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아는 ‘박사모’는 잠시 잊어도 좋습니다
  • 이상원 기자
  • 호수 507
  • 승인 2017.06.0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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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에 ‘본격 시사만화’를 그리고 있는 김선웅씨가 박근혜 시대의 주요 장면을 복기한 ‘만화 실록’ <박4모>를 내놨다. 각 만화 뒤에는 못다 한 이야기도 담았다.

ⓒ시사IN 이명익김선웅씨는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2016년 마지막 주에 그린 ‘그네,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시사IN> 제486호)을 꼽았다.

인터뷰는 그의 집에서 진행됐다. 집 주인이 이상한 음료를 건넸다. 에스프레소 원액에 콜라를 섞은 액체였다. 처음 맛보는 검은 액체가 께름칙했는데, 의외로 놀랄 만큼 맛있었다. 시사와 ‘서브컬처’라는 생소한 조합을 선보여 수많은 마니아층을 거느린 굽시니스트 김선웅씨(36) 본인의 작업과 닮은 음료였다.


2009년 8월 <시사IN> 제100호를 시작으로 400회 이상 ‘본격 시사만화’를 그려온 김선웅씨가 단행본을 냈다. <박4모-박근혜 4년 모음집>이다. 제목처럼 2012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걸친 박근혜 시대를 다뤘다. 각 만화 뒤에는 ‘굽시니스트의 못다 한 이야기’라는 주석을 달았다. 박근혜 게이트라는 전례 없는 소재를 주물렀던 ‘굽본좌’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원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한 그는 예상 밖의 답변을 많이 했다.

<박4모> 단행본의 취지가 궁금하다.


한 시대가 끝났으니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의무 아니겠나? 과거 중국에서도 왕조가 바뀌면 새 왕조에서 망한 왕조의 역사를 썼다. 당이 망하면 송이 당사를 쓰고, 송이 망하면 원이 송사를 쓰고, 명은 원사를 쓰고, 명사는 청이 쓰고. 그런 취지에서 낸 책이다.

한 시대를 기록하는 의미라는 말인가?


책 머리말에는 그렇게 썼는데 사실 그건 ‘드립’이다(웃음). 연재하면서 아쉬움은 있었다. 매주 마감에 쫓겨 개미 더듬이처럼 코앞만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단행본이 박근혜 시대라는 역사의 주요 장면들을 복기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왜 조금 더 지나서가 아니라 이 시점인가? 박근혜 게이트는 아직 진행 중인데?

분명 박근혜 시대는 꾸준히 ‘역사화’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흐려지고, 그 시대를 살아갔다는 현실감은 옅어질 것이다. 동시대인들의 현실감을 잃지 않으면서 개개의 사건을 조망할 수도 있는 책을 내고 싶었다. 어떤 의무감, 세상에 대한 책무,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라는 사명감으로 책을 만들지는 않았다. 거창한 취지를 내세우기에는 부끄러운 책이다.

2009년부터 ‘본격 시사만화’를 그렸다. 어떤 계기로 연재를 시작하게 됐나?


각색을 좀 해서 말하자면 오늘이(5월23일) 마침 노무현 전 대통령 기일이니 딱 8년 전 이야기다. 그 무렵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만화를 올리던 아마추어 만화가였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당시 만화를 그린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추모 웹툰을 그렸다. 나 역시 추모 웹툰 비슷한 걸 그렸는데, 마침 <시사IN> 기자의 눈에 띄었다. 사실 당시 내 그림이나 서사 전개 능력으로는 매주 두 쪽씩 연재하기에 부족했다. <시사IN>이 믿고 맡겨준 덕분에 계속 연재할 수 있었다.

디시인사이드 시절 이전은 어땠나? 만화는 언제부터 그린 건가?

만화가 인터뷰할 때는 왜 항상 그 질문이 나오는지(웃음). 질문받을 때마다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만화의 정의부터 걸린다. 글과 그림이 결합된 형태를 만화라고 한다면 대부분 사람은 아주 어릴 적부터 만화를 끄적거린다. 불특정 다수의 대중 독자에게 만화를 보인 시점이라면 2005년 정도다. 군대 다녀와서 대학에 복학했을 때다. 웹툰 작가들이 막 데뷔하던 시기였다.

시사만화가로서 전업 작가가 되기를 원했나?

