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의 〈도올의 로마서 강해〉(통나무, 2016)는 지은이가 2007년부터 꾸준히 출간해온 성서 강해 작업의 일환이다. 바울의 〈로마서〉를 강해한 이번 책은 특히 눈길을 끈다. 어느 전기 작가가 말한 것처럼 사도 바울은 역사상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인물 중 하나이며, 그의 이름은 기독교인은 물론이고 유대인과 무슬림에게까지 친숙하다. 바울은 신약성서 27권 가운데 절반 가까운 13권을 혼자 쓴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저명한 신학자 E. P. 샌더스는 바울의 〈로마서〉를 “서양사에서 가장 중요한 서신”으로 꼽는다.

그리스·로마 시대 이후 이스라엘과 유대는 동의어로 혼용되고 있지만, 본시 유대는 열두 개 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유다의 후손을 가리킨다. 미미한 변방의 족속이던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전체를 지칭하게 된 연유를 알기 위해서는 솔로몬 치세 이후(B.C. 930년께), 북조와 남조로 분열된 이스라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솔로몬이 르호보암이라는 못난 자식을 후계자로 삼자 10개 지파가 단합해 북방에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고, 유다·시므온 두 지파(+남·북조 모두에 속했던 베냐민 지파)가 예루살렘 주변에 유다 왕국을 세웠다. 이후 이스라엘 왕국은 앗시리아 제국에 멸망하면서 10개 지파가 완전히 멸족해버렸고, 150여 년을 더 지속했던 유다 왕국은 바빌로니아 제국에 정복되어 겨우 씨족을 보존한다.

ⓒ이지영 그림
흔히 이스라엘 민족은 대대로 야훼라는 단일신을 믿었다고 전해지지만, 구약성서는 그들이 꽤 다양한 팔레스타인 토착신을 숭배했다고 가르쳐준다. 구약성서에는 성서 편찬자들이 미처 지우지 못한 야훼의 부인, 곧 이스라엘 민족의 여성신이 나와 있으며(〈예레미야〉 7장18절), 구약 시대를 캐는 고고학자들 역시 이스라엘 민족의 민중 종교는 다신론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확인해준다. 이스라엘 민족은 팔레스타인의 잡다한 신 가운데 더 강력한 신을 찾아 주신(主神)을 교체해왔으며, 유다 왕국이 바빌로니아 제국에 정복되어 노예로 끌려가기 전까지 유일신론은 대중적이지 않았다.

유일신관이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이 되기 시작한 유래는 두 차례의 디아스포라(Diaspora:민족 단위의 유배) 체험을 빼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이스라엘 민족 최초의 디아스포라는 이스라엘 민족의 일족이 애굽(이집트)에 끌려가 노예가 된 사건으로(B.C. 1730~B.C. 1570), 이들이 애굽을 탈출해 가나안으로 터전을 옮기면서 최초로 야훼와의 계약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모세가 시내산으로 십계명을 받으러 간 사이 광야에 남은 동족들이 다른 신에게 한눈을 팔았던 것에서 보듯이, 고대 사회에서는 다신 숭배가 자연스러웠다. 도올 왈, “인간세에 유일신론은 존재론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도올의 로마서 강해〉
김용옥 지음
통나무 펴냄
두 번째 디아스포라는 유다 왕국이 바빌로니아 제국에 정복되어 많은 포로들이 바빌론까지 끌려간 것이다(B.C. 587). 바빌론 유수(幽囚)는 마지막 남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절박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면서 강한 민족자존과 회생의 비전을 필요로 했다. 구약성서의 핵심이라는 모세 5경(창세기·출애굽기· 레위기·민수기·신명기)이 이때 처음 경전화되었으니, 성서의 기원은 이스라엘 민족의 생존 방책이다. 구약성서의 야훼가 전쟁신의 면모를 지니게 된 것은 다신 시대와 이스라엘 민족의 수난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향 예루살렘에 대한 향수가 야훼에 대한 집착으로 표현된 것이 일신론이며, 민족 구원의 열망이 메시아 개념으로 응축되었다.

예수와 거의 동갑내기로 태어난 바울은 고향마저 예수가 태어난 나사렛과 가까운 기샬라다. 바울이 갓난아기일 때 부모가 현재 터키에 속해 있는 다소로 이사하지 않았다면, 바울은 청년 시절에 예수를 만났을 가능성이 높다. 정통 바리새 집안에서 태어나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그가 일찍이 예수를 만났다면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존 폴록의 표현에 따르면 바울은 예수 사후, 유대 최고 법정에 의해 예수의 추종자들을 색출하여 처벌하는 ‘행동대장’에 임명되었다.

바울은 다마스쿠스에서 예수의 추종자들이 교세를 늘려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향하던 도중, 눈앞에 나타난 예수를 보고 회심을 한다. 부활한 예수를 목격한 이 체험은 예수운동가들 사이에 아무런 지분이 없었던 초창기 바울에게 열두 사도와 똑같은 권위를 부여해주기도 했으나, 향후 바울이 기독교에서 차지하게 된 위상에 비추어보자면 하잘것없는 기적이라고 해도 괜찮다.

동성애 비난한 바울 편든 김용옥

스승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배웠던 예수의 육성 제자들은 예수 복음(천국의 언약)을 유대인에게 한정하면서, 그것을 수용한 이방인을 유대인화하려 했다. 예수를 따르겠다는 이방인에게 유대인의 풍습인 할례 받기를 강요한 것이 단적인 예다. 다시 말해 예수의 육성 제자들은 자기 민족의 선민의식을 내려놓지 않았다. 반면 가장 늦게 예수운동에 뛰어든 바울은 ‘이방인 먼저, 다음 유대인’이라는 역발상을 통해 육성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 교회에 대적하면서, 예수 복음을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것”으로 확장시켰다. “나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울은 동년배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든 위대한 사상가라고 동시에 생각한다. 바울 없이는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은이는 “나는 이 땅의 종교혁명을 위하여 이 책을 쓴다”라고 했지만, 솔직히 이 책에는 그런 충격에 값하는 그 어떤 혁신적인 바울 해석도 나오지 않는다. 김용옥은 동성애를 비난했던 바울을 고스란히 편들면서 국가나 사회는 “커밍아웃이나 퇴폐적 자기최면”을 관용하거나 조장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은 제19대 대선 후보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논리와 연결되어 있는데, 차별금지법은 동성애 문화를 조장하는 것이 될 수 없을뿐더러, 동성애자에게 관용을 베푼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서도 안 된다. 동성애자에게 이성애자가 누리는 시민적 권리를 찾아주는 것은 국가의 임무다. 동성애자들은 지은이로부터 인간성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거나 무지의 나락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문동환의 〈예수냐 바울이냐〉(삼인, 2015)는 예수의 가르침이 바울에 의해 어떻게 변질되어갔는지 추적하면서, 〈고린도전서〉 13장13절로 잘 알려진 바울의 사랑이 예수의 사랑과 얼마나 차원이 다른지를 말한다. 즉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사랑이 으뜸’이라는 바울의 사랑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사랑과 달리 오로지 ‘신자들끼리의 사랑’을 뜻한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