·영동공장 직장폐쇄 이후 6년간 계속되어온 ‘유성기업 노조 파괴 사태’에서 주요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유시영 유성기업 대표는 지난 2월에 이미 노조 파괴 혐의 등으로 유죄판결(징역 1년6개월)을 받은 바 있다.

유성기업, 무엇이 문제였나


현대차 핵심 엔진 부품을 납품하는 유성기업은 충남 아산과 충북 영동에 제조공장을 두고 있는 중견 제조업체다. 유성기업 민주노조(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는 2011년 초부터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 문제로 사용자 측과 특별교섭을 벌이고 있었다. 사용자 측은 완강했다. 4개월에 걸쳐 이뤄진 노사교섭에서 어떤 진전도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노조는 같은 해 5월18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파업을 결정했다. 사측은 아산과 영동의 두 공장을 모두 직장폐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시사IN 이명익2016년 5월26일 유성기업 민주노조(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 소속 조합원들이 원청인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뤄진 재판에서 입증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사측은 직장폐쇄를 단행한 직후부터 ‘노조 파괴’를 단계적으로 진행했다. 먼저 2011년 당시 시행되기 시작한 복수노조 제도를 활용해서 ‘유성기업㈜ 노조(제2노조)’를 조직했다(2011년 7월1일). 사측이 주도해 만든 어용 노조였다. 그다음 단계로는, 기존 노조 소속 직원들을 강압해서 어용 노조에 가입시켰다. 직장폐쇄가 종료(8월22일)된 이후, 유성기업 내에서 노골적인 ‘노조 전환’ 압력이 전개된 것이다.


유성기업이 추진한 구체적인 플랜을 짠 곳은 ‘노조 파괴 노무법인’으로 유명한 ‘창조컨설팅’이다. 창조컨설팅은 제2노조의 설립과 육성, 기존 민주노조의 조합원 축소, 이를 위한 징계 절차와 임금협약, 관리자의 장악력 강화 등을 세부적으로 기획했다. 유성기업은 그 대가로 창조컨설팅에 1년5개월간 14억원 정도를 지급했다.

현대차의 하청업체가 노조 파괴 전문 컨설팅을 받고 돈을 지급한 사례는 유성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상신브레이크, 보쉬전장, 만도, 발레오만도 등 현대차의 다른 협력업체도 창조컨설팅으로부터 ‘서비스’를 받았다.

유성기업의 민주노조는 회사 측과 원청(현대차)의 불법 부당노동행위를 감지하고 2011년 5월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고소장을 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와 검찰의 행보는 더뎠다. 검찰과 고용노동부는 2012년 11월에 들어서야 유성기업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사측이 노조 파괴를 진행해왔다는 핵심 증거들을 확보했다.

증거들이 나왔지만 검찰(천안지청)은 기소를 하지 않았다. 증거들을 갖고만 있다가 2013년 12월 현대차와 유성기업을 불기소 처분했다.

노동조합 측은 재정신청을 냈다. 검찰이 기소하지 않자 고등법원에 기소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제도를 활용했다. 고등법원이 재정신청을 인용하면, 검찰은 기소를 해야 한다.

결국 유성기업 민주노조 측의 재정신청이 인용된 뒤인 2015년 4월에야 검찰은 유성기업 및 유시영 대표를 기소했다. 다만 노조 파괴 기획의 ‘윗선’인 현대차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혐의 판단을 유지했다.

현대차는 유성 사태에 어떻게 개입했나


이로부터 2년여 뒤인 지난 2월에야 유성기업 유시영 대표는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노동조합 파괴 공작의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확인되었다. 검찰은 그제야 노조 파괴 혐의에 연루된 현대차 직원들을 기소했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6년여가 흐른 지난 5월19일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10일 후였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원청인 현대차는 협력업체인 유성기업의 ‘제2노조 가입 촉진’을 관리 및 재촉했다. 핵심 증거는 유성 관계자(최창범 당시 유성기업 전무)와 현대차 관계자 사이에 오간 이메일이다. 검찰이 근거로 삼은 관련 이메일 내용은 이미 2016년 1월29일 금속노조와 은수미 전 의원이 폭로한 바 있다. 사실 2012년 고용노동부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미 확보된 자료들이다.


