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수의 연예계 데뷔 이후 16년이 지났다. 그가 한국 사회에 수용되는 과정을 지켜본 수많은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들은 용기를 얻었다.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 자체가 화제가 될 것이라 판단한 기획사들 또한 ‘제2의 하리수’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을 만한 이들을 찾았다. 2005년 4인조 트랜스젠더 그룹 ‘레이디’가 데뷔했고, 2007년에는 배우 이대학이 성 확정 수술을 받고 이시연이라는 예명으로 연예계 활동을 이어갔다. SBS 〈진실게임〉에서 ‘진짜 여자를 찾아라’ 유의 특집에 출연한 바 있던 최한빛은 2009년 성 확정 수술 이후 다시 텔레비전에 모습을 보였다.
물론 모두가 한국 사회의 따뜻한 환대와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레이디는 결성 2년 만에 해체 절차를 밟았고, 이시연은 방송이나 영화 활동이 뜸해진 자리를 트랜스젠더 클럽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하리수 이후 연예인으로서 유의미하게 성공을 거둔 MTF 트랜스젠더는 최한빛 한 명 정도라고 해도 무방하다. 앞서 언급한 트랜스젠더 연예인들 중 하리수와 최한빛이 가장 ‘겉보기에 지정 성별 여성의 외모’와 유사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 사회가 MTF 트랜스젠더를 용인하는 기준 또한 얼마나 편협하고 폭력적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여자보다 더 여자 같아서’ 겉보기에 이성애 규범성을 해치지 않을 만한 선까지만 용인하는 것이다.
홍석천의 커밍아웃 이후 17년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한국 사회에서 커밍아웃한 유일한 동성애자 연예인으로 남아 있다. 많은 이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지만 홍석천 이후에도 방송을 통해 커밍아웃한 연예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델 출신 연기자로 막 커리어를 시작하던 배우 김지후는 2008년 4월 tvN 〈커밍아웃〉에 출연해 자신이 게이임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방송 직후 쏟아지는 조롱과 모욕의 악플은 그를 힘들게 했다. 그와 전속 계약을 맺으려던 기획사들은 커밍아웃 이후 모든 논의를 중단했다. 같은 해 10월6일, 김지후는 스물세 살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커밍아웃〉의 MC 홍석천은 다음 날 자신의 SNS 계정에 일기를 올렸다. 그는 악플러들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일기 말미에 이런 말을 남겼다. “살아남은 자의 숙제가 뭔지, 꼭 해결해야 한다. (중략) 살아남아야 한다.” 그는 좋으나 싫으나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게이이고, 연예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게이이다. 그렇기에 그는 게이로서 자신이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을 숙제로 받아들였다.
유머의 탈을 쓰고 유통되는 호모포비아
2007년 홍석천은 국회에서 열린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관련 정책토론회에 참여했을 때만 해도 “항상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도 같은 논의가 또다시 계속되는 통에 사실 할 말이 별로 없다”라며 시니컬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보였다. 그 이후 홍석천은 점차 자신이 ‘무해한 존재’임을 강조하는 길을 걷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오빠”라는 농담은 어느 순간 그의 캐치프레이즈처럼 굳어졌다. 우리 사회는 이태원에서 식당 여러 개를 운영하고 있는 그를 ‘역경을 딛고 일어난 성공 미담’의 사례로 소비했다. 보편 인권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성소수자위원회가 있다는 이유 하나로 민주노동당에 가입했던 2000년대 초반 홍석천은 주류 사회를 향해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를 청구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홍석천은 “기존 한국 사회 안에서도 해될 것 없이 성실하고 건전하게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홍석천은 자신의 농담에 괜히 움찔하는 시늉을 하는 남자 연예인들을 향해 “우리도 보는 눈이 있어서 너희는 성에 안 찬다”라고 외쳤다. “내게 고백하지만 않는다면”이란 떨떠름한 전제하에 동성애자들을 용인하겠다고 말하는 이성애자들을 공략하는 전략이었다.
“나는 당신들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내게는 존중받아야 할 인권이 있다.” “나는 사실 당신들과 많이 다르지 않다.” 당위로 보면 전자가 옳은 문장이다. 다양한 가치의 위계 없는 공존은 민주주의 체제의 오랜 이상인 열린사회의 필수조건이다. 소수자들이 굳이 주류 사회에 구애하거나 주류 사회의 삶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홍석천이라고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연예계 유일의 동성애자로 오랫동안 악플러들과 맞서 싸우고, 다른 성 소수자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많은 게이 청년들이 고립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그런 그가 악플러들에게 승리를 안겨주지 않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다수의 대중을 자기 편으로 포섭하는 것이었으리라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013년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홍석천은 성 소수자를 희화화하는 세간의 시선과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성 소수자들 사이의 관계 설정에 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저는 거꾸로 얘기를 해요. 아직 다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계속 진지하게 ‘받아달라’ ‘받아달라’ 그러면 그것도 우습다고. 그냥 제가 좀 바보스럽고 제가 모자란 부분을 그냥 편하게 웃기고 재미있게 해서 거부감을 먼저 없애야지.”
문제는 홍석천의 이 같은 전략을 미디어가 어떤 식으로 소비했느냐이다. 홍석천은 잘생긴 남자 연예인에게 추파를 던지는 농담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까지는 허락받았다. 하지만 그의 이런 농담은 보통 상대가 질색하며 겁에 질리거나 몸서리를 치는 리액션으로 완성된다. 호모포비아가 여전히 유머의 탈을 쓰고 유통되는 것이다. 여전히 홍석천은 이성애자 남성 위주의 연예계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별종 이상의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고, 연예계 표준 남성인 ‘이성애자 남성’이 취할 수 있는 리액션은 질겁뿐인 셈이다. 마치 한국 사회가 하리수와 최한빛의 외양에 방점을 찍어 트랜스젠더를 제한적으로 용인해주었던 것처럼 홍석천이라는 유별난 개인이 자신의 무해함을 적극 증명하며 농담을 던지는 것까지는 용인한다. 그 이면의 호모포비아와 이성애 규범성을 극복하는 지점까지는 허락하지 않는다. 홍석천과 하리수 이후 강산이 한 번 반은 족히 변했을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한국의 LGBT+(성 소수자들)에게 굳게 닫힌 미디어의 빗장은 여전히 공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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