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 20권을 추가로 단독 입수했다. 앞서 〈시사IN〉은 12권 분량의 안종범 업무수첩을 단독 입수해 보도한 바 있다(〈시사IN〉 제487호 커버스토리 ‘단독 입수 안종범 업무수첩, 검은 거래’ 참조). 〈시사IN〉이 앞서 확보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 12권(2015년 7월~2016년 10월)과 이번에 입수한 20권(2014년 6월~2015년 4월), 그리고 김영한 전 수석의 업무일지(2014년 6월~2015년 1월)를 함께 살펴보면 박근혜 정부의 적폐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사IN 신선영〈시사IN〉은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 20권을 추가로 입수했다. 왼쪽 사진은 업무수첩 사본을 실제 수첩에 붙여 찍은 것이다.


“승객 탈출 기피.” 〈시사IN〉이 추가로 입수한 안종범 업무수첩에 기록된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 원인 가운데 하나다. 안종범 업무수첩에 기록된 2014년 7월8일 청와대 티타임 회의 내용을 보자. 수첩에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발언이라며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이 회의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 원인. 1. 최후 탈출 선장이 먼저 탈출, 승객 탈출 기피, 2. 해경 전문성 없는 초동작전 실패, 3. 유병언 일당 개조(불법)평형수 유지, 과적(그림 1).’

김영한 당시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2014년 7월8일 김영한 업무일지에는 위 내용 뒤에 ‘청와대 보고, 그 과정의 혼선 X. 정부가 變名(변명) X, 실태는 똑바로 파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2014년 7월8일은 감사원이 ‘세월호 침몰사고 대응 실태’를 발표한 날이다. 감사원은 해양수산부·해양경찰청 등 세월호 관련자 40명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물론 청와대 대응 시스템에 대한 감사는 없었다.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 과정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나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관저와 집무실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라고 말했다.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 보고를 관저와 집무실 두 곳으로 보냈다”라고 청문회에서 증언했다.

 

 

 

 


〈시사IN〉이 추가로 입수한 안종범 업무수첩을 보면,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세월호와 관련한 회의 내용이 빈번하게 기록되어 있다. 안종범 업무수첩과 김영한 업무일지를 비교 분석해보면, 박근혜 정부는 일관되게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회피했다. 진상 규명 의지도 없었다. 정권의 정치적 유불리만 따졌다. 이를 위해 청와대는 세월호 수사·감사를 지휘·감독하고, 경제 논리(돈 문제)를 부각했다. 여기에는 언론과 이익단체를 이용한 흔적이 나온다.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시선도 싸늘했다.

2014년 7월20일 티타임 회의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를 안종범 전 수석은 업무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검찰 세월호 사건. 100여 명 구속 수사 중. 100여 명 입건. 수사권, 기소권. 수사 의의 방향 알려야.’ 이날 김영한 전 민정수석도 업무일지에 ‘검찰 세월호 사건 관계자 구속. 立件(입건). 철저 수사 중인데도 유족은 수사권 부여 주장-결과. XX(판독 불가) 의지 등을 소상히 알려서 국민 납득 요망. 유병언 재청구 앞서서 중간 발표(대검찰청) 促求(촉구)-의지도 表明(표명)’이라고 적었다.

안종범 전 수석은 2014년 7월25일 실수비(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내용을 ‘〈실장님〉 세월호 특별법, 야당 추천 특검보 요구→대통령 인사권 제한. 수사권보다 더 부당’이라고 기록했다. 그해 7월27일 티타임 내용을 담은 업무수첩에는 ‘〈정무수석〉 세월호 예산 6200억원’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 정무수석은 조윤선 전 장관이었다. 안종범 전 수석은 회의 때 발언자를 ‘〈 〉’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조윤선 정무수석의 발언인 듯하다. 또 2014년 8월13일 실수비 회의 때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발언한 내용이라며 ‘교황 방한-정치적 악용. 평화와 화해 계기→갈등 유발 계기 경계’라고 적었다.

 

 

 

 

 


2014년 9월17일 세월호 유가족과 대리기사의 폭행 사건이 불거졌을 때, 김영한 업무일지에 적힌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 사항이다. ‘세월호 유가족 폭행-월요일 지휘-기민하게 일하도록→지휘권 확립토록.’ 그해 10월11일자 티타임 내용을 담은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세월호 특별법-이례적 입법’이라고 언급했다고 기록했다. 같은 날 김영한 업무일지에도 ‘세월호 특별법 예외적인 法(법), 보상 형평성. 과거-미래 先例(선례)-치밀한 검토’라고 쓰여 있다.

