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간다〉이인휘 지음창비 펴냄
정태춘씨의 노래에서 영감을 얻어 쓴 소설이라고 했다. 그 노래가 ‘92년 장마, 종로에서’다. 좋아하는 노래다. 게다가 작가가 이인휘씨다. 1990년 대표적 노동문학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한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다. 2016년에 전작 〈폐허를 보다〉로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반가운 작가의 귀환. 두 가지 이유로 책을 읽게 되었다.

소설에는 자전적 경험이 짙게 배어 있다. 지인의 이름도 보인다. 어떤 이는 한 음절을 달리하는 식으로 이름을 살짝 바꾸었다.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오가겠지, 짐작했다. 어떤 대목은 사실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더 뭉클했다.

줄거리는 이렇다. 소설 속 ‘나(박해운)’는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지방으로 간다. 생계를 위해 식품공장에서 일하는 그는 소설과 멀어진다. 어느 날 우연히 찾은 CD 한 장을 듣다가 작가는 어떤 회한에 눈물을 흘린다. 정태춘씨의 실제 노래가 중간 중간 인용된다. 노래와 함께 지난 삶의 풍경이 그려진다.책을 읽으며 정태춘씨의 음악을 들었다. 가사는 이렇다.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1991년 봄 ‘강경대 투쟁’으로 거리는 뜨거웠다. 싸움은 패배했고, 그 이듬해 거리의 열기는 소멸했다. 작가는 노래를 매개로 삼아 독자를 1980년대 노동운동의 현장으로 이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식품공장에서 벌어진 싸움을 묘사하는 대목을 들겠다. 일흔 살을 앞둔 ‘왕언니’의 1인 시위로부터 시작해 여성 노동자들이 하나둘 가세해 이긴다. 그들과 만나 돌아오는 길에 남한강에서 강물을 보며 다시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수 정태춘씨는 지난해 11월 촛불집회 때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거리에서 그 노래를 들었던 백만 촛불에게, 한 시대를 함께 건너가고 있는 이들에게 이 소설을 권한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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