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은 책 한 권이었다. 문재인은 2012년 18대 대선에서 패배한 뒤 1년 만에 출간한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2011년 5월에 펴낸 〈문재인의 운명〉.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대선 출마까지 간 것도 그 책 출간에서 시작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에 맞춰 참여정부를 증언하는 책을 내기로 했는데 담당자가 입원을 했다. 문재인이 대신 맡았다. ‘오로지 의무감 때문’에 쓴 책이 20만 부 넘게 팔렸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사람들은 책의 제목과 마지막 문장을 두고 대선 출마 시사로 받아들였다. 책은 이렇게 끝난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총선 출마 전후로 중요한 정치적 행보가 있을 때마다 책을 냈다. 대담 형식도 있고, 단독 저술도 있다. 문 대통령이 저자로 이름을 올린 책을 통해 그의 국정 철학과 앞으로의 향방을 가늠해보았다. 그의 책 제목은 ‘운명’에서 시작해 ‘희망’으로 끝난다(출간 당시 직책은 생략했다).
 

ⓒ연합뉴스

 


〈문재인의 운명〉 (2011년 6월)

 

 

 

‘나는 참여정부 5년에 대한 복기를 강조한다. 정권을 운용한 우리뿐만이 아니다. 범야권, 시민사회 진영, 노동운동 진영, 나아가 진보개혁 진영 전체가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1년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던 문재인은 이 책에서 노 대통령과의 첫 만남 등 개인적 인연을 돌아보고 참여정부의 공과를 평가했다. 그가 노무현 정부의 아쉬움으로 꼽은 첫 번째는 검찰 개혁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에 치중한 나머지 검찰 권력을 분산·견제하는 데 소홀했던 개혁 방향에 대한 후회를 드러냈다. 문재인은 이후로도 모든 저작에서 예외 없이 검찰 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책에서 검찰 개혁 외 교육과 노동 분야도 특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문재인은 평가했다. 교육혁신위원회(교육혁신을 위해 설립되었던 대통령 자문기구)를 통해 교육 개혁을 도모했지만 교육담당수석을 별도로 두지 않아 힘이 약했다는 것이다.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에 두지 못한 아쉬움도 책에 담겨 있다.

청와대 참모진을 짜는 현재 시점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청와대 비서실 개편과 관련한 부분이다. “부처별 수석제를 없앤 것은 청와대 수석이 부처 위에 군림하는 기존의 폐단을 없애기 위한 취지였지만 안정된 시기라면 몰라도 청와대 주도의 강력한 개혁이 필요한 시기에 바람직한 것이었는지 의문이다.” 비서실의 힘이 좀 더 강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3실 10수석’의 청와대 조직을 ‘4실, 8수석, 2보좌관’ 체제로 바꿨다. 비서실과 별도의 정책실을 부활시켜 정책 보좌 기능을 강화했다. 이후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그는 최측근 참모를 고르는 기준도 밝혔다. 첫째가 겸손, 그다음이 능력, 헌신 순이다.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2011년 11월)

 

 

 

 

‘참여정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철저하게 보장했다. 반면 검찰 개혁의 핵심 과제인 민주적 통제, 즉 분산, 견제와 감시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하루 뒤, 조국 교수(서울대)를 민정수석으로 임명했다. ‘깜짝 기용’이지만 이미 6년 전, 공개된 자리에서 입각을 제안한 적이 있다. 2011년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를 출간한 뒤에 연 북콘서트 현장에서다. 참여정부 시절 사법 개혁에 관여했던 김인회 교수(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와 함께 검찰의 본질을 살피고 참여정부 검찰 개혁의 성과와 실패를 돌아본 책이다. 문재인은 당시 북콘서트에서 “강금실 전 장관 콘셉트의 법무부 장관이 필요한데 임기 5년 내내 장기적으로 검찰을 개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라며 사회자로 참석한 조국 교수에게 의중을 물었다.

검찰 개혁만 다룬 이 책에서 문재인·김인회는 참여정부 검찰 개혁부터 되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참여정부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데만 집중해 견제와 감시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김인회는 대한민국 검찰이 수사기관이자 공소기관으로 수사의 시작, 수사 방법 선택, 구속영장 신청, 기소 여부 선택, 공판 진행, 재판 집행 등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데 동감했다.

 

 

 

 

 

ⓒ연합뉴스2011년 10월1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가운데)의 북콘서트에서 조국 교수(왼쪽 두 번째)가 질문을 듣고 웃고 있다.

 

책에서는 검찰 개혁의 구체적인 대안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을 제시했다. 두 대안 모두 이번 대통령 선거 공약에 그대로 담겼다. 경찰에 수사권을 이양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 작업은 참여정부 당시 2004년 9월부터 2005년 5월까지 검·경수사권조정자문위원회 등에서 진행됐다. 왜 실패했을까? 문재인·김인회는 책에서 논의 주체를 검찰청과 경찰청 등 당사자에게 맡겨 첫 번째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보았다. 경찰은 수사권 독립을 일거에 가져오려 했고, 검찰은 경찰에 수사권을 주면 국민의 인권 보장이 취약해진다는 논리를 들어 반대했다. 책에서 문재인은 ‘수사권과 공소권의 분리 부분을 단숨에 하기 어려워 수사권 중 일부 가벼운 사건에 대한 수사권을 경찰에게 주고 절충, 타협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또한 수사권 조정의 궁극적 목적은 권한 배분이 아니라 권력기관의 민주적 통제를 통한 국민의 인권 옹호라는 점을 문재인·김인회는 분명히 했다. 두 사람은 강화되는 경찰 권한에 대한 통제장치 마련도 주문했다.

