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은 글렀으니 야당 연습이나 하자?
  • 김동인 기자
  • 호수 498
  • 승인 2017.04.0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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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정치적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의 개헌 대오도 국민의당의 번복으로 무너졌다. 김종인·정의화·정운찬 등을 중심으로 한 ‘제3지대’ 논의도 힘이 빠졌다.
진도 앞바다에 세월호 선체가 떠오른 3월23일, 전국적인 추모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소식이 여의도에서 들려왔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세월호 특조위는 세금도둑이다”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던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4월12일) 후보로 공천했다. 이 지역에 후보 공천을 하지 않겠다던 인명진 비대위원장의 방침과 상반된 결정이었다. 단순한 공천 번복처럼 보이지만, 자유한국당 내 권력구도를 드러낸 상징적 장면으로 꼽힌다. 대선을 앞두고 여론을 염두에 두었다면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기 때문이다. 당내 주도권이 이른바 ‘삼성동계’로 쏠리고 있음을 드러냈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자유한국당의 ‘친박 색채’는 두드러진다. 두 차례 컷오프 끝에 살아남은 후보는 모두 네 명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 김진태 의원, 김관용 경북도지사, 이인제 전 최고위원이다. 홍 지사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친박 적자’임을 경쟁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김진태 의원과 이인제 전 최고위원은 탄핵 반대 집회에 적극 참석했다. 김관용 지사도 친박계 모임인 ‘혁신과통합 보수연합’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홍 지사가 지지율 면에서 앞서지만, 조직이나 세력 없이 인지도를 바탕으로 한 단독 플레이에 가깝다.

ⓒ연합뉴스홍준표 경남도지사(맨 왼쪽)를 제외하고 이인제 전 최고위원, 김관용 경북도지사, 김진태 의원(오른쪽부터)은 서로 ‘친박 적자’임을 내세우며 경쟁하고 있다.

탄핵 여파로 자유한국당의 대선 준비는 힘이 빠진 모양새다. 경선 규모도 축소됐다. 자유한국당은 당초 네 지역, PK(부산 경남)· TK(대구 경북)·충청·서울에서 합동연설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PK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곳은 텔레비전 토론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룰을 바꿨다. 당 지도부는 텔레비전 토론이 더 효율적으로 후보를 보일 수 있는 방법이라 설명했지만 과거 한나라당·새누리당 시절과 비교해볼 때 비용과 절차를 대폭 축소한 모습이다.

각 후보의 콘텐츠도 야권 후보에 비해 부실하다. 경선에서 공약이 실종됐다. 지지율 1·2위를 달리는 홍준표-김진태 후보 간 설전은 보수 재건 방식에 주로 쏠렸다. 홍준표 후보는 “바른정당과는 별거 상태다. 다시 합칠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반면 김진태 후보는 “바른정당은 없어져야 할 당”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유승민-남경필 후보 간 정책 논쟁이 부각된 바른정당 경선과도 대조적이다. 자유한국당은 대선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기 때문에 더욱 공약을 경시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선거에 대한 무력감은 당내 실무진에게서도 드러난다. 대선을 사실상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패배감이 짙다. 이른바 ‘야당 준비’에 나선 이들도 적지 않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실무진 사이에서는 당장 5월 새 정부 인사청문회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대선 캠프에 차출되는 것도 꺼리는 분위기다. 그 시간에 소속 상임위 전문성을 키우는 게 추후 ‘야당 생활’에 더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체감하는 외부 환경도 바뀌었다. 정부 부처의 협조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국회를 방문하는 기업의 대관 담당자도 민주당을 찾는 추세다. 정권교체를 당연시하는 분위기 때문에 내부 생존경쟁도 일찍부터 체감한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그나마 최근 부각된 이슈가 있다면 후보 단일화 정도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간 연대를 통해 개헌 국민투표를 밀어붙이는 안이 잠시 주목받았지만 민주당의 반대, 국민의당의 번복 등으로 무산되었다. 김종인·정의화·정운찬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제3지대’ 논의도 급격하게 힘이 빠졌다. 개헌을 고리로 한 정계개편은 어렵다는 게 전반적 의견이다. 거창한 명분(개헌) 대신 현실적인 목표(반민주당)를 내세운 단일화 외에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무성·홍준표 회동으로 단일화 가능성 커져

경선 통과 가능성이 높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보수 후보 단일화에 적극적이다. 3월23일 유승민 후보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도 대선 25일 전인 11월24일에 이뤄졌다”라며 후보 단일화를 논의할 만한 시간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김무성 바른정당 고문과 홍준표 후보가 회동하는 등 두 당의 후보 단일화 가능성도 이전보다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김무성 바른정당 고문(왼쪽)과 유승민 대선 후보는 자유한국당과의 후보 단일화에 적극적이다.

‘돈 문제’도 두 당이 단일화에 솔깃해하는 이유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비용을 보전받기 위한 기준선은 득표율 15%다. 중앙선관위가 제한한 후보 1인당 법정 선거비용 최대치는 509억여 원이다. 갈라선 두 정당이 각각 몇백억원대 선거비용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득표율 15%를 못 채울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3월24일 발표한 정례조사(전국 1007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전체 지지율 6%,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1%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어렵사리 ‘보수 후보 단일화’가 된다 하더라도 ‘반민주당 단일화’로 확장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에 부정적이다. 또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국민의당은 선뜻 자유한국당과 손을 잡기 어렵다. 자유한국당 내 친박 세력의 강세가 ‘반민주당 연대’ 또는 ‘반문재인 연대’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에서는 대선보다는 대선 이후 보수 정당 구도 변화에 신경을 쓰는 이들이 많다. 자유한국당 내 비박계의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자유한국당 내 탄핵 찬성파는 대선 이후 홍준표 후보를 중심으로 결집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자유한국당 내 탄핵 찬성파는 구심점이 마땅치 않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모여들었으나 ‘반풍’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바른정당으로 옮기기에는 당 지지율이 너무 낮다.

바른정당 역시 홍준표 후보의 등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바른정당의 한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 즈음에는 재편 논의가 나올 것이다. 홍준표 후보가 대선 이후에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어떻게 세력을 만드느냐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대내외 여건상 다음 정부는 누가 맡아도 어렵다. 저쪽(민주당)도 곧바로 실수할 거고, 그때 홍준표라는 인물이 강한 야당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쉽게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결국 대선보다는 선거 이후, 대권보다는 당권에 시선이 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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