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런 악질적인 거짓말을 해?!”

친구의 성난 목소리가 절규로 바뀐 것은 ‘무슨 일인지’ 채 파악도 하기 전이었다. 대체 왜? 장뤄룽(장국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1세기 초 어느 만우절에 생긴,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대체 왜?” 데뷔 이래 한순간도 톱스타 자리에서 내려온 적 없던 그가, 남부러울 것 없는 명성과 부를 누리고 있던 그 순간에 세상을 등졌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1977년 아시아 가요제에서 데뷔한 이후 가수로도 큰 인기를 누렸지만, 장궈룽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된 것은 그가 동시대 다른 배우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홍콩 영화계는 누아르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우일 그림
많은 배우들이 폭력과 음모가 난무하는 암흑가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고 장궈룽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배우들이 우정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협객을 연기할 때,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많은 사람이 〈영웅본색〉(1986)에서 마크(저우룬파·주윤발)가 얼마나 멋지게 나오는가를 얘기하지만, 바르게 살고 싶었으나 암흑가 거물인 친형 때문에 언제나 좌절하는 형사 자걸(장궈룽)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그럴싸한 누아르물에 그쳤을 것이다.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과 형을 향한 애증 사이에서 갈등하며 분노를 쏟아내는 자걸의 모습은 자연인 장궈룽의 내면과도 많이 닮았다. 영국에 방직공장까지 가지고 있는 부유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부모는 가정보다는 바깥일에 더 열심이었다. 그런 부모와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장궈룽은 의지할 곳을 찾지 못했고 이런 환경은 그를 섬세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만들었다.

장궈룽은 그렇게 언제나 한 발만 땅에 디디고 있을 뿐 나머지 한쪽 발은 공중에 떠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진실한 사랑 주리(왕쭈셴·왕조현)를 만났지만 그녀가 이미 다른 이의 연인임을 알게 되자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방황하는 가수 루이(〈우연〉 1986)나 속세를 버리고 사랑하는 연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은둔 고수 탁일항(〈백발마녀전〉 1993)처럼 그는 언제든 이곳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장궈룽이 맡았던 역할들이 종종 어디에도 발붙일 곳 없이 방황하는 인물이었던 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패왕별희〉(1993)에서 장궈룽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어린 소년 데이는 자신을 돌봐주던 경극단의 사형 샬루와 스승의 강압에 못 이겨 우희를 연기한 후 여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라나지만, 그것이 자의에 의한 것인지 타의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극중 내내 방황하게 된다. 그렇게 데이는 안주할 곳을 갈구하지만, 동료도 세상도 그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고, 결국 종막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스스로 있을 곳을 선택하게 된다.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그는 언제나 한 발만 땅에 디디고 있었다

“다시 시작하자.” 보영(장궈룽)은 자신이 두고 떠난 아휘(량차오웨이·양조위)에게 다시 돌아와 매달리며 이 말을 반복하지만, 아휘는 끝까지 확답을 주지 않는다(〈춘광사설〉 1997). 사실은 보영도 아휘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함께 있고 싶지만 이곳은 보영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장궈룽을 ‘인격자’라 불렀고 같이 일했던 이들 중 험담을 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거친 세상 앞에서 그는 두꺼운 외피를 둘러 자신을 지키는 것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섬세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기가 있을 곳을 이제 찾았을까. 만우절을 하루 앞둔 3월의 마지막 날, 장궈룽은 한때 연인이었고 이제는 가족과도 같은 친구인 배우 메이옌팡(매염방)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하늘을 날 거야”라고 말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그녀는 그저 웃어넘겼고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그 웃음은 절규로 바뀌었다. “대체 왜?” 질문 아닌 질문에 답해줄 이는 세상에 없고, 이제 그저 그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막연히 짐작하며 그리워할 뿐이다. 2003년 4월1일 장궈룽이 세상을 떠났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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