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후배인 친구는 대학 때 캠퍼스 커플이었다. 하루는 데이트 중에 생리통으로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많이 아파? 화장실 갔다 와.” 그 친구는 소변이나 대변처럼 생리를 모아놨다 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심지어 의대생이!

19세기 의사들은 여성의 생리를 병적인 상황으로 여겼으며 지적인 활동을 피하고 누워서 쉬라고 조언했다. 여성의 자궁과 두뇌가 연결되어 여성이 고등교육이나 전문직 같은 과도한 두뇌활동을 하면 생리불순이 일어나 임신과 출산을 못하게 된다는 주장을 편 의사도 있었다. 물론 그는 남성 의사였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지난해 ‘깔창 생리대’ 이야기가 불거졌을 때, 광주의 한 시의원은 시의회 회의에서 생리대가 듣기 거북하니 위생대라고 하자고 말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생리는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생리대가 수도·전기처럼 공공재로 다뤄져야 한다”라며 무상 생리대 정책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런 발언은 자연스러운 몸의 한 부분인 생리를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한 달에 한 번 모든 여성이 하는’ 식으로 획일화하기에는 여성이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 질병과 장애의 유무, 어떻게 생리를 경험하고 인식하는지가 제각각 너무나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생리를 포함한 여성 건강은 다양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생리용품은 여성 필수품이다. 보건소에 가서 내 가난을 증명하고, 석 달치 무상 생리대 박스를 들고 나오는 시혜적 지원책만이 최선일까. ‘저소득층 생리대 지원사업’은 보건복지부가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30억원이 배정되었다. 그런데 만약 내년 연말에 예산이 깎이면? 가난의 기준은 더 엄혹해질 것이고, 생리대를 타서 나오는 발걸음은 더 비참해질 것이다.

ⓒ정켈 그림

우리에겐 더 많은 창의력과 행동이 필요하다. 미국 뉴욕 시에서는 지난해부터 공립학교·교도소·노숙자 보호소 등에 무료로 생리대와 탐폰 자판기를 제공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시내 모든 분수대를 붉은 물감으로 물들이는 시위를 벌였다. 인도의 발명가 아루나찰람 무루가난탐은 생리를 터부시하는 문화 때문에 아내가 걸레를 이용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목화솜과 방수포로 생리대를 만들어 쓸 수 있는 생리대 제조기를 발명했다. 현재는 저소득층 여성들을 위한 수익사업이자 여성 청소년 교육운동(인도에서는 생리를 시작한 여학생들의 23%가 학교를 그만둔다고 한다)을 벌이고 있다. 전 세계 106개국에서 그의 아이디어로 공익사업을 하고 있다.

여성의 상황에 따라 생리의 경험과 인식은 제각각 다르다

무엇보다 기업이나 광고가 만들어내는 정형화된 생리의 이미지에 저항해야 한다. 최근 생리대에서 유해 화학물질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논란이 되었다. 생리대 가격이 이슈화되고 저소득층에 무상 제공된다 하더라도, 유해 화학물질이 없는 유기농 순면 생리용품은 아무나 선뜻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업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품에 대한 관리와 책임을 요구하는 것과 동시에 환경과 건강을 위한 다회용 천생리대·생리컵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실제로 천생리대나 생리컵을 사용하면 생리통과 피부 트러블, 냄새가 감소한다는 연구들이 있다.

여성들이여, 생리 이야기를 더 많이 하자. 생리통은 생리혈을 배출하기 위해 자궁이 수축하면서 생기는 통증이어서 자궁의 모양이나 방향에 따라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고, 월경공결제를 요구하고, 진통소염제에는 내성이 생기는 게 아니니 약 먹는 걸 꺼려하지 말자. 오히려 진통소염제로 통증을 조절하고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이 생리혈 배출과 스트레스 완화에 훨씬 도움이 된다.

생리가 가까워지면 몸이 붓거나 식욕·감정 변화가 생기는 것도 호르몬의 변화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생리 중에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는 견과류, 마그네슘, 비타민 C와 E가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될 정도의 통증이나 기복, 2시간에 한 번 이상 패드를 갈 정도의 월경 과다가 있다면 병원을 찾기를 권유한다.

기자명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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