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12일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는 한국 관련 최종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서 2015년 12월28일 ‘한·일 합의’는 피해자 구제권을 규정한 고문방지협약 제14조에 비춰 합의 내용과 범위에서 모두 미달된다고 지적하고 기존 합의의 수정을 권고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5월11일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한·일 합의가) 국제사회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는 만큼 책임을 갖고 실시해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국제사회 여론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유엔은 ‘위안부’ 합의에 대해 재협상을 촉구한 것이다.

ⓒEPA1월2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국회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2007년 3월16일 아베 총리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없었다’는 요지의 국회 답변서를 내각 회의(각의)에서 결정했다. 강제연행이나 강제성이라는 명확한 표현을 안 쓴 고노 담화의 한계를 이용해, 강제성 관련 표현을 ‘이른바 강제연행’으로 바꿨다. 각의 결정 이전부터 아베 총리는 “관헌이 집에 들어와 사람을 납치해가는 좁은 의미의 강제성을 드러내는 증거는 없다”라고 발언했다. ‘이른바 강제연행’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연행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고노 담화를 부정하려는 술책이었다.


각의 결정 이후에는 의도적으로 ‘말 바꾸기’를 해 혼란을 부추겨왔다.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위안부’ 관련 자료의 정보공개 청구를 해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자료팀의 고바야시 히사토모 씨는 “아베 정권이 애매모호하게 ‘없다’는 주장을 계속 펼쳐 마치 강제연행을 드러내는 문서가 전혀 없는 듯한 이미지를 심어왔다”라고 지적한다. 2007년 각의 결정은 ‘같은 날 (1993년 8월4일 고노 담화의) 조사 발표까지 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드러내는 기술도 없었다’는 내용인데, 어느새 ‘강제연행은 없었다’로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 바꾸기는 2014년 6월 아베 정부가 고노 담화 검증 보고서를 낸 다음부터 더욱 본격화되었다.

2014년 10월24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중의원 내각위원회 답변에서 ‘기술이 없다’를 “강제연행은 확인 안 된다”로 바꿨다. 2016년 2월16일 외무성 심의관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심의에서 “1990년대 초반 이후 ‘위안부’ 문제에 관한 본격적인 사실 조사를 했지만, 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부와 정부가 이른바 강제연행을 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외무성 홈페이지에도 이를 게시했다(〈시사IN〉 제486호 ‘기만하고 떠넘기는 참 이상한 합의’ 기사 참조). 이 발언은 ‘1993년 8월 고노 담화의 발표 당시까지’라는 기간을 쏙 빼버렸다. 이런 말 바꾸기는 마치 관련 문서가 없었다는 듯한 인상을 줬고 일부 언론이 협잡해서 ‘강제연행 증거는 없다’는 보도를 계속 내왔다.

고노 담화 발표 당시 이미 좁은 의미의 강제연행을 드러내는 증거는 발견되었다. 대표적 자료가 BC급 전범재판 가운데 1948년 인도네시아 바타비아(현 자카르타)에서 네덜란드 정부가 실시한 바타비아 임시 군사회의 기록이다. 1944년 2월 일본군은 인도네시아 자바섬 스마랑에 위안소를 설치하기 위해 근처 억류소 3곳에서 네덜란드 여성 최소 24명을 위안소로 직접 강제연행해 위안부 일을 시켰다. 이때 강제가 아니라고 조작하기 위해 일본군은 일본어로 된 승낙서에 네덜란드 여성들의 사인을 받기까지 한다. 바타비아 군법회의는 “일본군이 매춘을 시킬 목적으로 위안소로 연행, 숙박을 시키면서 협박 등으로 매춘을 강요”한 혐의로 일본군 장교 7명과 군속 4명에게 사형 등 유죄판결을 내렸다.

1996년 국회에서 자료 발굴을 추궁당한 일본 정부는 각 정부기관에서 발견된 ‘위안부’ 관련 자료를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역대 일본 정부는 조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나 몰라라 하는 사이 하야시 히로후미 교수 등 연구자와 시민들이 관련 공문서를 꾸준히 발굴해왔고, 그 소식은 한국에도 크게 보도되었다.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면 아베 정부는 국립공문서관, 법무성 등 관련 정부 기관에 존재하는 공문서라도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 조사를 담당하는 부서인 내각관방실이 인정한 문서가 아니면 ‘없다’라고 잘라 말해왔다. 결국 아베 정부의 ‘없다’는 공문서의 존재 여부가 아닌 셈이다.

