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근, “언제든 청와대 오라더니 뒤에선 불순분자 취급했다”
  • 정희상 기자
  • 호수 496
  • 승인 2017.03.2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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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게이트 이후 세월호 7시간 의혹은 탄핵 소추 사유로 부각되었다. 세월호 유족은 매주 촛불집회에 참여했고 시민들은 구명조끼 304개를 나눠 입고 행진했다.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사진)은 새 정부에서 다시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해 전원일치로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이수·이진성 두 헌법재판관은 국가 최고지도자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보충의견을 냈다. “피청구인(대통령)은 그날 저녁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도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그 결과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형 재난이 발생하였는데도 그 심각성을 아주 뒤늦게 알았고 이를 안 뒤에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피청구인의 대응은 지나치게 불성실하였다.” 두 재판관은 보충의견서를 이렇게 끝맺었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인식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므로 박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 위반을 지적한다.”

지난 3년간 광장에서 진상 규명의 끈을 놓지 않았던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시사IN 신선영

박영수 특검이 세월호 7시간 조사 결과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고 고개 숙였는데?


특검법을 만들 때 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응도 수사 대상에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유족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특검 수사 중에 인지된 사실이 나오면 수사를 확대하는 과정을 통해서 밝히겠다고 했다. 청와대가 특검과 헌재에 협조하지 않아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대통령이 잘못한 게 없어서 밝혀낼 수 없는 게 아니라 청와대의 비협조로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특검의 성과를 든다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비선 진료와 일부 미용 시술 횟수를 밝혀냈다. 하지만 미용 시술을 받았다든지 머리를 했다든지 이런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유족들은 위급한 시간에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마땅히 했어야 할 대응과 조치를 왜 대통령이 하지 않았는지 알고 싶다.

유가족에게 세월호 7시간의 의미는?


박 전 대통령이 처음 보고받고 지시를 내렸다는 오전 10시께부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오후 5시까지 ‘세월호 7시간’이라 부르는데, 사실 가족들에게 더 중요한 시간은 그게 아니다. 세월호에서 4월16일 오전 10시15분 이후에는 탈출이 불가능했다. 정부가, 참사가 일어난 전후에 어떠한 대응을 했느냐가 핵심이다. 해경이 오전 9시35분께 도착했는데 선원들만 구조했다. 그 뒤 청와대에서 해경에 집요하게 연락해 ‘영상을 찍어라’ ‘영상을 보내라’ ‘보고해라’ 등을 지시했다. 실제로 구조 활동에 방해를 끼칠 정도였다. 청와대는 그렇게 요구해서 받은 자료와 영상이 뭔지, 과연 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조차 말하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날 관저에서 근무했고 구조 지시했다고 답변했는데.


해경 도착 소식을 듣고 아이들이 부모에게 문자를 보내고 통화했다. 엄마 아빠들은 해경이 왔으니까 걱정할 거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밝혀진 걸 보면 정부가 한 게 하나도 없다.

청와대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나?

2014년 4월19일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진도에서 해경이 가족한테 에어포켓에 대해 거짓말한 게 들통이 났다. 이런 해경과 해수부를 제대로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대통령의 지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2014년 5월16일 청와대에서 연락이 와 만났다. 박 전 대통령과 오랜 시간 얘기를 한참 나눴다.

어떤 이야기를 했나?


박 전 대통령과 1시간40분 정도 얘기를 나누었다. 면담 뒤 가족들이 모두 “이제 다 됐다. 이제는 뭐 다 해결될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 대화를 하다 보면 몸짓이나 눈빛으로 상대방 진심을 파악하게 되는데,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굉장히 공감하기 위해 애썼다. 박 전 대통령은 특별법이든 특검이든 모든 조치를 취해 유가족들 여한이 없도록 밝히겠다고 강조했다. 또 언제든지 청와대로 찾아오라고 하고, 언제든지 연락하면 다 받아주겠다고도 약속했다. 대통령이 직접 불러서 가족들에게 그렇게 얘기하는데 누가 안 믿겠나. 우리는 다 됐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며칠 못 갔다. 대통령이 발표한 해경 해체 담화 내용을 보고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청와대 면담 때 미수습 실종자들을 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해경이 아무리 미워도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맡고 있어서 가족들은 미우나 고우나 해경을 격려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해경 해체를 전격 발표한 것이다.

대통령에게 유족 뜻을 전하지 않았나?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것은 공염불이었다. 그 이후로 수십 차례 면담을 시도했지만 단 한 번도 만나주기는커녕 아랫사람을 통해 말을 들어주지도 않았다. 세월호 특조위나 특별법 만들 때도 부탁하고 요청을 드릴 게 있다고 연락했지만 안 만나줬다.

왜 그랬다고 보나?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일지가 공개되면서 유족들이 참사 이후 느꼈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참사 다음 달인 5월에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세월호 유가족을 포함해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민까지 정권을 타도하려는 불순분자로 취급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인식부터 어떻게 마무리를 짓겠다는 것까지 초기부터 틀이 잡혀 있었다. 업무일지를 보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보수 언론과 보수 단체를 동원하라고 했다.

세월호 유족에 대한 정부의 공격은 어땠나?


보상금, 특례입학, 의사자 선정 문제 이런 것들을 부각시켜 마치 우리가 다른 불순한 목적을 갖고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것처럼 몰아갔는데 거기에 분명히 청와대가 개입돼 있었다는 게 이번에 드러났다.

