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선배였던 이문재 시인은 첫 문장을 강조했다. 내가  수습기자였을 때다. 기사의 첫 문장은 ‘호객 행위’라고 했다. 도입부에서 승부를 걸라는 뜻이었다. 마감이 다가올 즈음이면 출근길에, 퇴근길에, 걷다가, 밥 먹다가 ‘첫 문장’을 고민하라고 했다.

첫 문장을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 보면 자연스레 글 얼개를 짤 수밖에 없다. 머릿속에서 써나간 첫 문장을 지우고 다른 문장을 떠올리면서 글의 구조를 다시 쌓아나갔다. 첫 문장을 쓰고 나면 절반은 끝난 듯했다. 기사에서도 그리 중요한데 소설에서야 말해 무엇하리. 그래서 〈소설의 첫 문장〉이라는, 평범해 보이는 제목은 매력적이다.

이 책은 글쓰기 관련 책이 아니다. 소설에 대해 논한 책도 아니다. 지은이가 말한 대로 ‘소설의 첫 문장에 기대어 쓴 짧은 단상을 모은 책’이다. 장편소설 242편의 첫 문장을 추렸다. 첫 문장 두세 개를 묶기도 한다. 가령 ‘오늘 엄마가 죽었다(〈이방인〉).’ “오늘 엄마가 죽었어요…(〈겨우 사랑하기〉).” ‘어머니가 4월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한 여자〉).’ 모두 각 소설의 첫 문장이다. 이 세 문장을 책의 왼쪽 면에 ‘부음’이라는 소제목으로 엮어두고, 오른쪽 면에 이 문장에 대한 단상을 적는 식이다. 그 단상은 때로 책의 내용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지은이의 일상의 한 모습일 수도 있고, 문장이 불러일으킨 마음의 풍경일 수도 있다. 각각의 단상이 모여 ‘한 편의 스토리’처럼 느껴진다.

첫 문장이 발췌된 242편 가운데 얼마나 읽었나, 헤아려보니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이 책을 읽는 데 지장이 없다. 한 가지 권하자면, 한 번에 읽지 말고 여러 번에 나누어 보라는 것. 나 같은 경우에는 ‘국정농단’ 소식이 특검으로부터 쏟아져 나올 때, ‘사실의 세계’가 버겁다고까지 느껴질 때, 이 책을 펼쳐 읽었다. 소박하고 담백한 문장이 주는 위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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