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과정을 지켜보면서 1987년 민주화 투쟁이 비로소 그 결실을 맺었다는 생각을 했다. 시민의 직접행동, 언론의 권력 비판, 국회의 탄핵안 결의,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은 1987년의 성과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러므로 이번 대선 일정은 시민의 힘으로 결정된 것이다. 나는 세상을 바꾸는 힘은 권력자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실천에 잠재한다고 믿어왔다. 이 믿음은 아직도 굳건하다. 하지만 지난 정권들을 거치면서 나는 국가를 운영하는 자들의 말과 행동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폭력적 영향력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어떤 정권에서 사람들은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린다. 어떤 정권에서 사람들은 우울에 시달린다. 심지어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사라지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개인의 능력과 운과 기질의 문제를 시스템의 책임으로 전가한다고? 그렇지 않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시민들의 삶 내부에서 증폭된 불신과 무력감이 그 방증이다.

탄핵 인용문의 보충의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대통령의 불성실 때문에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상실되고 안전이 위협받아 이 나라의 앞날과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세월호 참사 당일만 문제가 아니다. 진상 규명과 세월호 인양을 요구하는 희생자 가족을 대하는 권력자들의 태도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저럴 수 있는가?

권력자들의 몰염치와 독선은 희생자 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그들의 태도는 “이제 그만합시다” “돈 바라고 저러는 거 아냐?” “빨갱이 아냐?” 그 외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혐오의 말들이 시민사회 내부에 확산되는 것을 부추기고 묵인했다. 그런 말들을 들으며 나는 또 생각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저럴 수 있는가?

 

ⓒ연합뉴스세월호 참사 3주기 날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의 모습.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인간성에 대한 깊은 회의’에 시달렸다. 무슨 철학적 수준의 고뇌가 아니었다. 명치끝이 무지근했고 잠을 못 이루었고 내가 천직으로 삼은 글쓰기를 포기할 뻔했다. 일상과 일터 모두 잿빛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이게 나라냐?”였다. 그 질문 뒤에 숨은 더 본질적인 질문이 있었으니 그것은 “이게 사는 거냐?”였다. 나는 인간다운 삶을 되찾으려는 소망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요구와 촛불집회와 탄핵을 견인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새 이번 대선도 케케묵은 쟁점과 네거티브 공방으로 물들고 있다. 그 빤한 행태를 보아하니 후보들은 이번 대선이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가능했는지 벌써 잊은 것 같다. 우리는 투표를 통해 그들이 잊고 있는 어젠다를 다시금 환기하고, 책임을 물으며,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5월9일은 여느 대선일과 다르다. 5월9일은 4·19, 5·18, 6·10, 시민의 손으로 직접 달력에 기입한 역사의 날들을 계승하는 날이다. 그러니 다시금 우리의 손을 분주히 움직일 때이다. 투표하는 손은 어떤 손인가? 펜을 잡는 손, 망치를 잡는 손, 깃발을 잡는 손, 아이의 손을 잡는 손, 부모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는 손과 다르지 않은 손이다. 그 손들은 모두 떨리며 동시에 단호하다.

우리는 그 손들을 움직여 새 삶과 새 시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우리는 그 손들의 주인이니까. 우리는 민주주의의 장인이니까.

기자명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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