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이라 떡국을 먹이고 싶었다. 전날 집으로 찾아온 동기와 후배들과 아침 일찍 식당으로 향했다. 낯선 여성이 다가와 길을 물었다. “저~”라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얼굴이 아스팔트 바닥에 꽂혔다. 팔은 꺾였다. “잡아!” 하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차에 태워졌고 “안경 벗겨” “고개 처박아”라는 소리에 기가 팍 죽었다. 그 뒤에야 미란다 원칙을 들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눈이 가려졌다. 눈을 뜨자 책상·의자·욕조가 보였다. 창문도 없었다. A4 종이와 볼펜이 내 앞에 놓였다. 그곳이 대공분실이라는 것을 나오고 나서야 알았다. 학생운동을 하던 동기와 후배가 수배 중이었고, 그들을 집에 재워준 게 화근이었다. 수사관들은 “태어나서 여기까지 온 과정을 쓰라”고 했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자서전’을 세 번이나 썼다. 그사이 집은 압수수색을 당했다. 수사관들은 집에서 ‘비판’이니, ‘마르크스’니, ‘진보’니 따위 제목이 들어간 책 30여 권을 모조리 가져왔다. 수사관들은 책에서 밑줄 그은 부분을 물었다. 그렇게 나도, 대학원 공부를 하며 보던 책도 ‘사상검증’을 당했다. 물론 대형 서점에서 모두 팔던 책들이었다. 48시간 뒤 풀려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사관들은 나를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죄(제7조 5항)로 엮으려 했다. 한 명이라도 더 잡아넣어야 ‘실적’이 오르니까.


느닷없이 20년 전 기억이 떠오른 건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을 보고 나서다. ‘주적’과 국가보안법 폐지 찬반 논쟁이 오갔다. 13년 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꽂아 박물관에 보내자”고 했다. 지금은 감옥에 있는, 그땐 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반대로 국가보안법을 한 글자도 고치지 못했다. 기자가 되고 검찰을 출입하며 ‘공안통(공안검사)’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뼛속까지 공안통들도 많았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는 않더라도 시대에 맞게 개정하는 데 동의하는 공안통도 적지 않았다. 세상이 조금씩 전진한 줄 알았는데 2017년 텔레비전 토론회에 비친 한국은 20년 전 새해 첫날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토론을 본 직후 어느 후보에게 투표할지 마음을 정했다.

선거 한 번으로 세상이 확 바뀌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선거는 주권자인 시민들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때다. 통권호에 가깝게 지면을 꾸렸다. 주권자들의 손가락 힘을 키워줄 ‘영양 밥상’을 차렸다. 먼저 1, 2위 후보 캠프를 이끌고 있는 이해찬·박지원 선거대책위원장을 만났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은 ‘정치 9단’ 두 사람에게 이숙이 선임기자가 송곳 질문을 던졌다. 〈시사IN〉은 지난해 가을부터 기본소득(복지), 노동(일자리), 국가 재정정책 등 대선 어젠다 점검 시리즈를 내보냈다. 이번 호에는 교육, 보육, 주거, 한반도 어젠다를 한꺼번에 점검했다. 꼼꼼히 살펴보고 따져보면 주권자로서 한 표를 행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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