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성주의 ‘파란 날갯짓’
  • 김연희 기자
  • 호수 508
  • 승인 2017.06.1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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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 반대 시위가 치열했던 경북 성주에서 홍준표 후보의 득표율이 1위(56.2%)였다. 성주 군민들은 왜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후보에게 몰표를 주었을까? 그들의 사연을 들어보았다.

5월 대선 이후 경북 성주는 거대한 조롱거리가 되었다. 득표율 1위 홍준표(56.2%), 2위 문재인(18.1%)이라는 선거 결과 때문이다. 홍 후보가 48.6%로 1위를 한 경북 평균보다도 성주에서 얻은 득표율이 더 높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찬성하는 세 후보(홍준표·안철수·유승민)의 득표율 총합은 75.08%에 달한다. 지난해 여름 새누리당 장례식까지 치렀던 성주를 향해 비난과 야유가 쏟아졌다. 대선 다음 날인 5월10일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이하 투쟁위)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드 배치를 중단해달라는 성명을 내자 ‘뻔뻔스러운 동네’ ‘양심도 없다’ ‘아직도 지역주의냐’ 따위 댓글이 온라인에 줄을 이었다.

ⓒ시사IN 이명익성주 군민들의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파란나비효과〉를 연출한 박문칠 감독(가운데)과 성주군민 배미영씨(왼쪽), 이수미씨(오른쪽).

사드 반대 운동이 불처럼 일어났던 성주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지난해 7월부터 성주 투쟁을 카메라에 담았던 박문칠 감독은 다큐멘터리 〈파란나비효과〉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했다. 대선 결과를 염두에 두고 만들지는 않았지만, 2016년 여름의 뜨거웠던 성주를 담은 이 다큐멘터리는 대선 이후 성주에 쏟아진 힐난성 질문에도 담담히 답을 준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파란나비효과〉의 부제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성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박문칠 감독,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성주 주민 2명과 ‘미처 몰랐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한 박 감독,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뽑았던 두 아이의 엄마 배미영씨, 1980년대 고등학교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의 소행이라고 배웠던 대구 출신 이수미씨. 세 사람을 만난 5월29일 성주의 한낮 기온은 35℃까지 치솟았다.


성주에서 홍준표 후보가 1위를 할 거라고 예상했나?

배미영
:그때 성주 촛불(사드 반대 주민)의 관심은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가 여부였다. 당선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선 날 저녁에 소성리(사드 배치 지역) 지킴이 활동을 하러 갔다. 개표 방송을 보는데 방송에서 계속 성주를 비추고 홍준표 득표율을 보여주는 거다. 그때부터 포털 사이트에 실시간으로 어마어마한 욕이 올라왔다. 그런 반응이 너무 아픈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이수미:나는 결과가 예상돼서 엄청 걱정했다. 선거 전에 반대 투쟁하는 사람들한테 내가 그 얘기를 했다. “앞으로 수년 동안 성주는 어떤 선거에서도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그렇게 각오를 했는데도 밤 11시가 되니까 도저히 개표 방송을 볼 수 없더라. 인터넷에는 ‘느그 사드 끌어안고 살아라’라고 댓글이 올라왔다.

사드를 찬성하는 후보들이 얻은 총득표율이 75%나 된다. 성주 주민들이 사드에 반대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어려운 수치다.

이수미:그간 성주 촛불이 너무 잘 싸워서 생긴 착시효과다(웃음). 지난해 9월30일 사드 부지가 성주군 성주읍 성산포대에서 소성리 롯데골프장으로 바뀌었다. 읍내에서 멀어진 후로 사드에 반대하는 성주 주민은 10% 정도로 줄었다. 성주가 서울만큼 면적이 넓다(성주는 616㎢, 서울은 605㎢이다). 성주읍과 소성리는 서울로 치면 도심과 외곽의 경계만큼 떨어져 있다.

