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MSNBC, 폭스뉴스 등 미국의 3대 케이블 텔레비전 채널 중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단연 돋보이는 방송은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행정부 이전부터 수위를 고수해왔다. 1996년 10월 출범한 폭스뉴스는 2015년 2월 기준 미국 케이블 가구의 81%에 해당하는 9470만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포맷과 시간대, 진행자가 바뀔 때마다 큰 폭의 시청률 편차를 보이는 케이블 뉴스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폭스뉴스가 다년간 시청률 1위를 지켜온 데는 빌 오라일리(67)의 공이 결정적이다.

그가 1996년부터 최근까지 20년간 진행해온 시사 프로그램 〈오라일리 팩터(O’Reilly Factor)〉는 벤츠 등 유수한 자동차 회사 등 30개 이상의 큰손 광고주들이 줄줄이 붙을 만큼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실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폭스뉴스가 〈오라일리 팩터〉를 통해 거두어들인 광고 수입은 4억4600만 달러에 이른다.

케이블 뉴스의 독보적 존재였던 그가 최근 성추문으로 전격 퇴진했다. 지난 15년 동안 그가 다섯 차례나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됐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합의금으로 지불된 돈이 1300만 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을 〈뉴욕타임스〉가 4월1일 폭로했다. 오라일리는 부인했지만, 보도 직후 대형 광고주들이 빠져나가자 폭스뉴스의 모기업인 ‘21세기 폭스’는 오라일리를 강제 퇴출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미 지난해 여름 로저 에일스 전 회장이 성추문에 휘말려 곤욕을 치른 바 있는 폭스는 오라일리까지 직장 내 성추문에 연루되면서 이미지 실추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라일리는 2500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퇴직금을 받고 폭스를 나온 뒤 개인 웹사이트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AP Photo한 여성이 빌 오라일리의 성희롱을 비난하는 내용의 스티커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실 경쟁사인 CNN, MSNBC에도 이름난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가 없는 건 아니다. 오라일리가 타사 진행자들에 비해 유독 큰 인기를 끈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초청 상대가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아니면 다른 명사이든 그는 자기 프로그램에 초대한 뒤 거친 입담을 보이며 논쟁을 벌이고, 성에 차지 않거나 이상한 답변이 나오면 호통을 치거나 마이크를 꺼버리는 등 파격적인 행동으로 시청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한껏 유발했다. 오라일리는 지난 대선 당시 저명한 토크쇼 진행자인 제랄도 리베라를 불러 ‘트럼프 캠프의 러시아 내통설’에 대해 언쟁하다가 1분 넘게 큰 소리를 치며 손가락질을 해대기도 했다. 지난 2월6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살인자’로 규정해 러시아 정부가 사과를 요구하자 “아마도 2023년쯤이나 (사과가) 가능할 것”이라고 빈정거렸다. 폭스뉴스에서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 지난 4월11일에는 북한에 대해 “만일 중국이 북한에 경제제재를 취한다면 북한은 식량을 얻지 못하고 아사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그러면 주민들이 등을 돌리고, 군부도 등을 돌릴 것이며 결국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도발적인 진행 덕에 〈오라일리 팩터〉는 매일 평균 300만명 이상의 시청자를 끌어들인 뒤 폭스뉴스에 채널을 고정시키는 견인 효과까지 내면서 저녁 황금시간대의 독보적 자리를 굳힌 것이다.

막말과 억지로 시청자 현혹하며 인기 유지

폭스 측은 공백이 된 〈오라일리 팩터〉를 CNN 출신으로, 폭스뉴스 심야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인 터커 칼슨으로 긴급히 교체하고 이름도 〈더 팩터〉로 바꿨다. 오라일리가 퇴출된 뒤 첫날(4월23일) 시청률을 보면 폭스가 큰 위기감을 느낄 정도는 아닌 듯하다. 당일 저녁 8시 〈더 팩터〉 진행자로 변신한 칼슨은 광고주들이 눈독 들이는 25~54세 연령층에서만 63만6000명의 시청자를 기록했다. 같은 시간대 CNN과 MSNBC 시청자 수를 다소 앞질렀다. 그럼에도 두 채널은 〈오라일리 팩터〉의 몰락을 계기로 폭스를 누르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는 중이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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