2014년 10월27일 티타임 때도 세월호는 언급된다. 그날 안종범 업무수첩을 보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세월호 인양-정부 책임 부담으로 오지 않도록. 사회적 분위기 만들기’라고 발언했다( [단독] 김기춘의 거짓말 수첩이 밝혀냈다 기사 참조). 같은 날 김영한 업무일지에도 ‘세월호 인양-시신 인양 X, 정부 책임, 부담. 국고 재정지원-누수, 낭비 防止(방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회적 분위기 만들기’라는 지시는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2014년 10월28일자 김영한 업무수첩을 보면 “長(비서실장)·7시간 전면 복원-政務(정무)→김재원 議員(의원): 報道(보도)자료 배포 major(메이저) 언론 상대 說得(설득)·弘報(홍보)”로 적혀 있다. 이런 지시가 있고 사흘 뒤인 10월31일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현 자유한국당)은 대정부 질문에서 세월호 실종자 수색을 중지하라고 주장했다. 논리는 돈이었다. “세월호 실종자 수색에 투입된 정부 예산이 9월 말 기준으로 1583억, 하루 평균 8억원이다. 해양경찰청은 함조 건조비 72억원, 함정 유류비 275억원 등 484억원이 세월호 수색비로 이용됐다(김진태 의원).” 2015년 4월 김진태 의원은 세월호 인양을 반대하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리기도 했다. “최소 1000억원 이상 소요될 것이다. 국민 혈세로 천문학적 인양 비용을 부담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며 전 세계적으로도 국가가 비용을 부담하여 민간 선박을 인양한 사례는 없다고 한다. 세월호 선체는 인양하지 말자. 사고해역을 추념공원으로 만들고 아이들은 가슴에 묻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서 ‘세월호’는 ‘차은택’보다 언급 횟수가 적었다.

 


2014년 11월1일자 ‘세월호 특별법 합의, 이젠 정상으로 되돌아가자’는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침몰 세월호를 인양하는 문제도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최대한 수색을 해본 뒤에 배를 인양해야 할 것인지 여부는 유가족들 의사만 물을 게 아니라 많은 국민의 의견까지 수렴해 결정해야 한다”라고 썼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세금도둑’이라고 비난했다.

수첩에 세월호 진상 규명 활동 방해 정황도

안종범 업무수첩을 보면, 박근혜 청와대가 세월호 진상 규명 활동을 방해하려 한 내용도 나온다. 2016년 2월26일자 안종범 업무수첩에서는 “8. 세월호 BH 자료 요구→자료 제출 불가”라고 적혀 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요청한 자료 제출을 거부하라는 지시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청와대는 일체의 기록을 제출하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업무수첩 20권(2014년 6월~2015년 4월)에 VIP(대통령) 지시로 기록된 세월호의 언급 빈도는 차은택 감독과 관련한 지시 횟수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었다. 내용도 간단했다. 2014년 8월17일자 VIP 지시 내용에 ‘세월호 자금난 겪는 어민, 1억 대출, 이율 3.6, 특별영어자금’이라 적혀 있다(그림 4). 또 2014년 8월11일자 VIP 지시라며 ‘세월호 특별법, 유병언법→제3자 명의 은닉 재산’이라고 쓰여 있다(그림 3). 2014년 8월1일 VIP가 지시 사항을 내린다. 안종범 전 수석은 ‘지시한 것 list’라며 ‘선제적으로 대처 필요-공격받을 예상 미리 고려”라고 적었다(그림 2). 의미심장한 부분은 마지막에 나온다. ‘이익단체 활용→야당 설득. 1)선제적 2)바로잡기 즉각 대응, 단단하게 3)이익단체 활용.’ 같은 날 김영한 전 수석도 업무일지에 ‘세월호에서 벗어나 原則(원칙)대로. 경제 살리기 기대감→報道(보도)·박범계-告發(고발)/ 허위·명예훼손 전담반’이라고 적었다.

 

 

 

 

ⓒ시사IN 이명익2014년 10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열린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치고 국회의사당 밖으로 나오자 대기 중이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4년 8월1일 〈조선일보〉는 ‘세월호 딛고 부강한 나라 만들라는 국민의 뜻’이라는 기사를 1면에 올렸다. 〈조선일보〉는 야당이 세월호 심판론에 올인하면서 민생과 경기회복 등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같은 해 8월9일자 〈조선일보〉 사설에서는 “세월호 충격으로 인한 일시적인 소비 위축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위축된 현상이 지나치게 장기화되면 뜻하지 않은 피해가 경제 전반에 미칠 수 있다”라고 적었다. 전형적인 경제 살리기 프레임이었다.

2014년 8월은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을 벌이고 있었다. 김영오씨의 단식을 중단시키기 위해 문재인 의원과 시민들이 동조 단식에 나서기도 했다. 2014년 8월23일 김영한 업무일지에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 사항이 나온다. ‘자살방조죄. 단식 생명 위해행위. 단식은 만류해야지 부추길 일 X. 국민적 비난이 가해지도록 언론 지도.’

2014년 8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어버이연합·엄마부대 등 보수 단체들이 “죽은 아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라며 연일 시위를 열었다. 자유대학생연합은 아이를 잃고 곡기를 끊은 유가족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2014년 9월 어버이연합은 폭식 투쟁을 비판한 내용을 담은 영화 칼럼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보수 단체 집회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과 특검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와 국정원이 전경련을 통해 보수 단체에 자금을 지원한 사실도 밝혀졌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의지가 없어 보인다.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다 지난 4월6일이 되어서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심우정)는 허현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실 행정관을 세월호 유가족 단식농성 규탄 집회에 보수 단체를 동원한 혐의 등으로 소환 조사했다. 하지만 지금도 검찰 수사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기자명 특별취재팀(주진우·차형석·김은지·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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