참여정부에서 검찰 개혁만을 위한 특별기구가 없었던 점도 이 책에서 아쉬움으로 꼽았다. 당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청와대와 법무부에 의해 추진되었고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과 경찰의 합의에 의해, 사법 개혁은 사법개혁위원회에서 진행되었다. 모두 검찰 개혁과 관련 있는데 하나의 단위에서 논의되지 못한 것이다.

ⓒ연합뉴스5월11일 조국 민정수석(왼쪽)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재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수처는 검찰 권한의 일부를 분산하고 검사 역시 수사 대상에 넣어, 검찰 견제의 기능을 담당할 것이라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신임 조국 민정수석은  “공수처는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이야기이고 문재인 대통령의 소신이다. 두 분 대통령의 발언과 책을 보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조 수석이 말한 책이 바로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이다. 조국 민정수석은 “공수처가 검찰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검찰을 살리는 것이라 믿는다”라고 덧붙였다. 조 수석이 담당할 공수처의 밑그림 역시 이 책에 담긴 내용과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 당시 법무부와 검찰은 공수처 설치에 반대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공직부패수사처의 설치에 관한 법률안’을 2004년 국회에 제출했다. 야당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조차 적극적이지 않았다. 공수처 수사 대상에 국회의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국 민정수석이 “공수처 신설은 권한상 국회에 있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다. 조 수석은 “내년 6월 지방선거 전에 검찰 개혁을 마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먼저다〉 (2012년 7월)
 

‘포용적 성장이란 선성장 후분배의 논리에 가로막혀온 분배와 복지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입니다. 내부의 수요와 구매력 기반을 확충하고 이를 바탕으로 투자와 고용을 촉진함으로써 기초 체력을 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2012년 6월17일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직후 문재인은 선거 슬로건과 같은 제목의 책을 냈다. 이 책에서 문재인은 민주정부 10년의 성과가 순식간에 후퇴하는 모습을 보며 현실정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결심에 이르게 되었다고 밝혔다.

책은 정치의 미래, 경제의 미래, 사회의 미래로 나뉘어 있는데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한 건 경제 분야다. 당시 문재인은 시대적 과제로 정치적 민주화를 바탕으로 한 경제민주화를 꼽았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2012년 18대 대선의 핵심 키워드였다.

그는 책에서 ‘포용적 성장’을 내세웠다. 분배를 적대시하지 않으면서 성장동력을 찾는다는 의미다. 이런 고민은 19대 대선에서는 ‘국민성장론’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핵심 내용은 비슷하다. 수출 일변도 성장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소득을 끌어올려 내수 진작을 유도하고 이를 성장으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줄여야 가능한 일이다.

〈1219 끝이 시작이다〉 (2013년 12월)

 

 

‘민주 진영은 담론에서, 그동안 국가나 애국이라는 가치에 관심을 덜 가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국가공동체의 공동선을 위해 더 많은 헌신과 희생을 치러왔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나 애국이라는 가치를, 실상과 다르게 보수 세력의 전유물처럼 내줬습니다.’

문재인은 2012년 낙선 뒤 1년 만에 대선 패배의 원인을 분석한 책을 냈다. 그는 이 책에서 패배의 책임을 둘러싼 갈등과 공방을 넘어 대안을 제시하려고 했다. 특히 북한 이슈와 관련해 국가·애국·안보의 담론을 더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문재인은 책에서 밝혔다. 민주정부 10년간 영토와 영공·영해가 뚫린 적이 없고 국방예산 증가율도 더 높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평화가 경제이고 새로운 성장동력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는 이 책에서 남북관계가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 남한 경제에도 실익이 되는 문제와 직접 연결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기조는 19대 대통령 공약집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19대 대선 때 박근혜 정부가 폐쇄한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그는 “핵 폐기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들어와 대화 국면이 되면”이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개성공단을 3단계 2000만 평까지 확장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대한민국이 묻는다〉 (2017년 1월)

 

 

 

 

‘그전까지는 현실정치 속에서 뜻을 구현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타협적인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망쳐온 근본적인 원인을 확실히 청산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며 펴낸 책이다. 이 책에 ‘적폐 청산’이 담긴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책에서는 ‘대청소’로 표현된다. 문재인은 우리가 역사에서 두 번, 부패 청산의 기회를 놓쳤다고 책에서 진단했다. 해방 이후 친일 청산에 실패했고, 6월 항쟁 후 민주정부 수립에 실패했다. 그는 ‘부패 대청소를 하고 그다음 경제·시대 교체, 과거의 낡은 질서나 체제·세력에 대한 역사 교체를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과 정윤회 문건 사건, 세월호 참사 등 국정의 중요한 사건에 대해 미진한 부분이 있는지 점검하라고 조국 민정수석에게 지시했다. 또 문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터뷰이로 참여한 〈운명에서 희망으로〉(2017년 3월)는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다. 이나미 분석심리학자가 문재인을 만나 묻고 분석했다. 저자는 문재인을 ‘내향적 사고형’이라고 보았다. 저자가 밝힌 내향적 사고는 내성적 성격과는 다르다.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자기 내면의 원칙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문재인은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며 ‘늘 몰지각한 소수’라는 공격을 받아왔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런 공격이 면역력을 키웠다.  문재인은 ‘생각이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공격에 대해서는 정말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내향적 사고형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교과서 폐지’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곡 지정’ 지시 등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연일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