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이 지척인데 버스는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세종로가 통제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승객들이 볼멘소리를 냈다. 뒤늦게 도착한 광장에선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시민 3000여 명이 야외에 마련된 250개 원탁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는 중이었다. 문자로 안내받은, 66번 테이블을 찾는 데까지 한참 걸렸다. 5월27일 열린 ‘서울시민 미세먼지 대토론회’ 현장이다.

기자는 다른 참가자 6명과 함께 토론에 참여했다. 먼저 사회자가 각각 1분30초 동안 미세먼지에 관해 개인 의견을 달라고 했다. 이영섭씨(46)는 도심에서 미세먼지를 걸러낼 수 있는 녹지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 방향도 과태료 같은 제재보다 유인책 위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이환희씨(29)는 디젤차량 규제뿐만 아니라 LPG차량과 같은 미세먼지가 적게 나오는 차량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승혜양(15)은 중국과의 외교 노력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고, 유호상씨(29)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대안으로 냈다. 기자는 프랑스 파리의 사례를 참고해 미세먼지 농도가 심할 때 일시적으로 대중교통을 무료화해 차량 운행을 줄이자고 제안했다. 사회자는 참가자들의 발언을 실시간으로 전송했다. 서울시 분석팀이 이를 정리·분류해 결과를 중앙 무대 스크린에 띄웠다.

금세 시간이 갔다. 서울시가 첫 토론 결과를 정리해 보여주었다. 2080개 의견 중 가장 많이 나온 제안이 차량 운행 제한과 친환경 이동수단 이용률 높이기(661건)였다. 다음이 중국과의 외교 노력(234건), 석탄 화력발전 중단(196건), 미세먼지 배출 시설 원천 대응(195건) 등의 순서였다.

ⓒ연합뉴스‘서울시민 미세먼지 대토론회’에 참여해 시민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가운데).

난상토론이었지만 재참여 의사 높아

2차 토론에서는 왜 환경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는지 의견을 나누었다. 모두 건강을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아이가 셋인 이영섭씨의 두 자녀는 천식을 앓고 있다. 병을 얻은 시점이 가습기 살균제를 쓰던 시기와 겹쳤다. 밤늦게 퇴근하는 이씨에 비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과 아내가 직접 피해자였다. 그게 마음에 걸렸고 토론회까지 그를 이끌었다. 이환희씨는 “최근 담배를 끊었는데, 미세먼지가 암을 유발한다더라. 끊을 이유가 없었다. 대기 질이 안 좋으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에 직접 참여한 박원순 시장은 미세먼지를 ‘재난’으로 선포하고 초미세먼지가 이틀 동안 ‘나쁨’일 경우 차량 2부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날에 한해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하는 방안도 추진된다고 했다. 기자의 귀가 쫑긋해지는 순간이었다. ‘대중교통 무료화’가 익숙했다. ‘어, 저거 내가 낸 의견인가?’

이번 행사는 주민들이 직접 정책을 의논하는 ‘타운홀 미팅’ 방식의 실험대였다. 전시행정이라는 비판과 시민참여형 광장 민주주의라는 찬사가 엇갈렸다. 새로운 대안을 찾는다기보다, 공통의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들이 의견을 나누고 정책의 우선순위 결정에 참여한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특히 66번 테이블은 재참여 의사가 100%로, 만족도가 높았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