‘시사만화가가 되어야지! 열심히 해야지!’ 하지는 않았다. <시사IN>에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시사만화가가 됐다고 보는 게 맞다. 사실 그때도 시사만화를 이렇게 오래 그리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보다 먼저 김태권 만화가가 <시사IN> 지면을 맡았다. 김태권 만화가는 워낙 완벽주의자라 만화 안에서 자기완결성을 추구한다. 그렇게 완벽하게 그림을 그리던 분이 맡았던 지면을 이어받았는데, 내가 어찌 할까 싶었다. 나 자신은 설렁설렁 대충 하는 스타일이라 별 문제가 없었지만 <시사IN>이 ‘이런 걸’ 계속 용인해줄지 의구심이 들었다.

매주 작업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목요일 오후쯤부터 ‘이번 주에 뭘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머릿속에서 대충 편집회의를 한다. 목요일 저녁부터 스케치를 막 하고 콘티를 하고 아이디어 착착착 쓰고 대사부터 딱딱딱 친다. 그다음에 샥샥샥 금요일 새벽까지 작업한다. 다시 금요일 아침부터 또 색칠하고 편집하고 딱딱 하면 금요일 저녁쯤 마감할 수 있다.

서사를 구상하는 데에 시간을 훨씬 많이 쓸 줄 알았다.

전혀 아니다. 대충 갖다 붙이는 거다. (주제와 패러디 요소를) 딱 맞아떨어지게 배치해야 하는데, 얼추 비슷해 보이니까 생각나는 대로 슥슥 한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요소는 구상보다 그림인가?

맞다. 기술적 측면이 더 큰 영향을 준다. 그림에 품이 많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자잘하게 많이 그려놓는 만화는 실제로 오래 걸린다. 딱 봐도 설렁설렁 인물 위주로 때우는 건 적게 걸리고. (구상하는 데에)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는다.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7회 연재분은 시사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역사 교양 만화를 그렸다. 시사만화 대신 역사 교양 만화를 그리고 나중에 묶어서 단행본도 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갑자기 대한민국 사상 최고의 스캔들이 터지네? 설마 이렇게 심각한 문제일까 싶어서 뜸을 들였는데 정말 파천황이 될 일이었다. 세상이 뒤집혔는데 나 혼자 교양 만화 그리면 안 되니까 다시 말려들어가게 됐다.

넘쳐나는 소재가 달갑지 않았나?

오히려 부담이 컸다. 이런 엄청난 소재를 다루면 시사만화가들 사이에서도 역량 차이가 확 드러난다. 일종의 기량 시험대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시사만화가들은 대부분 제발 세상이 조용하고 무난하게 흘러가길 바란다. 서로 심심하고 재미없게, 사람들도 시사만화에 별 관심 안 갖게(웃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또 세상이 슬슬 스릴을 잃어가고 있다. 조만간 다시 교양 기조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책에 실린 만화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꼽는다면?


2016년 마지막 주에 그린 ‘그네,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다. 패러디 소재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조제)>이 내 인생의 영화 세 편에 든다. 시국이 여기에 딱 맞아떨어지니 좋았다. 이런 걸 그릴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조제>보다 덜 대중적인 패러디가 대다수다. 자주 쓰는 <에반게리온> 같은 애니메이션, <LOL> <오버워치> 등 게임 얘기가 잦다.

<에반게리온>은 별로 안 나왔을 텐데(웃음)? 내가 알기론 400회 넘게 연재하는 동안 <에반게리온>이 좀 많이 나온 만화는 단 4회다. 많이 알려져 있는 작품이라 자주 나온다고 여기는 것 같다. 게임은 예전에 많이 했다. <LOL>은 요즘 일본 서버에서 한다. 워낙 사람의 ‘멘탈’을 갉아먹는 게임이라 그런지 대화만 안 통해도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되더라. 일이 바빠질 때는 게임을 싹 지운다. 그러다 ‘아아아아!’ 하면서 다시 깔고, 또 하게 되고. 게임은 노상 깔고 지우고 한다.

‘본격 시사만화’ 말고 다른 계획이 있나?


8월쯤부터 ‘저스툰’이라는 플랫폼에 <한·중·일 세계사 만화>를 그린다. 원래는 <태평양전쟁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에서 태평양전쟁을 거의 못 다뤘다. 독자들 요구도 있고 나 스스로도 숙제처럼 남아 있다. 빨리 마무리해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른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10년, 20년 뒤 계획도 있나?


내년 일도 모르는데 10년, 20년은 까마득하다. 10년, 20년 뒤에도 만화를 계속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 ‘본격 시사만화’도. <시사IN>이 망하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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