이메일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는 유성기업의 제2노조에 대해 마치 자사(현대차) 노조인 것처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관리했다. 심지어 관련 회의마저 당사자인 유성기업 경영진이 아니라 현대차 측이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9월20일 아침, 현대차 구매본부(하청업체 납품을 관리하는 부서) 실장이 같은 부서의 중간 관리자에게 보낸 질책성 이메일 내용을 살펴보자. “(유성기업의) 신규 노조 가입 인원이 최근 일주일간 1명도 없는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9월20일까지 220명, 9월30일 250명, 10월10일 290명 목표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1명도 없는 이유가 뭔지 강하게 전달하라.”

이메일이 전달된 지 3시간 뒤에 현대차 측은 관계자 회의를 열겠다고 유성기업 전무에게 통보한다. “9월22일 오전 10시에 회의를 하고자 합니다. 유시영 사장님과 창조 측(창조컨설팅)을 모시고 회의코자 하오니 참고하셔서 참석 부탁드립니다. 장소는 본사 10층 회의실입니다.”

더욱이 현대차 측이 당사자인 유성기업 경영진보다 노조 파괴에 훨씬 적극적이었던 정황까지 보인다. 유성기업 간부가 현대차에 대해 부담감을 느낄 정도였다. 유성기업 전무가 창조컨설팅 측에 보낸 이메일을 살펴보자.

“우리 회사 노무 현황에 대해 현대차의 컴플레인(불평)이라고 할지, 무리한 요구로 영업이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요구 사항 중 핵심은 유성 노조 신규 가입자를 70~80% 선까지 확보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유성기업 측이 ‘노무관리’를 지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경영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압박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유성기업 유시영 대표는 2011년 9월, 현대차 구매본부를 찾아가 제2노조 가입 현황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납품 구조 2원화를 실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이 무렵 현대차는 유성기업이 (노조 파업과 직장폐쇄 없는) 안정적인 생산 구조를 정착시키지 않을 경우, 납품 구조 2원화를 추진해 주문량을 감축하겠다고 시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성기업의 납품 제품인 엔진 부품을 다른 중소업체에도 주문하겠다고 압박했다는 의미다. 유성기업 처지에서는 제2노조 확대가 거래 안정성을 보장하는 유일한 활로였던 셈이다.

증거 확보한 지 5년 만에 기소한 검찰

유성기업 간부와 현대자동차 관계자 및 창조컨설팅 관계자가 주고받은 이메일을 보면 현대차 측이 유성기업 경영진보다 노조 파괴에 훨씬 적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검찰 공소장에 담긴 핵심 증거(이메일)들은, 2012년 고용노동부의 유성기업 압수수색 도중 간부의 컴퓨터에서 발견됐다. 검찰은 이미 5년 전 현대차의 조직적 개입도 확인했다. 그러나 최근까지 현대차에 대한 기소를 미뤄온 것이다.


압수수색 이후 검찰에겐 현대차를 기소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처음(2013년 12월)에는 같은 증거를 갖고도 유성기업과 현대차 모두에게 혐의가 없다며 기소하지 않았다. 노동조합 측이 법원에 낸 재정신청이 인용된 뒤에는 유성기업과 유시영 회장만 기소했다.

재판에서도 검찰의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검찰은 유시영 대표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법원의 판결(징역 1년6개월)이 검찰 구형보다 오히려 엄중했다. 검찰이 기소를 5년 이상 끄는 가운데 회사 측과의 오랜 싸움에 지친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씨가 지난해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조 파괴의 또 다른 장본인 창조컨설팅은 설립인가가 취소된 상태다. 유성기업 제2노조 역시 법원 판결로 해체되었다. 그러나 창조컨설팅을 이끈 심종두 대표는 지난해 ‘글로벌원’이라는 새로운 노무법인을 설립해 운영 중이고, 해체된 유성기업 제2노조 주축 인사들 역시 새로 제3노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노조 측은 검찰의 뒤늦은 기소에도 기대감을 갖고 있다. 노조 측 법률 대리를 맡고 있는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이미 5년 전에 기소할 수 있는 사건을 이렇게 끌어온 것은 검찰 책임이다. 다만, 이번 기소는 검찰 측에서도 어느 정도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증거가 워낙 명백해 현대차 측에서 법리적으로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현대차 측에서는 변호인으로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를 선임했다. 대부분 검찰 경력을 가진 이들로 구성됐다. 현대차 법인이 기소된 만큼 등기 대표이사 중 한 명인 정몽구 회장의 법정 출석 여부도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들은 이번 기소와 재판으로 6년간 지속되어온 유성기업 노조 파괴 사태가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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