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의 전주곡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전격 해임했다. 임기가 6년여 남은 상태였다. 코미는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 내통 의혹, 이른바 ‘러시아 게이트’를 수사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가 코미에게 사실상 수사 중단을 압박한 메모(이하 코미 메모)까지 폭로되어버렸다. 결국 법무부가 나섰다. 로버트 뮐러 전 FBI 국장을 러시아 게이트 수사를 총괄할 특별검사로 전격 임명한 것이다. 트럼프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뉴욕타임스〉가 폭로한 코미 메모는, 지난 2월 백악관 집무실에서 트럼프와 독대한 코미가 당시 대화 내용을 빽빽이 적어놓은 것이다. 메모에 따르면, 트럼프는 자신의 첫 국가안보보좌관인 마이클 플린의 러시아 내통 혐의에 대해 코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이 사건을 놓아줬으면 한다.” FBI에 대한 수사 중단 압력 발언으로 비쳤다. 이 보도 이후 야당인 민주당이 탄핵 공세를 시작했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알 그린 등 의원 33명이 ‘트럼프가 FBI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코미를 압박한 끝에 해임했다’라며 탄핵 의견을 내놓고 있다. 특히 알 그린 의원은 하원 본회의장에서 트럼프 탄핵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다우존스 산업지수는 코미 전 국장의 메모가 보도된 5월17일 무려 372.82포인트나 폭락했다. 특검이 임명되거나 트럼프에 대한 탄핵안이 현실화되면, 세제 개편을 포함한 신정부의 경제부양책들이 공염불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불안심리 때문이다.

시카고 법대 출신으로 올해 56세인 코미 전 국장은 공화당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요직으로 꼽히는 뉴욕 남부지검 연방검사를 거쳐 법무부 부장관을 거쳤다.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 당시인 2013년 9월 임기 10년의 FBI 국장에 지명됐다.

ⓒAP Photo3월20일 제임스 코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러시아 게이트'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코미 메모는 2쪽 정도의 길이인데 트럼프의 발언이 꼼꼼히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모 전체가 공개될 경우 아직까지 탄핵에 미온적인 공화당 의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실제 저스틴 애머시 공화당 의원이, 의회 전문 〈더 힐〉이 “코미 메모가 사실이라면 트럼프는 탄핵감이냐?”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것도 그런 기류를 반영한다. 공화당의 제이슨 샤페츠 하원 정부감시위원장도 “코미 전 국장의 메모 입수가 필요하다면 소환장을 보낼 준비가 돼 있다”라며 격앙된 분위기다. 코미는 문제의 메모를 FBI 및 법무부 내 극히 일부 인사들과 공유했지만 러시아 게이트 수사에 영향을 줄까 봐 부하 직원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상원 정보위원회와 법사위원회는 코미에 대해 청문회 증언을 요청한 상태다.

 
트럼프가 정말 FBI의 러시아 게이트 수사를 차단하기 위해 코미를 압박하고 해임했다면, 법적으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게 중론이다. CNN 법률 분석가 페이지 페이트는 “코미 메모가 실존하고, 유출 내용이 사실이라면 트럼프는 연방법상 범죄인 ‘사법 방해’를 저질렀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원 정보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애덤 시프 의원은 “사실이라면 대통령이 수사에 간섭하거나 방해하려 했다는 방증이다”라며 탄핵 불가피론을 지폈다.

미국 역사상 탄핵 대상 대통령은 3명

ⓒAFP PHOTO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서는 집권 여당인 공화당 의원 다수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 탄핵이 진행될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사태가 실제로 발생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이 높지 않다. 미국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절차가 대단히 복잡할 뿐 아니라 공화당과 민주당의 절대적 공조 없이는 실현되기 힘들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 탄핵 사유로 “반역과 뇌물수수 혹은 기타 ‘중대 범죄’를 범해 유죄 확정을 받은 경우”로 한정한다. 


FBI는 트럼프 측 인사들을 러시아 게이트 관련 혐의로 수사해왔으나 대통령을 수사 대상으로 올린 바 없다. 설사 트럼프가 ‘사법 방해’라는 죄를 범했다 치더라도, 특검이 트럼프 대통령을 기소하기는 힘들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코미에게 했다는 문제의 발언만 놓고 탄핵을 밀어붙이기엔 역부족이라는 관측이다. 전직 연방검사를 지낸 버락 코언 변호사는 〈워싱턴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발언엔 사법 방해로 볼 만한 근거가 있다. 다만 트럼프가 사법 방해를 목적으로 그런 발언을 내놓았다고 입증해야 한다. 이게 어렵다”라고 말했다. 형사법 전문가인 에드워드 맥마흔 변호사도 비슷한 견해다. 그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만약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수사 대상(마이클 플린)을 잘 아는 사이라서 사적 의견을 말했을 뿐’이라고 둘러대면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얼마나 힘든지는 과거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미국 역사상 탄핵 대상에 오른 대통령은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 37대인 리처드 닉슨, 42대 빌 클린턴 등 3명이다. 이 가운데 잭슨은 남북전쟁 뒤 에드윈 스탠턴 육군장관(국방장관)을 의회 동의 없이 해임했다는 이유로 탄핵에 직면했으나 1표 차이로 부결돼 탄핵을 면했다. 클린턴은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 섹스 스캔들로 탄핵 심판에 회부됐으나 상원에서 부결됐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탄핵이 100% 확실하던 닉슨은 사임했다.

현재 공화당 의원 대부분은 트럼프 탄핵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다. 대통령 탄핵이 발의되려면 하원이 움직여야 하는데, 435석 가운데 과반을 훨씬 웃도는 238석이 공화당에 넘어가 있다. 민주당이 탄핵안을 발의하려면 공화당 의원 가운데 최소한 28명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공화당)은 5월17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을 여전히 신뢰한다. 의회는 권력자를 감시해야 하지만, 예단하는 것도 위험하다”라며 트럼프 방어에 나섰다. 하원에서 탄핵안을 발의해도 상원의 벽을 넘기가 힘들다. 상원 의원 100명 가운데 탄핵안이 통과되기 위해선 60명이 필요한데, 탄핵 주체인 민주당 의원은 겨우 46명이다. 결론적으로 하원은 물론 상원까지 장악한 공화당이 협조하지 않는 한 트럼프 탄핵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수사 특검’이 장기화되어 2018년 의회 중간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봐 우려하고 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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