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전인 1988년 〈한겨레〉에 인터뷰 기사 하나가 실렸다. 제목은 ‘중국 공업화 영향, 환경 측면에서 주목해야’였다. 당시 마흔 살이던 최열 공해추방운동연합 공동의장이 서독 녹색당의 초청으로 통일 전 독일에 다녀온 뒤 소회를 전했다. 그는 작은 나라가 밀집한 유럽에서 공해의 공동화 현상을 목격했다.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권의 대기오염이 유럽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성장 제일주의를 억제할 만한 시민운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환경에는 국경이 없었다. 중국을 떠올린 건 그때였다. 한국 역시 자유롭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올해 3월, 서울의 공기 질 ‘나쁨’은 세계 2위를 기록했다(공기 질 모니터링 사이트 에어비주얼(Air visual) 기준). 일흔을 앞둔 지금, 그의 예측은 현실이 되었다. 환경부는 올해 1~3월 국내 미세먼지 발생 원인의 76.3%를 국외 영향으로 파악했다. 미세먼지 농도에 영향을 미치는 기상 요인으로는 서풍 계열의 바람이 크다는 분석이다. 지난 1~3월 서풍이 분 날은 75일로, 작년에 비해 56일 증가했다. 중국에서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한 뒤 강한 서풍이나 북풍이 일면 먼지가 서해나 한반도를 통과하며 영향을 준다. 한국과 중국은 대기환경 양해각서 등을 통해 공동연구나 자료 공유에 합의했지만 그야말로 협력 수준이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지난 4월5일 식목일, 춘천에서 활동하는 안경재 변호사와 김성훈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주부 등 6명과 함께 법원에 소장을 냈다.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를 배상하라는 내용이었다. 피고는 중국과 한국 정부다. 4월10일 서울 서소문 환경재단 사무실에서 최 대표를 만났다.

ⓒ시사IN 신선영최열 환경재단 대표(위)는 4월5일 한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를 배상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어떻게 소송을 기획하게 됐나?

서강대에서 강연하는데 학생 270여 명이 기침을 너무 많이 해 진행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마스크를 쓴 이도 많았다. 20대 초반은 가장 건강할 나이 아닌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안경재 변호사 역시 춘천 시내 300여m 높이 봉의산에 올랐는데 목이 아프고 기침이 많이 났다고 한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이었는데 원인 불명의 천식으로 판명되었다. 소송을 벌이자고 의견이 모아져 빠르게 진행되었다.

중국뿐 아니라 한국 정부까지 피고로 삼은 이유는?

한국 정부는 국내 미세먼지 발생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보다 중국에 떠넘기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중국은 수인한도(타인에게 생활의 방해와 해를 끼칠 때 피해의 정도에서 서로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길 정도로 오염원을 관리하지 못했다. 중국 사람들 역시 피해자다. 저렴한 인건비와 느슨한 규제 때문에 외국 기업이 많이 들어와 중국이 ‘세계의 굴뚝’이 된 것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중국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NGO 활동도 왕성해져야 한다. 중국이 통제 사회라 쉽지 않지만 변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아무 책임이 없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우리도 노력하면서 문제를 제기해야지 모두 전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미세먼지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 시스템이 낳은 하나의 현상이다. 두 나라 모두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다. 한국과 중국이 미세먼지 벨트가 된 데 대한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

