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꺼지지 않는 혁명이 되었다. 탄핵 반대 집회에도 대통령 탄핵 여론은 75~80%로 꾸준히 높았고, 탄핵된 전 대통령의 구속 수사 찬성에 대한 여론도 70%에 가까웠다. 놀라운 일이다. 무릇 모든 구체제 청산, 신체제 수립의 상징은 새로운 헌법, 새로운 법률로 나타난다.

그러나 촛불 혁명의 입헌화·입법화에 앞장서야 할 국회는 어떠한가? 촛불 정국에서 제안된 그 많은 개혁 법안 중 지금까지 입법된 것은 하나도 없다. 더 나아가 구체제의 본당인 자유한국당이 오히려 거꾸로 가는 졸속 개헌을 하자고 나선다. 바른정당·국민의당 일부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구체제의 머리는 탄핵됐지만, 머리 잃은 구체제의 몸통은 여전히 개혁에 저항하고 있다. 국민의 개혁 요구는 비상히 높은 반면 그 요구를 실현할 국회의 힘과 의지는 매우 허약하다. 촛불 혁명을 완성할 길이 있는가?

‘시민의회’ 소집을 통한 촛불 개헌의 길이다. 이를 통해 개혁 입법의 길도 열린다. 시민의회는 차기 대통령이 소집한다. 시민의회를 통한 개헌을 공약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헌법 제75조에 의거하여 대통령령으로 소집하면 된다. 대통령령 시행은 국무회의의 동의 절차만 거치면 된다. ‘개헌 시민의회’의 회기는 1년으로 한다. 대선일이 5월9일이고 다음 지방선거가 내년 6월이므로 정확히 1년이 주어져 있다. 시민의회는 유권자 가운데 지역·성별·연령을 반영한 무작위 선발 방식으로 국회의원과 동수인 300명을 뽑는다. 시민의회는 대통령, 정당, 시민단체들이 제안한 개헌안을 심의하여 합의에 이르고, 그 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여 심의·가결하면 된다.

ⓒ시사IN 신선영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인용된 3월10일,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시민의회 심의와 국회 가결을 통해 시민의회는 국회를 보완한다. 지난해 12월9일 국회 탄핵안 가결 때와 같이, 땅에 떨어졌던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오히려 되살아난다. 원내 정당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국회에서 가결된 개헌안을 최종적으로 내년 지방선거일에 국민투표에 부치면 된다.

지금까지 캐나다,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에서 소집된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도 모두 동일한 경로를 밟았다. 모두 의회주의와 정당체제가 잘 발달된 나라이다. 총선에서 시민의회 소집 공약을 내건 정당이 집권당이 된 후, 새 정부의 총리가 시민의회를 소집했다. 여태껏 시민의회에서 합의한 안을 의회가 거부한 사례는 없다. 시민의회는 꼭 해결해야 할 문제를 교착상태에 빠진 의회가 해결하지 못하여 의회와 정당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을 때 소집되었다. 바로 헌법과 선거법 개정이 주요 의제였다.

촛불 혁명이 진행 중인 한국의 상황은 이러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비상하게 뜨겁지만 국회는 이러한 열망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해외 사례에 비추어보더라도 시민의회가 소집되어야 할 때이다. 이미 유력 대선 주자들은 대선 이후 ‘국민참여 개헌’ ‘국민공론 수렴 개헌’을 약속해왔다. 시기에 대해서도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밝혀왔다.  

ⓒ오픈디모크라시누리집 갈무리아일랜드는 헌법 개정을 위해 시민 대표만으로 이루어진 ‘시민의회’를 구성했다.
해외의 시민의회가 보여준 합의 수준은 매우 높다. 3분의 2를 훌쩍 넘어 보통 5분의 4 이상의 초다수(supermajority) 합의를 이룬다. 시민의회는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렇듯 안정된 합의를 이룰 수 있을까? 심의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진정한 심의(deliberation)는 ‘선호 변경(preference change)’이 가능할 때 이루어짐을 확인해왔다. 토론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기꺼이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심의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기본조건이다. 이미 편이 갈린 상태에서 서로 지지 않으려고 하는 토론에서는 이러한 선호 변경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거꾸로 시민의회에서는 토론이 진행될수록 선호 변경이 오히려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기존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공정할 수밖에 없다. 어떤 특정 입장에 대한 미리 고정된 유불리가 없으므로, 어느 정당이나 세력이든 이 방법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시민의원의 선발 원리(무작위 선발) 자체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견해나 소속을 전제로 하지 않기에 토론을 통한 선호 변경이 가능하다. 이런 원리는 선거와 반대다. 선거에서는 후보자(피선거권자)가 어떤 특정 정당·조직의 소속이거나, 특정한 견해를 확고하게 밝힌다. 반면 무작위 선발에서는 그러한 전제를 지운다. 특정 사안에 연관된 특정 소속이나 위치에 묶여 있지 않을 때, 일반인이 해당 사안에 대해 갖게 되는 견해와 태도란 느슨한 느낌 또는 판단 이전의 유동적 의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고 공정한 토론이 보장되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숙고된 판단 이전의 초벌적 견해인 것이다.  

시민의회의 초다수 결정, 국회 부결 어려워

대선 이후 시민의회가 소집되어 개헌안을 논의하면 국민의 관심이 커지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이를 중계할 것이다. 그리하면 한국 시민의회는 지금까지 소집된 그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 국민의 관심과 참여가 뜨거운 시민의회가 될 것이다. 정당과 시민단체는 여기에 적극 참여하여 자신의 견해를 개진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공개된 과정을 통해 높은 관심 속에서 도달한 시민의회의 초다수 결정을 국회에서 부결하기는 어렵다. 이 안에 반대했을 때 져야 할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9일의 국회 탄핵안 가결과 매우 흡사한 표결 상황, 표결 결과가 재연될 것이다.  

이렇듯 국회에서 가결된 헌법개정안을 최종으로 내년 지방의회 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치면 된다. 국회에서 가결된 개헌안은 국민적 환영을 받을 것이고, 개헌안 국민투표는 축제 분위기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구체제 세력은 야권 대선 후보들의 대선 후 개헌 약속이 거짓이라고 역공하고 있다. 대통령이 되고 나면 개헌을 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적반하장 주장을 보기 좋게 뒤집어놓기 위해서라도 대선 후보들은 대선 후 시민의회 소집을 통한 개헌을 약속해야 한다. 그렇게 당선된 차기 대통령이 소집한 시민의회는 국회·정당·시민사회와 협력해 촛불 혁명을 완성할 것이다.

기자명 김상준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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