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비정규직의 임금 인상률이 정규직 임금 인상률을 추월했다. 후생노동성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1월 말까지 파트타임 노동자의 시급이 2.6% 오른 반면 정규직은 0.4% 오른 데 그쳤다. 일본의 비정규직 구인 사이트인 ‘비-스타일’은 파트타임 노동자들의 시급이 올해 들어 2월 사이 7%나 오른 것으로 집계했다. 도쿄·오사카·나고야 등 대도시의 파트타임 노동자 시급은 지난해 11월 사상 처음으로 1000엔을 넘겼다. 정규직 임금 역시 소폭으로나마 꾸준히 인상되어왔다. 지난 20여 년의 불황기 동안 얼어붙었던 일본의 임금수준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일까?

호경기에 기업들이 노동 수요를 늘리면 그 가격(임금) 역시 오르기 마련이다. 노동자들은 소비를 늘려 호황을 촉진한다. 실제로 아베 신조 정부는 임금 인상을 경기 선순환의 조짐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임금 인상에는 더 큰 원인들이 있다.

ⓒEPA아베 총리는 인구 감소에 대한 대응책으로 장시간 노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일단 만성적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15~64세)가 매우 줄어들었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1995년 8720만명에서 2015년 말에는 7590만명으로 축소됐다. 20년 동안 1100만여 명이 노동시장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 같은 ‘노동자 부족’으로 산업 현장에서는 “보수를 올리지 않으면 노동자들을 잡아둘 수 없다”라는 아우성이 울려 퍼지고 있다. 구직자가 100명이라면 일자리는 143개로 남아돈다. 지난해 일본의 대졸자 취업률이 무려 97.3%(정규직·비정규직·자영업을 모두 합친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정규직 대신 불황기에 해고 가능한 비정규직의 임금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 유력 경제지 〈마켓워치〉의 해석이다.

또 하나의 임금 인상 동력은, 아베 신조 총리가 주도해온 노동시장 개혁이다. 특히 일본 정부가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의미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같은 노동엔 같은 임금)’ 원칙을 강조하고 관련 입법까지 예고하면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대폭 강화되었다.

일본의 전체 고용 가운데 40% 정도가 기간제, 파견 노동자 등 비정규직이다.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해도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60% 정도에 불과하다. 부조리한 상황이지만, 정부가 민간 부문(노동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조정할 수는 없다. 산별노조가 강력하다면, 노사 교섭으로 임금격차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노사 교섭은 한국처럼 기업별로 이뤄진다. 아베 정부는 나름의 묘안을 만들었다. 우선 ‘동일한 노동(경험·능력·기여도 측면에서)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은 동일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확고히 세웠다. 정규직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는 비정규직은 기업 측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비정규직을 행정적으로 지원한다. 분쟁이 일어나면 회사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의 ‘합리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기업 측에 입증 책임을 둔 것이다. 이런 소송이 증가하고 차별 대우에 대한 벌칙이 실질적으로 강화된다면, 임금 격차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아베의 노동시장 개혁에서 또 하나의 축은 장시간 노동을 제한하는 조치다. 흔히 ‘과로사회’라 불리는 일본에서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나 정신질환이 빈발한다. 2015년 12월 광고 대기업인 덴쓰의 여성 신입사원이 월 100시간 이상의 잔업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장시간 노동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아베 정부의 정책 의제로 흡수된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법정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이다. 월 단위로 따지면 160~180시간쯤 된다. 그 이상 일하면 연장노동(법정 근로시간 이상의 노동)이다. 아베 정부의 지침은 연장 노동시간을 월 45시간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1년 내내 매월 45시간의 연장 노동(45시간×12개월=540시간)을 꽉꽉 채우도록 할 수도 없다. 1년 동안 가능한 연장 노동시간을 360시간으로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단, 노사 합의를 거치면 연장 노동시간을 월 100시간(해당 산업의 성수기에 한정), 연간 720시간까지 늘릴 수는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수많은 조건이 붙어 있다.

ⓒAP Photo2015년 12월 광고 대기업 덴쓰의 신입사원이 월 100시간 이상의 잔업에 시달리다가 자살했다. 위는 기자회견에서 머리를 숙이는 이시이 다다시 덴쓰 CEO.

궁극적으로 아베 정부의 장시간 노동 제한 조치는 인구 감소에 대한 대응책이다. 생산가능인구의 축소를 단기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 규모를 유지하고 싶다면, 1인당 생산량을 늘리는(생산성 증가) 수밖에 없다. 또한 노동자들이 과로하지 않아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이에 따라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아베 총리가 표방한 ‘1억 총활약 사회’는, 일본의 인구를 2060년 이후에도 1억명 이상으로 유지하겠다는 의미의 슬로건이다.

일본의 ‘1억 총활약 사회’ 가능할까

단기 처방도 있다. 먼저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하면 된다. 〈니케이 비즈니스〉에 따르면, 실제로 자민당은 외국인들의 영주권 취득을 용이하게 만드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사실상 이민 확대 정책이다. 하지만 폐쇄적인 일본 사회는 이민을 환영하지 않는다. 정부·여당이 정치적 궁지로 몰릴 수 있다. 〈니케이 비즈니스〉는 “아베 정부가 ‘이민’이라는 용어를 피하면서” 사실상의 이민 확대 정책을 추진 중이라고 썼다.

지난해 9월 아베 정부, 게이단렌(경총), 렌코(노총) 등 노사정으로 구성된 ‘노동개혁 실현을 위한 위원회’에서 이 같은 방안들을 구상했다. 노동개혁위원회는 지난해 12월의 가이드라인 발표에 이어 지난 3월28일, 실행 계획안에 합의했다. 아베 총리는 “후손들은 2017년을 일본의 노동 관행이 변화된 출발점으로 기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올해 안에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뒤 2019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일본의 미래를 겨냥한 야심만만한 장기 계획인데 그 실효성을 두고 예측이 엇갈린다. 아베 정부의 구상대로 임금과 생산성이 소비지출과 함께 상승하고, 일본인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지면서 서서히 출산율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비용의 증가로 노동집약적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떨어지면서 투자가 줄어들고 소비지출의 회복이 좌절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더욱이 일본의 ‘노동 부족’ 현상이 장시간 노동 규제로 오히려 더욱 악화될지 모른다. 노무라 증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마사키 구와하라는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노동 부족은 장기적으로 비용 상승에 따른 물가 인상과 경기침체를 동시에 유발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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