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켈
동네 의원에 감기 환자가 제일 많듯, 동네 산부인과에서 제일 많이 보는 환자는 질염 환자이다. 말이 질염이지 ‘질 분비물이 늘어났어요’ ‘가려운 것 같아요’ ‘냄새가 나요’ 따위 증상으로 오는 환자들인데, 진찰이나 검사를 해보면 진단명을 붙이기도 애매하다. 왜? 정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대는 SNS를 통한 외모 검열의 전성기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사이 갭(thigh gap·양 허벅지 사이에 틈이 생길 정도로 말랐는지), 사이 크리스(thigh crease·허벅지와 골반 사이 접히는 선이 생기는지), A4 허리(A4 용지로 허리를 가릴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이 난무한다. 그중 미국에서 유행했다는 ‘팬티 챌린지’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 여성이 자신의 벗은 팬티를 찍어 올리면서 “봐라, 나는 분비물이 안 묻어 나왔다. 깨끗하다”라고 도전 과제를 냈다.

질 분비물은 눈물이 이물질을 씻어내는 것이나 피부 각질이 때로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수명을 다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오는 질 점막 세포, 이물질을 씻어내는 역할을 하는 애액, 나쁜 병원균이 번식하지 못하게 산성을 유지해주는 유산균 등의 복합물이다. 자정작용을 잘 하고 있다는 증거다. 치즈나 요구르트 비슷한 살짝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도 정상이다. 자주 외음부를 씻게 되면 오히려 좋은 유산균이 씻겨나가고 질 내 산도가 유지되지 못해 염증이 더 잘 생길 수 있다. 특히 질 내를 씻는 질세척(뒷물)은 오히려 세균과 염증을 자궁 내로 전파할 수 있어서, 자궁 내 감염·불임·난소암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온 바 있다.

왜 하지 말라는데도 우리는 ‘이곳’을 강박적으로 씻고 있을까. 질 세척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고대에는 여러 문화권에 걸쳐 피임을 위해 꿀이나 악어 똥, 올리브유, 포도주, 소금물로 질 세척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피임에 아무런 효과가 없고 감염만 일으킬 게 뻔하지만 현대적인 피임법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피임에서 청결로 개념 전환이 되는데, 1889년 영국 회사 레킷벤키저(바로 그 가습기 살균제 모회사다)가 광범위 항균제인 라이솔(Lysol)을 개발한 뒤 주방세제나 방향제로 쓰이는 이 제품을 희석해서 질을 세정하라고 광고했다. ‘완벽한 아내라도 단 한 가지를 잊는다면 남편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거나 ‘위생적인 여성들’이라며 광고했다. 미개한 20세기 일인 것 같은가. 지금도 대놓고 외음부에서 꽃향기가 나야 한다고 강요하는 여성청결제, 데오드란트 시장이 매년 30~40%씩 성장하고 있다. 생식기 ‘청결’에 대한 올바르지 않은 사회문화적 신념이 생식기 건강을, 여성의 자존감을 위협하고 있다.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습해지면서 냄새난다고 놀림받았다며 눈물을 쏟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산부인과에 온다고 제모와 질 세척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온 환자도 있었다. 비누·소금·붕산·빙초산·락스….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들로 평생 뒷물을 해온 어머니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다 보면 초등학교에서부터 몸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음질염이 자주 재발하는 분은 너무 자주 씻는 습관이나 1회용 생리대와 팬티라이너가 원인일 수 있다. 천 팬티라이너나 생리컵을 이용하면 나아질 수 있다. 질은 물로만 씻어도 충분하지만 생리나 성관계 이후 꼭 청결제를 쓰고 싶다면, 산성으로 된 여성청결제 소량을 외음에 사용해볼 수 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된다면 인터넷이나 엄마 말고 산부인과 의사와 상의하면 된다.

꽃향기나 비누향 나는 질이 좋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남자친구나 광고를 만난다면 꼭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외모, 머리 숱, 피부, 체취까지…. 촘촘하게 죄어 들어오는 몸에 대한 압박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끝이 보이지 않아 두렵다.

기자명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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