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의 풍찬노숙을 보상받기 위해
  • 손병휘 (가수)
  • 호수 503
  • 승인 2017.05.0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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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을 위해 연인원 10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지난해 10월 말부터 토요일마다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몰려들었다. 각계각층의 시국선언 또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난해 11월8일 오전 11시 광화문광장에서 음악인 집단 시국선언을 했다. 이명박 정권의 대운하 사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모은 이후 두 번째로 하는 시국선언이었다. 대중가수는 물론이고 클래식, 전통음악가, 기획자, 매니저까지 2000명이 넘는 인원이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는 서명을 했다. 대단한 호응이었다.

윤민석씨가 작곡한 ‘헌법 제1조’를 발라드, 블루스, 레게, 로큰롤 등 다양한 리듬으로 변주했다. “예술은 이다지도 다양하다. 블랙리스트로 가두지 말라”는 메시지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음악인들의 발언 중간중간은 정민아, 야마가타 트윅스터 등의 공연으로 채워졌다. 사회자인 내가 제안해 참가자들 모두 ‘아침이슬’을 부르며 마무리했다. 음악으로 시작해서 음악으로 끝낸 시국선언이었다.

나는 11월4일부터 시작한 광화문광장 캠핑촌에 입소했다. 캠핑촌은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는 문화예술인과 노동자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한 끝에 얻어낸 ‘무허가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잔 뒤 ‘입촌’을 후회했다. 추위와 소음, 진동과 매캐한 공기에 시달렸다. 그래도 캠핑촌의 유일한 촌민음악가로 그럭저럭 버텼다. 캠핑촌도 어느새 광화문광장의 명물이 되었다. 미술가 최병수씨의 다양한 철제 조형물, 파견 미술가들이 만든 대형 촛불과 박근혜·이재용·정몽구·조윤선·김기춘 흉상, 연극인들이 세운 블랙텐트 극장, 미술가들이 만든 ‘궁핍현대 미술광장’(갤러리)은 정치 구호로 가득한 광화문광장에 문화의 향기를 더해주었다.

ⓒ시사IN 신선영지난 3월23일 블랙리스트 항의 캠핑촌을 정리하며 예술가들은 주변을 청소하는 퍼포먼스를 함께 벌였다.
촌민들은 평일은 말할 것도 없고 토요일 대규모 촛불집회 전후 다양한 문화행사로 촛불의 불씨를 꺼지지 않게 했다. 살풀이와 넋전춤, 액운을 물리치는 붉은 의상과 풍물, 서예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유성기업, 쌍용자동차, 기륭전자 등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과 대기업의 횡포에 항의하는 이들까지 어우러져 매일 저녁 음악이 있는 문화제를 이어갔다. 탄핵이 인용된 뒤 3월25일, 뒤풀이를 끝으로 캠핑촌은 광장에서 철수했다. 이제 촌민들은 각자의 예술 현장으로 사업체로, 아니면 또 다른 농성장으로 흩어졌다. 개중에는 선거운동에 뛰어든 사람도 있다.

나는 예술은 창조적인 파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상상력이 없다면 예술가가 될 수 없다. 블랙리스트로 예술가와 예술을 가두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적어도 그런 세상을 벗어나려고 우리들은 촛불을 들고 텐트를 쳤다. 선거가 코앞이다. 적어도 캠핑촌 촌민들은 각자가 바라는 세상을 위해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한 표를 행사하리라고 확신한다. 그때 캠핑촌 텐트를 열고 들어갈 때마다 ‘광화문광장 캠핑촌은 어쩌면 다시 못 올 아름다운, 아니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투표 날, 기표소에 들어가기 위해 가림막을 걷으며 나는 캠핑촌에서 텐트를 열고 들어갔던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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