박문칠:제3후보지(소성리 롯데골프장)로 간다고 국방부가 공식 발표한 뒤 관변단체, 군의원 등이 지도부를 맡았던 1기 투쟁위가 해체되었다. 사드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남아 2기 투쟁위를 새로 꾸렸다. 그 투쟁위가 지금까지 오고 있다. 당시에 촛불 지킴이라고 서명을 한 주민이 500여 명이다. 그 정도가 핵심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배미영:500명이 핵심이고 그 뒤에 지지 세력 7000여 명(성주 지역 문재인·심상정 후보 득표수)이 있다는 걸 이번 대선에서 확인한 셈이다. 사실 처음부터 투쟁위에 있는 관 쪽 사람들은 발을 빼고 싶어 했다. 군의원, 도의원 다들 새누리당 공천받아서 의원이 됐고 지역 정치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관계를 끊을 수가 없다. 주민들은 1000명씩 새누리당 탈당계를 내는데 군수나 지역구 의원인 이완영은 탈당하지 않았다. 내가 투쟁위 기획팀 소속인데 기획안을 내면 이 사람들이 거기에 사족을 붙여 무산시켰다. 지난해 광복절에 사드 반대 삭발식을 기획하니까 거기에 육영수 헌화 부스를 추가하자는 식이었다. 소성리로 부지가 옮겨진 후로는 더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반대 투쟁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중에 군청과 거래가 있는 분들한테는 개인적으로 압력이 들어가고, 자영업자한테는 세무조사나 위생검사가 나왔다. 성주가 인구는 적지만 크고 작은 단체가 굉장히 많고 군청과 얽혀 있다.

박문칠:그게 다 보조금을 받는 단체들이다. 성주 같은 지역에서는 군청의 힘이 굉장히 크다. 군수가 사드 반대를 하면 투쟁이 확 일어났다가 군수만 돌아서면 또 쉽게 전세가 바뀐다.

배미영
:원래 시골에서는 이장님이 그 동네 대통령이다. 독거노인들 집에 매일 가서 일 봐드리고 챙겨드리니 할머니들이 이장을 100% 신뢰한다. 성주는 이장 모임인 이장상록회가 잘 되어 있다. 대선 날 이장님이 하루 종일 투표 독려 방송을 했다. ‘신분증만 가지고 오시면 된다, 못 오시는 분은 전화하시면 제가 차를 대절해서 가겠다.’ 그렇게 해서 할머니들을 한 차로 모시고 간다. 가면서 얘기하는 거다. ‘이번에도 우리가 믿을 사람은 이 사람밖에 없다. 1번은 빨갱이라 하고, 5번도 마찬가지라 카더라. 3번은 보수도 뭣도 아니고 색깔이 불분명하다. 2번을 뽑아야 그래야 대구·경북이 살아남는다.’ 성주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6%가 넘는 초초고령 사회다. 정치적으로 자식들 말은 잘 안 들어도 이장 말은 다 들으신다.

박문칠:생각이 달라도 작은 마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반대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시사IN 조남진2016년 7월13일 성주군청 광장에 모인 군민 300여 명이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며 촛불집회를 열었다.

사드 반대 투쟁을 통해 배미영·이수미씨처럼 생각이 바뀐 주민도 있다. 그런 변화가 왜 성주 전체로는 퍼지지 못했을까?


이수미:나는 성주 사드 배치 뉴스를 처음 봤을 때 나라가 하는 일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안보 프레임에 70년간, 박정희가 만든 지역 프레임에 50년간 속았다. 그동안 받은 교육이 있는데 한 번에 변화할 수 없었다. 페이스북 친구가 나에게 그런 글을 남겼다. ‘느그 아무 생각 없이 1번 찍은 대가다. 5·18, 세월호 때 느그 어땠나. 한번 잘해봐라 꼬시다.’ 내가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5·18, 평택 주한 미군기지, 강정 해군기지, 세월호 참사, 너무 많은 왜곡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말 하는 사람들한테 ‘죄송합니다. 근데 그때는 진짜 몰랐습니다’라는 댓글을 일일이 다 달았다.

배미영:나는 정치에 무관심했다. 정치인이나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고 또 나쁜 인식이 있어서 가까이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반대 투쟁을 하면서 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실제로 이번에 성주에 내려와서 약속을 지킨다는 게 뭔지 보여주는 의원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이완영 의원 같은 사람만 있는 줄 알았다.

박문칠:사드라는 충격만으로 투표 성향이 바뀌진 않는다. 대안적인 정치 세력이 있어야 하고 그 세력이 지역에 밀착해서 활동하며 신뢰 형성까지 이어져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이 성주에 왔지만 주민들이 섣불리 마음을 주지 못했다. 더구나 안철수 후보는 입장을 바꾸면서 ‘방문 쇼’였다는 게 드러났다.

