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이슈 불감증’에 보수는 길을 잃었다
  • 이오성 기자
  • 호수 496
  • 승인 2017.03.23 17: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9년 동안 보수 정권은 대중이 호응할 만한 정치·경제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직 안보에만 매달렸고 이는 ‘안보 이슈 불감증’을 초래했다. 보수의 가치는 실종됐고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대통령 파면 꼭 10년 전인 2007년 3월은 보수 천하였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명박·박근혜 두 보수 후보의 합이 60%를 넘었다. 진보 대선 주자의 지지율은 밑바닥이었다. 그해 12월 대선에서 이명박의 압승(530만여 표 차이)은 기정사실이었다.

10년 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보수는 처참할 정도로 몰락했다. 지금 대선 여론조사 결과는 진보 천하다. 야권 후보의 합이 60%를 훌쩍 넘는다. 황교안, 홍준표, 유승민 등 보수 후보의 합은 20% 정도에 그친다. 대선이 벌어지는 해, 보수 후보의 지지율이 이렇게까지 무너진 적은 1987년 민주화 이래 없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이 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켰다”라고 말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터라, 웬만하면 일희일비하지 않는 야권 관계자들 역시 보수의 몰락을 직감한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여당에서 야당 지지로 돌아선 이들이 꽤 된다. 과거 여권이 잘못했을 때 그들은 ‘모름·무응답층’으로 돌아서지, 야권으로 오지는 않았다. 이런 현상은 극히 이례적이다. 보수층 일부가 여권을 버렸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시사IN 자료2006년 11월9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왼쪽)가 뉴라이트전국연합 총회에 참석했다.

물론 이런 진단은 아직 섣부르다. 2012년 대선 결과에서 드러난 팽팽한 진보-보수 구도가 일순간에 허물어지리라고 보지 않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뚜렷한 공감대는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이 현 보수 정치 세력에 대한 파산선고라는 점이다. 이는 곧 21세기에 등장한 신보수(뉴라이트) 세력의 몰락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 신보수 세력이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1997년 헌정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2002년 노무현 정권이 탄생하면서 보수의 위기감이 커졌다. 이들은 2004~2005년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결집해 ‘역사 전쟁’을 시도한다.

방향은 뚜렷했다. 친일·독재 등 자신들의 얼룩진 과거를 ‘수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건국절 주장,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발간, 박정희 시대 평가 등이 그것이다. 국정 역사 교과서 추진, 극우 인사 문창극씨 국무총리 지명 등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역사 전쟁은 계속됐다.

역사 전쟁의 든든한 버팀목은 안보였다. 북한과의 긴장관계를 끊임없이 자극하며 과거 진보 정권의 햇볕정책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등 굵직한 안보 이슈가 터질 때마다 보수 정권은 강경 일변도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 지방선거를 8일 앞두고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사건을 거론하며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보수 세력은 정상회담 회의록 논란까지 터뜨렸다.

역사 전쟁과 안보 이슈를 기반으로 신보수 세력은 ‘먹고사니즘’을 공략했다. 747 공약, 규제 완화 같은 국가 주도 경제성장 전략과 친기업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연승을 이어갔다. 당시 한국도 일본처럼 보수 장기 집권 시대가 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졌다. 보수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위기에 몰렸으나 박근혜 정권의 탄생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4년 만에 자멸하고 말았다.

역사전쟁으로 4050 학부모 세대 등 돌려

보수 정치 세력이 몰락한 ‘뇌관’은 물론 박근혜 게이트였다. 보수 세력의 고갱이라 불러도 좋을 박 전 대통령의 도덕적·정치적 리더십이 무너지면서 보수 정치 세력도 파산했다. 그러나 보수 정부 9년을 거치면서 폭약은 꾸준히 축적되어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신보수의 무기가 녹슬어가는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시사IN 조남진2016년 11월4일 새누리당 의원들이 의원총회에 앞서 ‘최순실 비리 의혹 관련 새누리당 국회의원 대국민 사죄’를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먼저 역사 전쟁은 아무런 정치적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문창극씨 국무총리 지명 정국에서 나타났듯 친일·독재 역사의 복권을 시도하자 오히려 정권 지지율이 추락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4050 학부모 세대가 등을 돌리게 했다. 역사 전쟁은, 전쟁 당사자들만이 흥분하는 이슈였다.

안보 이슈는 더했다. 유권자들이 웬만한 이슈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 흐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 기점이 놀랍게도 천안함 사건이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직후 동아시아연구원·SBS·<중앙일보>·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패널 조사에 따르면, 후보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슈는 4대강 사업, 무상급식, 세종시 사업 순서였다. 천안함 이슈는 고작 5위에 그쳤다.

특히 천안함 사건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지지를 바꿨다’는 응답(12.7%)이 ‘야당에서 여당으로 바꿨다’(2.4%)는 응답보다 훨씬 높았음을 주목해야 한다. 천안함 사건을 선거용으로 인식한 유권자들이 반발했다는 이야기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이런 흐름은 이어졌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개성공단 폐쇄 조치를 단행한 뒤 박 전 대통령은 “개성공단 달러가 북한 노동당 지도부로 흘러간다”라는 국회 연설로 정치권을 발칵 뒤집었다. 그럼에도 선거 결과는 야권의 압승이었다. 지난달 김정남 피살 사건 역시 탄핵 여론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동안 각종 경제지표는 추락 일변도였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보수 정권은 대중이 호응할 만한 정치·경제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 결과 안보에 매달렸고, 그것이 ‘안보 이슈 불감증’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보수는 길을 잃었다. 가치는 실종됐고,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경제 지배를 넘어서 시민사회에서 정치적·도덕적·지적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는 보수의 지침을 스스로 차버렸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기획한 박지향 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의 지적처럼 “통치 능력이 없는 (다음) 진보 정권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보수 정당이 재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을 기다릴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보수의 몰락은, 그 대항 세력이 같은 시험대에 선다는 걸 뜻한다.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