아베 정부가 새로 발굴된 공문서나 연구를 무시하자, 시민단체들이 직접 나섰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동참하는 국회의원이 대정부 질문을 해 자료의 존재를 인정하도록 했다. 바타비아 임시 군사회의 기록이 고노 담화 작성 시 법무성이 정부에 제출한 자료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2013년 6월18일 아카미네 세이켄 중의원 의원의 국회 질문으로 확인되었다.

2013년 6월3일에는 일본의 시민단체가 강제동원 관련 기록이 포함되어 있는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 자료를 내각관방실에 제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답이 없었다. 2014년 6월2일에는 직접 공문서의 복사본을 들고 내각관방실을 찾아갔다. 한국을 비롯한 8개국 피해자와 지원자들이 참석한 제1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가 사실 근거 자료 53점과 고노 담화 발표 이후 민간의 노력으로 발굴된 문서 538건을 내각관방실에 제출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바야시 히사토모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제출받아 내각관방실이 만든 도쿄재판과 BC급 전범재판 관련 자료 목록. 각 문서의 '위안부' 관련 기술 개요가 따로 정리되어 있다.

고바야시 씨는 2015년 7월29일 538건 중 도쿄재판과 BC급 전범재판 관련 자료 176점을 콕 찍어 소장처인 공문서관에 내각관방실로 보내도록 요청했다. 마침내 지난 4월17일 공문서관이 소장 자료를 확인한 후 내각관방실에 해당 자료 19부책 182건을 제출한 사실이 밝혀졌다. 일본 법무성이 작성해 보관하다가 1999년 공문서관에 넘겨준 이 문서에는 일본군이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중국과 네덜란드 여성을 강제연행해 ‘위안부’로 삼았다는 진술이 포함되어 있다.


공문서만 있는 게 아니다. 1991~2001년 각국의 피해자들이 제기한 재판 자료 10건도 있다. 일본 사법부는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원고들이 입은 피해와 군의 가해 사실은 여럿 인정했다. 지난 5월11일 사망한 중국 하이난 섬의 피해자 천야볜 씨는 다른 7명과 함께 손해배상과 사죄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927년생인 천 씨는 만 열네 살이던 겨울, 밭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총을 든 일본군 두 명에게 납치되어 끌려갔다. 3개월 동안 낮에는 밥과 청소를 하고 밤에는 강간당하는 날이 이어지다가 큰 마을에 있는 위안소로 끌려갔다. 3개월 후 다시 주둔지로 돌려보내지고 3년 동안 감금당한 채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1945년 8월15일 광복된 후에도 그녀는 일본군에게 다시 납치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한 달을 산속에 숨어 살았다고 한다. 2006년 도쿄 지법과 2009년 도쿄 고법은 하이난 섬 피해자들이 주장한 납치·감금·성폭력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제12회 아시아연대회의가 일본 정부에 제출한 사료는 한국 정부에도 제공되었다. 주일 대사관 직원이 자료 제공을 요청해 건네주었다. 한국 여성가족부가 5월4일 발간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한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국내외 일본군 ‘위안부’ 관련 소장된 자료를 전면 조사해 이를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데이터베이스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실상 자료 제공처의 하나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이버 역사관〉의 자료는 빈약하다(hermuseum.go.kr).

일본의 〈액티브 뮤지엄 여성들을 위한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왐)〉은 2016년 11월15일부터 홈페이지에 앞서 말한 538건을 포함해 지금까지 발굴된 거의 모든 공문서를 공개하고 있다(wam-peace.org/ianfu-koubunsho). 일본 정부가 인정한 521건과 인정하지 않는 446건으로 나누어 손쉽게 볼 수 있도록 각 원본 이미지와 문서 정보를 게재하고 자료명과 부책은 영어와 한글로도 번역해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민간의 노력은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공문서 철저히 분석해야

ⓒ연합뉴스5월8일 문재인 대선 후보가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열린 유세 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왼쪽)의 말을 듣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후보 시절부터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힌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에 한·일 합의의 재협상을 권고하는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조선인 여성에 대한 직접적인 강제연행 문서 존재 여부와 동원 양태만을 부각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일본 정부에 일일이 맞대응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향후 더 이상 일본이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거짓말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재협상에 앞서 지금까지 발굴된 공문서에 드러난 동원 방식은 물론 위안소 설치, 운영 등 제도 전반에 관한 일본군과 일본 정부의 책임을 파악해야 한다. 조선인 피해자에 대한 좁은 의미의 강제연행을 드러내는 공문서가 없다며 ‘위안부’ 문제를 한·일 문제로 왜소화하려는 아베 정부의 의도를 저지해야 한다. 이 문제가 일본의 식민지를 비롯해 점령 지역 여성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기자명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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