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이 승리로 끝난 뒤 그 승리를 명실상부하게 체화한 ‘국민의 정부’는 10년이 지난 1997년에야 들어섰다. 1987년 대선에서 6월 항쟁의 열기를 이어받은 김대중(평화민주당)·김영삼(통일민주당) 후보가 받은 득표율을 합치면 쿠데타 세력인 노태우(민주정의당) 후보보다 많았다. 하지만 야권 분열로 그해 선거에 패배했다. 10년 뒤 1997년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승리하면서 지연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2017년 정권교체 역시 한국 역사에서 반복되는 ‘지연’ 현상의 하나다. 2012년 대선 전까지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 4대강 사업, 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사업을 추진해 민심과 이반된 상태였다. 국민 대다수가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것을 강행하는 행정부 수반은 웬만한 정치적 후진국이 아니면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외 선진국 중에서 거의 유일한 대통령중심제 국가인 한국에서나 가능했던 현상이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집권 여당의 지지율이 50% 미만으로 떨어지면 조기 총선으로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재기의 기회를 구걸한다.

민의(民意)에 반하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2012년 정권교체의 분위기는 숙성되어 있었다. 당시 유력한 야권 주자가 2명이나 나온 것도 정권교체 분위기를 반영했다. 당시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을 합치면 박근혜 후보를 쉽게 누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른바 “뻘짓만 안 하면 정권교체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것이 야권의 분위기였다. 2012년 선거에서도 집권 여당에 대한 분노는 분출구를 찾지 못했다.

2년 뒤 분노는 더욱 커졌다. 바로 세월호 참사의 비극이 정부 여당의 무능력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세월호 참사 두 달 뒤 실시된 지방자치제 선거에서 정치적 심판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오죽하면 당시 새누리당의 선거 구호가 “한번만 살려주십시오”였겠는가. 그러나 심판은 내려지지 않았다. 2014년 7·30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압승하며 국민의 비애는 깊어갔다. 2016년 10월 박근혜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누적되어온 심판의 에너지가 분출했다. 2017년 정권교체는 경제도 문화도 침체 일로를 걸어온 진짜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사필귀정이자, 5년 전 했어야 할 심판의 지연이다.
 

ⓒ연합뉴스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태호 최고위원이 재보궐 선거 승리를 축하하며 김무성 대표를 업어주자 최고위원들과 지도부가 환호하며 박수치고 있다. 2015.4.30

심판은 생각보다 긴 시간차를 두고 온다. 10년, 20년이 걸릴 수도 있고 미얀마처럼 1988년 88항쟁의 호기를 놓치면(1990년 총선 결과를 군부가 부정), 한참 지난 후에야 올 수도 있다. 그래도 심판은 반드시 온다. 정치적 사건의 효과는 항상 누적되기 때문이다. 저질 제품을 팔던 기업도 당장 고급 제품을 팔기 시작하면 곧바로 손님들이 돌아오지만, 국민은 잘못된 정책을 폈던 사람이나 집단을 기억하며 단죄하고 싶어 한다. 중요한 점은 혁명이 지연되는 긴 시간에 사람들은 서로 다른 저마다의 서사를 갖는다는 것이다. 역사는 ‘러닝타임’이 무한대인 하나의 영화이지만 그 줄거리의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보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세대가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폭압의 시간을 견뎌내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러닝타임’이 무한대인 하나의 영화

역사 속에서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그 역사는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역사에만 매몰되면, 우리는 일종의 ‘예외주의’라는 함정에 빠진다. 예외적인 정치사에 따라 예외적인 제도를 갖춰야 한다며 보편 가치들을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은 이 같은 예외주의를 자주 이용했다. 예를 들면 분단 상황을 언급하며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 조항을 정당화했다. 대한민국이 천연자원 하나 없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해야 한다며 재벌 중심 경제정책을 정당화했다. 또 분단 상황에 대응하고 국가 주도 경제발전의 신화를 이어 나간다며 대통령중심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예외주의 주장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어떤 변화를 추구하든 그 과정도 중요하다. 과정이 가치에 어긋나면 그 변화는 오래갈 수 없다. 어긋난 가치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외주의에 빠지지 않는, 그래서 이쪽저쪽에도 흔들리지 않는 큰 발걸음을 새 정부에 기대한다.

기자명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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