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비브, 앤, 사라, 클로에 그리고 헬레네. 이렇게 다섯은 늘 함께 다니는 친구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헬레네를 따돌리기 시작한다. 이유는 모른다. 따돌림이란 별다른 이유 없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따돌림은 점점 심해진다. 헬레네가 100㎏이 넘는다는 둥, 더러운 냄새가 난다는 둥 말도 안 되는 거짓 낙서가 어디든 따라다닌다. 보호의 울타리가 되어야 할 학교라는 공간과 친구라는 존재가 도리어 헬레네의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어버렸다.

〈제인 에어와 여우, 그리고 나〉 패니 브리트 글, 이자벨 아르스노 그림, 천미나 옮김, 책과콩나무 펴냄

헬레네는 〈제인 에어〉를 읽으며 위안을 삼는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를 살아가는 제인 에어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외숙모 손에서 핍박받으며 자란다. 비록 불행한 어린 시절을 지냈지만 제인 에어는 영리하고, 날씬하며, 지혜로운 여인으로 자란다.


헬레네의 세상은 온통 잿빛인 반면, 〈제인 에어〉의 세계는 아름다운 총천연색이다. 수풀은 우거지고, 대저택은 아름답다. 헬레네는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질 때 전략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제인 에어〉를 펼쳐든다. 자신은 그저 책이 좋다는 듯이. 너희가 무서운 게 아니라는 듯이.

그런데 제인 에어에게도 헬레네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자신이 저택의 주인 로체스터 씨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제인. 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약혼녀가 있다. 한편 헬레네는 아무런 친구도 없이 자연 캠프를 떠나야 한다. 즐거워야 할 캠프가 헬레네에겐 악몽이다. 새 수영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소시지로 보일 지경이다. 섬세한 헬레네의 상상력이 귀여우면서도 측은하다.

끔찍하던 캠프에서 헬레네의 인생이 반전을 맞는다. 우연히 자신을 따르는 야생 여우 한 마리를 만나게 된 것. 그리고 제랄딘이라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된다.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 한 명. 그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헬레네의 세상은 다시 고유의 색을 띠게 된다.


〈제인 에어와 여우, 그리고 나〉는 형식이 돋보인다. 스케치마냥 단조로운 연필 선으로 그려진 헬레네의 세계와 울긋불긋 수채화로 아름답게 채색된 〈제인 에어〉의 세계는 시각적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두 세계의 차이가 환경에 따라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극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 작품은 대사가 적은 그래픽노블 같기도 하고, 대사가 많은 그림책 같기도 하다. 현실과 소설의 경계처럼, 그래픽노블과 그림책의 경계에 서 있다.

잠깐 제인 에어는 어떻게 됐냐고? 이번 기회에 〈제인 에어〉를 한번 읽어보면 어떨까. 헬레네의 대사를 빌려 귀띔하자면 “읽어보면 알 거야, 해피엔드거든”. 장담하건대 〈제인 에어와 여우, 그리고 나〉를 보고 나면 〈제인 에어〉도 읽어보고 싶어질 것이다.

 

기자명 박성표 (〈월간 그래픽노블〉 온라인콘텐츠 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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