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타인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워낙 평범한 외모여서 그런 탓도 있지만 노동할 때면 특히 더 그렇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던 때도, 거리에서 대리운전을 하던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동하는 내 몸은 갈수록 투명해져 내게도 잘 보이지 않았다.

시간강사 시절, 결혼하고도 혼인신고를 한참 늦춘 것은 연구와 강의 노동만으로는 건강보험이 보장되지 않아서였다. 버티기 힘들어 은행 대출을 받으러 갔을 때 나의 노동을 증명할 수 없어서 절망했다. 교무처 교직원은 “시간강사에게는 재직증명서가 발급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나는 노동자가 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에서 대학원생 조교와 시간강사로 보낸 8년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하며 대학이라는 공간에 작별을 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콜을 기다리고, 손님과 연결되면 뛰고, 목적지까지 운전했다. 그러면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이들이 갑자기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대리기사들이 ‘요정’처럼, 내 눈앞에 나타났다. 여기저기에 휴대전화를 붙잡고 콜을 기다리는 나와 닮은 노동자들이 있었다. 웹툰을 본다거나, 페이스북 페이지를 관리한다고, 아니면 카카오톡을 보내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휴대전화를 바라보는 각도와 무엇보다도 간절한 눈길을 통해 그들이 대리기사임을 알았다.
 

ⓒ시사IN 신선영새벽 길거리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요정’들이 나타난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서울 서초동 교보타워 사거리 인근의 대리운전 기사 쉼터.

새벽 1시가 넘어가면, 거리에는 또 다른 요정들이 나타났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는 이들이, 도로 공사를 하는 이들이, 막차가 지나간 지하철역의 셔터를 내리는 이들이 저마다 “나도 여기에서 노동하고 있다”라고 외쳤다. 삶의 무게에 떠밀려 거리로 나오고서야 비로소 투명해진 그들의 몸이 보였다. 그러고 보면 대학에도 청소·경비·관리 등을 맡은 여러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었다. 그들의 몸은 강의동과 연구동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어떤 거대한 악이 아니라 나를 비롯한 평범한 우리들이다. 타인을 지워나가는 동안 우리의 몸 역시 투명해지는 것을 이전에는 잘 알지 못했다.

투표는 나와 내 주변의 투명해진 신체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행위다. 과거와 현재를 한 인간으로, 노동자로 감각할 수 없었던 나는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투표한다. 특히 어느 후보가 조금은 더 우리 사회의 유령이나 요정을 바라보는 눈을 가졌는가 고민하고 그에게 표를 준다. 그 한 표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투표소까지 걸어간 나의 발걸음이, 기표소를 앞에 둔 나의 심호흡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빨간 도장 자국이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 “나는 한 인간으로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라고 증명해줄 것을 믿는다.
 

기자명 김민섭 (〈대리사회〉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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