소송 소식을 접한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두 가지다. 참여하고 싶다는 쪽과 기부금을 내고 싶다는 쪽이다. 손해 배상금액이 300만원씩 7명이라 2100만원인데 소송을 벌이려면 액수가 좀 더 커야 해서 원고인단을 100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알려진 인사 20~30명, 나머지는 일반 시민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국제법상 승소 가능성이 낮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법이 없다고 하는데 먼저 뭔가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야 관련법이 생기는 것이다. 1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런던 스모그 사건 당시에도 대기 관련법이 없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청정공기법이 만들어졌다. 독일도 1980년대, 석탄을 많이 쓸 때 계절풍 때문에 핀란드, 스웨덴 등에 산성비가 많이 내려서 나무가 죽고 호수 역시 산성화되었다. 특정 협약이 아니라 시민운동을 통해 사회문제로 부각되었고 정치 이슈로 발전해 외교적으로 풀어갔다. 중국도 우리도 피해 당사자이므로 문제를 풀기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 운동단체에 소속된 몇 사람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 정말 이 이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시민들이 참여해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미세먼지 발생원이 무엇인지, 계절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정확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디젤차를 비롯해 군 차량, 경찰차 등의 오염원까지 정확히 파악한 다음 대책의 우선순위가 나와야 한다. 석탄을 땔 때 대기오염 물질 배출량이 가장 높은데 겨울에는 국내 화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가스를 쓴다든지 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 우선순위에 따라 기준치를 강화한 뒤 법적 조처를 취하고 대책을 세워 3년 정도만 해도 확 달라진다. 지금 미세먼지 경보 기준은 행정적 기준치인데, 국민의 건강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의 기준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한국 미세먼지의 총량, 중국·일본의 총량을 조사해 어떤 식으로 감축할 것인지를 국가 간에 논의해야 한다. 중국은 석탄발전소 100여 개의 설립을 중단하기라도 했는데 우리는 20개를 더 만든다. 폐쇄하기로 한 10기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AP Photo저렴한 인건비와 느슨한 규제 때문에 외국 기업이 많이 들어와 있는 중국은 오염원을 관리하지 못했다. 아래는 2016년 12월30일 중국 허베이성 첸안의 철강공장 모습.

중국 상황은 비슷할 텐데 미세먼지가 과거보다 더 심해졌다.

얼마 전 의문을 풀 만한 논문이 나왔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벤스〉를 보면 지구온난화로 북극 얼음이 녹고 물이 빨리 데워지면서 시베리아 한랭전선이 약해졌다고 한다. 중국의 미세먼지가 편서풍에 의해 확산되면서 흩어지는데, 그 세기가 약해져 대기에 오래 머물게 되었다. 결국 지구온난화로 가장 피해를 본 게 북극곰과 한국·중국인 셈이다.

하늘이 맑은 날도 있다.

하늘이 투명하면 미세먼지가 없는 걸로 착각하는데 눈에 안 보일 뿐이다. 대기오염으로 1명이 죽었다고 하면 그 1명만 의식하기 쉽다. 심각한 공해병으로 1명이 죽으면 10명의 심각한 환자가 있다는 의미이고, 그 10배는 환경성 질환자라는 뜻이다. 또 그 10배가 목 칼칼한 정도의 고통을 느낀다. 피라미드 구조다. 1명이 죽을 때는 1000명 정도가 괴로움을 겪는다.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자가 한 해 700만명이라고 하면 70억명, 즉 대부분의 사람이 미세먼지로 괴로움을 당한다는 의미다. 물은 선택할 수 있지만 공기는 선택할 수 없다. 바람과 바다에 국경이 없듯이 환경 피해에도 국경이 없다.

소송이 오래 걸릴 것 같다.

환경운동은 순발력과 지구력이 함께 필요하다.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300년 된 나무를 자르는 데 10초면 충분하다. 다시 자라는 데는 300년이 걸린다. 미세먼지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한 지 20년인데 이제야 움직이지 않나. 길게 보고 있다.

앞으로 계획은?

4월21일 관련 토론회를 연다. 석탄 화력발전소가 있는 충남 당진에도 방문한다. 몇몇 전문가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구체적인 사례와 대안을 찾아야 한다. 유명한 환경 소송으로 미나마타, 이타이이타이병, 새만금 소송 등이 있는데 재판을 진행하면서 바깥 활동(시민활동)이 활성화되면 결과가 잘 나오고, 그렇지 않으면 패했다. 변호사들을 포함해 다른 전문가들의 합류도 기대하고 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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