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국가주석은 이미 두 부문에서 큰 ‘양보안’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 중국 금융시장의 추가 개방이다. 중국 금융시장은 외국인의 접근을 크게 제한하고 있다. 외국인은 위안화뿐 아니라 중국 대기업 주식도 마음대로 사들일 수 없다. 중국 내 금융기업의 경우, 외국인의 소유 지분이 50%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소유 지분 한도). 금융기관의 경영권을 외국인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의미다. 외국인이 중국에서 금융기업을 운영하려면 반드시 중국 측과 합작으로 설립해야 한다. 이번 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약속한 것은 ‘금융기관의 외국인 지분 한도 완화’다. 외국인들이 중국에 자신이 경영권을 가진 증권사와 보험사를 설립·운영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두 번째는, 중국이 미국산 농축산물에 대해 수입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2003년 광우병 파동 이후 금지했던 미국산 쇠고기를 다시 수입할 방침이다.
트럼프는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거듭해서 중국 제품에 관세 45%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제재하겠다는 소리도 집요하게 늘어놓았다. 무역 부문에서 세계대전을 일으키겠다는 선전포고와 마찬가지였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의 통 큰 양보는 무역전쟁을 막기 위한 조치로 간주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의 대미 수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중 수출을 늘리는 방식이다. 자유무역의 ‘대의’에도 어긋나지 않고, 세계경제에 부정적 충격을 줄 일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 진행될 100일간의 협상에서 가장 뜨겁게 돌출될 의제는 미국산 자동차, 철강 등에 대한 중국의 수입 규제 완화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산 자동차에 관세 25%를 부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4월10일)에 따르면, 중국 측은 자동차 관세에 대해서도 미국 측에 우호적인 태도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후인 4월8일 아침 자신의 트위터에 대단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굉장했다(tremendous). (양국 간에) 우호와 친선이 형성되었다.” 물론 “무역 문제가 잘 해결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안다”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다.
무역 세계대전을 선포한 트럼프의 벼랑 끝 전술에 중국이 굴복한 것일까? 해석이 분분하다. 중국이 협상에 앞서 금융 및 농축산물 수입 추가 개방을 약속한 이유는, 개방해도 자국 산업의 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미국의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먼저 ‘중국 금융기관의 외국인 지분 한도 완화’는,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미국·중국 양자 간 투자협정(BIT)’을 둘러싼 협상에서 이미 논의되어온 문제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익명의 중국 관료를 인용해 “중국은 (오바마 행정부와의) BIT 협상을 통해 금융기관의 지분 한도를 높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바마의 임기가 6개월만 길었어도 BIT 체결로 해결되어 있을 문제다”라고 보도했다. 중국 최대의 금융기관이며 사실상 국유기업인 중신증권(Citic Securities)과 중국생명보험(China Life Insurance)은 증권과 보험 양 부문에서 새로운 경쟁자를 용납하지 않을 정도의 지배력으로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의 금융 거품이 부풀어 오를 대로 올라 투자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금융기관들이 굳이 중국에 들어가 사실상의 국유 금융기관과 경쟁하려 들까?
앞으로 100일간의 협상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주력할 분야 중의 하나는 철강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철강 과다 생산국이다. 미국을 포함한 다른 모든 나라의 철강 생산량을 합쳐도 중국의 그것을 따라잡지 못한다. 중국의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내수가 위축되면서 최근에는 해외 수출을 크게 늘리고 있다. 중국이 아무리 수입 규제를 완화해도 비싼 미국 철강을 중국에 대량 판매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측되는 이유다.
결국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미국의 실익보다 트럼프의 정치적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국제 행사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부문 협상력에 극히 회의적이다. 지금까지 뚜렷한 대중국 전략을 내놓은 바도 없고 그럴듯한 중국·아시아 전략팀도 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행정부가 노련한 중국 무역협상팀을 100일 안에 굴복시키고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확장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번 정상회담의 진정한 성과는, 트럼프가 종전의 호전적 국수주의 성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신호를 세계에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 트럼프의 노선이 실용주의로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다.
트럼프의 외교 노선 실용주의로 선회?
미국의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Axios) 4월9일자에 따르면,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전쟁을 준비해왔다. 수입 상품들에 대해 ‘덤핑’ ‘수출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등 불공정 행위를 조사해서 징벌 성격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행정명령(executive order: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 기관들에게 내리는 공식 명령. 각 부처는 이 명령을 근거로 법규와 규칙을 제정)’을 야심차게 준비해왔다는 것이다. 대상 수입품의 범위는 철강과 알루미늄에서 가전제품 등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행정명령이 실제로 발동된다면, 세계시장은 ‘미국이 결국 세계 무역전쟁의 첫 포문을 열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악시오스는 트럼프 행정부 내 익명의 소식통을 빌려 이렇게 보도했다. “(소식통은) 행정명령이 빠르면 4월 말에 발동(arrive)될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시간표에 지나치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행정명령의 속도를 늦췄기 때문이다.” 트럼프 자신이 후보 시절 당시 내세웠던 국수주의적 무역 노선에서 실용주의로 돌아서고 있다는 관측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멘토’로 극우 성향의 국수주의자인 스티브 배넌 백악관 고문이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최근 배제된 것도 중요한 조짐이다. 어쩌면 트럼프에게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본인도 두려웠을 세계 무역전쟁에서 몸을 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시진핑이라는 ‘세계적 배우’가 조연으로 나서 트럼프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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