특히 배·보상 프레임을 부각한 이유가 뭘까?


보통 다른 사례 같으면 피해자들이 조금 시끄럽다가도 보상금을 더 준다고 하면 그만두거나 흩어지거나 정리된다. 세월호 유족들은 안 그랬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이걸 분산시키고 이슈에서 사라지게 하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고 본다.

ⓒ연합뉴스3월4일 19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구명조끼 304개가 놓여 있다.

특조위도 세금도둑 프레임으로 몰았는데.


김영한 전 수석 업무일지를 보니까 위에서 다 프레임 짜가지고 그것을 주요 보수 언론과 보수 단체를 이용해 충실하게 밀고 나갔더라.

박근혜 게이트 이후 세월호 7시간 의혹이 다시 부각되었다.

첫 촛불집회 때만 해도 유족들 우려가 있었다. 최순실 국정 농단이 이슈가 되어 정국이 흘러가다 보면 우리 피해자 처지에서 세월호 문제가 묻혀버리면 어떡하지 싶었다. 그래서 촛불집회 가장 앞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우리의 분명한 구호와 요구를 외치자고 결론 냈다. 우리가 첫 촛불집회에서 외친 게 “세월호 7시간 박근혜 구속” “세월호 7시간 박근혜 탄핵”이었다. 하야나 퇴진 이런 구호만 나왔지 탄핵은 물론 구속 구호가 나오기 전이었다.

19차례 촛불집회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은?


시민들하고 같이하며 맨 앞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구명조끼 304개를 준비해서 시민들과 함께 입고 행진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사실 엄마 아빠들 중에는 구명조끼만 보면 침몰 순간이 생각나 힘들어하고 무서워하는 분도 많았다. 하지만 시민들이 지원해줘서 힘을 냈다. 또 ‘송박영신(박근혜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자)’ 행사를 하면서 지난해 12월31일 청운동 길가에서 카레밥을 준비해서 촛불 시민께 대접했던 일도 잊을 수 없다. 긴 시간 함께 길을 걸어온 시민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준 청운동 주민들께 감사드린다.

촛불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나?

언론에 세월호 7시간 문제가 퍼지면서 이것이 주요 탄핵 사유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국회 탄핵소추안 만들 때 당초 세월호 7시간 의혹이 안 들어갔다가 시민들의 뜨거운 열기를 보고 들어가게 됐다. 그 과정을 보면서 많이 놀랐다. 이 문제가 생각보다 크게 국민들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구나, 2014년 4월16일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고 박 전 대통령의 잘못을 짚어낼 때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는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특검 발표 후 세월호 24시간을 조사하라고 요구했는데?


의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24시간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참사를 예방하고 일어났을 때 대응하는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이다. 2기 특조위가 독립적으로 성역 없이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아야 가능할 것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1기 특조위의 한계를 평가해보면 강제조사권이 없다 보니 정부가 협조하지 않으면 진상 규명이 어려웠다. 탄핵소추안이 인용됐으니 조기 대선을 통해 들어설 새로운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진상 규명과 대책 수립에 어떻게 나설 것이냐 이 부분도 중요한 것 같다.

대선 후보들의 세월호 참사 관련 공약을 살펴보았나?

최근 한 방송사와 협의해 출마 예정 대선 후보들에게 질문지를 보냈는데 황교안 권한대행은 자기가 대선 후보 나가겠다는 얘기를 안 했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문재인, 안희정, 안철수, 이재명, 유승민 후보 등 모두 세월호 진실 규명에 새 정부가 적극 협조하겠다는 데 동의했다.

후보들의 답변에 차이는 없었나?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문재인 전 대표가 제일 구체적 대안을 보내왔다. 문 전 대표는 질문지를 보내기 전부터 새 정부에서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재수사하겠다고 얘기했다. 세월호뿐만 아니라 대형 국가 재난이 일어났을 때는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독립 조사기구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세월호 선체 인양은 어느 단계인가?

오는 4월까지 인양을 시도하겠다고 한다. 상하이샐비지가 세월호 인양을 맡고 있다. 세월호를 끌어올리기 위한 수중 와이어 연결 작업은 마무리된 상황이다. 이제 들어 올리는 일만 남은 거다.

인양 과정에서 선체 훼손 우려는 없나?


지금 해수부는 인양을 서두르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유족으로서는 마냥 환영할 수만도 없다. 국회에서 선체 조사를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져 선체조사위원회 구성을 앞두고 있다. 여기에서 인양과 미수습자 수습과 선체 조사, 선체 보존 등 4가지 임무를 담당해서 진두지휘를 해나가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해수부가 서두르고 있다. 선체조사위원회가 발족하고 활동하면 해수부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 같으니 빨리 인양해 선체조사위원회가 만들어져도 할 일 없게 하겠다는 의도 같다.

세월호의 최종적 해결을 위한 남은 핵심 과제를 꼽는다면?


완전히 끝난다는 건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일단 참사 원인을 밝혀야 한다. 배가 침몰한 직접적인 이유가 뭔지, 왜 말도 안 되는 구조 상황이 벌어졌는지 아직도 안 밝혀졌다. 진실을 알려달라는 유족과 시민을 억압하고 적대시하고 특조위를 방해하고 진실을 숨기려 한 이유가 뭔지 밝히는 게 핵심 과제다. 이것이 밝혀져야만 비로소 의미 있는 대책을 수립할 수 있다.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결국 2기 특조위 활동을 통한 참사 원인과 책임 규명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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