성주에 표심 변화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진보 세력 후보의 득표율을 보면 2012년 18대 대선 13.2%(문재인)에서 이번 19대 대선 때는 23.8%(문재인·심상정)로 10%포인트 정도 올랐다.

이수미
:우리는 진짜 그 콘크리트를 대상으로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웃음). 여기는 정말 보수적인 지역인데 10개월 만에 이 정도로 올라온 거다. 홍준표 득표율은 높게 나왔지만 요즘 성주에 홍준표 찍었다, 사드 찬성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것도 변화다.

배미영:우리 아버지가 극우 보수다. 대구가 고향이고 베트남전에도 참전했다. 누구 뽑으면 되냐고 물어서 1번이나 5번이라고 했더니 대선 날 아침에 그 번호를 뽑았다고 메시지가 왔다. 정말 놀랐다. 우리 부모는 맨 마지막까지 안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시사IN 조남진4월12일 성주군청 입구에 걸려 있던 사드 반대 현수막이 누군가에 의해 찢어져 있다.

제3후보지 발표 이후 김항곤 군수가 성주 촛불을 두고 ‘술집 하고 다방 하는 것들’이라고 비하했다. 그 순간 성주 여성들의 대응 방식이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묘사된다.


배미영:그때가 군청 앞마당에서 쫓겨나 맞은편 인도에 자리를 잡고 촛불집회를 하던 시기였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 “술집 하고 다방 하면 어떠냐. 비열하게 거기서 아무 말 못하고 벌벌 떠는 느그보다 더 당당하다.” 사드 반대 주민 카톡방을 통해 소주잔, 맥주잔, 커피잔을 다 모아 군청에서 피켓 시위를 했다.

박문칠:성주 투쟁을 보면 항상 즐겁게 싸우더라. 풍자도 조롱도 잘 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담았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여성인데 이들이 국가의 폭력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폭력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여줬다.

우스갯소리처럼 ‘이혼 서류 가져올까 하는 집이 많다’는 애기도 영화에 나온다.

배미영:투쟁하면서 아침에 나가 밤 12시에 들어오는 불량 주부가 되었다. 아이들이 펑펑 울면서 사정하더라. ‘나도 사드 싫은데 엄마가 이러는 건 더 싫다.’ 아이를 위해 시작했던 싸움인데 삶을 조율하는 게 참 어려워졌다. 남자들은 국가 권력이 하겠다는데 이길 수 있을까 머뭇하지만, 엄마들은 일단 내 아이를 건드린다, 이건 못 참는다(웃음).

이수미:초기에는 사드에 대해 전자파, 전쟁 무기 이렇게 1차원적으로 생각했다. 우리 안보를 튼튼히 한다는 말과 달리 미국의 이익이 달린 문제고 한반도 전쟁 위험을 더 고조시키는구나 싶으니 반대할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대선에서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세 후보(홍준표·안철수·유승민)의 성주군 득표율이 75.2%를 기록했다.

군수가 배미영씨를 불러 ‘애들만 잘 키우면 되지 왜 그렇게 (반대)하냐’라고 훈계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가 사드 투쟁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박문칠
:반대 투쟁을 하는 분들은 단순히 정치색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었다. ‘어떻게 사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 분들이다. 어떤 삶을 살아가고, 누구와 어울리고 교류하고 그런 부분까지 영향을 미쳤다.

홍준표 후보를 찍은 주민들 때문에 덩달아 욕을 먹으니 억울하지 않나?

이수미
:억울하다. 그렇지만 성주 촛불 내에서는 좋든 싫든 사드를 찬성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미웠는데 지금은 왜 진실을 보지 못하나 싶어서 안타깝다.

배미영:그런 인식 때문에 지금 한 달에 두 번씩 전통시장에서 프리마켓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누구든지 올 수 있게 한다. 지난해 11월 초에 성주 촛불에서 ‘투쟁이 끝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회의를 했다. 재능 있고 건강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그 동력이 아깝다, 그 동력을 가지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자는 논의를 했다.


대담을 마친 배미영씨와 이수미씨는 성주군청으로 향했다. 소성리 할머니들이 군청을 항의 방문하자 직원들이 군청 문을 걸어 잠가 승강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할머니 두 명이 군청 로비에 갇혔다.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배미영씨가 출입문을 막은 공무원들을 향해 돌진했다. 카메라를 든 박문칠 감독이 그 뒤를 바삐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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