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 4년으로 깊어진 경기 침체
  • 이종태 기자
  • 호수 496
  • 승인 2017.03.2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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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창조경제 관련 사업은 박근혜 게이트 핵심 인물들이 관여했다. ‘경제살리기 입법’인 원샷법은 삼성이 영향을 끼쳤다. 가계대출 규모는 취임 이전에 비해 381조원이 늘었다.
2013년 10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 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혁신의 해법이라며 ‘창조경제’를 설파했다. 창조경제가 뭐지? 박 전 대통령은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을 대표 사례로 들었다.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박근혜 정부 인사들 역시 ‘창조경제’라는 용어를 줄기차게 들먹였으나 그 개념을 설득력 있게 개진하지는 못했다. 다만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시행된 정책을 통해 대충 감을 잡을 수는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혁신센터)다.

혁신센터는 일종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다. 전망 있는 스타트업을 선정해 국가재정으로 설비와 작업장은 물론 자본까지 조달해주면서 사업화를 돕는다. 전국 주요 도시에 설립한 18개 혁신센터별로 대기업들을 일종의 ‘멘토(전담기업)’로 지정해서 스타트업들에게 기술·자금·판로 개척 등을 지원하게 했다. 낯선 정책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당시 벤처산업 지원, 이명박 정부의 ‘지식경제 육성’ 등도 큰 틀에서 창조경제와 비슷하다. 가치 창출에서 자본이나 노동보다 기술·아이디어의 몫이 더 커진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서 시행될 만한 국책사업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엄청나게 새롭고 유례없는 독창적 정책 기조로 선전하는 바람에 그 개념에 혼선을 빚었을 뿐이다.

ⓒ연합뉴스박근혜 전 대통령(맨 오른쪽)이 2014년 9월 대구 창조경제단지 부지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박근혜 정부 4년차에 창조경제 관련 사업들은 의혹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국정 농단 주역인 최순실씨의 입김이 창조경제 구상 단계에서부터 사업 전개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확인되어서다. 창조경제 확산의 구심체라는 ‘창조경제추진단(추진단)’에는 박근혜 게이트의 핵심 인물들인 차은택 감독, 이승철(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안종범(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김상률(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차은택 감독의 외삼촌) 등이 포진되었다.

이들을 추진단에 집어넣기 위해 일부러 법령까지 고친 흔적도 나왔다. 당초 혁신센터는 지자체와 중소 벤처기업 사업으로 설계되었는데 갑자기 대기업 중심으로 바뀐다. 2014년 9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을 언급하면서부터다. 이때 돈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2015년 이후 대기업이 혁신센터에 기부한 돈은 삼성 120억원, KT 133억원, 현대차 116억원 등 700억원을 웃돈다. 대기업들은 혁신센터 관련 펀드에도 7000억원 이상을 지원했다. 이처럼 대기업의 돈이 창조경제 사업으로 흐르는 순간 박근혜·최순실 관련 인물들이 잔뜩 추진단에 포함된 것이다. 김경진 의원은 “대통령이 갑자기 대기업을 언급하면서 사실상 이번 게이트가 시작됐다”라고 지적한다. ‘창조경제 1호’나 모범 사례로 선정된 기업들이, 알고 보니 최순실 관련 인사의 업체로 드러난 경우도 있다.

결국 창조경제혁신센터 자체가 존폐 위기를 맞게 됐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17 경제정책방향’에는 창조경제라는 용어가 사실상 사라졌다. ‘2016 경제정책방향’에는 40여 차례나 등장했던 용어다. 국가의 공적 경제정책 기조에 대통령 지인들의 사익이 끼어들면서(연고주의) 터진 사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에 따르면, 이른바 ‘경제 살리기 입법’의 하나였던 원샷법에도 연고주의의 악취가 짙다. 원샷법은 기업의 사업 재편을 원활하게 만들어 국가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취지의 법률이다. 기업 분할·합병 관련 절차와 규제를 크게 완화했다. 산업고도화를 위해 필요한 제도일 수 있다. 그런데 경영권 승계로 골치를 앓던 삼성그룹 이건희 일가가 입법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특검 수사에 따르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2015년 7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해서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직후 박 전 대통령은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에게 “엘리엇 사태 등 외국자본에 의한 국부 유출이나 경영권 방어 문제를 잘 챙겨보라”고 지시했다.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는 ‘7-27-15 VIP 1. 삼성-엘리어트 대책/ M&A 활성화 문제, 소액주주 권익, Global standard X→대책 지속 강구’라고 쓰여 있다.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에게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 모종의 합의가 원샷법의 입법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한다.

국부 유출의 차단은 공적 의제일 수 있다. 그러나 초거대 기업의 경영자와 최고 정치권력자 간 사익의 교환은 또 다른 문제다. 원샷법의 첫 수혜자가 박근혜 전 대통령 친척의 기업으로 알려진 동양물산이란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김희용 동양물산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촌언니 박설자씨의 남편이다).

ⓒ연합뉴스2016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촉구하는 서명에 참여하고 있다.

특검에 따르면, 최순실은 박근혜 정부의 가계부채 및 부동산 정책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최순실의 태블릿 PC에는 ‘가계부채’라는 제목의 문서가 저장되어 있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가계부채 해결,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강조하라”고 조언한 사람도 최순실이다. ‘가계부채 해결’과 ‘부동산 거래 활성화’는 병행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다. 부동산 경기를 살리려고 대출 규제를 완화하면 가계부채가 폭증한다. 박근혜 정부는 매우 기괴한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빚내서 집 사라는 거냐’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대출 규제를 완화했다가 부채가 폭증하는 어느 순간 대출을 죄는 방식이다. 시장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춰야 할지 모를 정도로 뜬금없이 되풀이됐다. 결과적으로 일부 지역을 빼면 부동산 거래 자체가 활성화되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규제를 “쳐부술 원수” “암 덩어리”로 표현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규제를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입으로는 그랬다. 국무회의에서, 규제에 대해 “쳐부술 원수” “암 덩어리” 같은 원색적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규제의 해악이 가장 큰 경우는, 권력자가 사익을 위해 제도를 주무르는 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에서는 공익과 사익이 범벅되어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다. ‘증세 없는 복지’ 같은 포퓰리즘까지 겸비했다. 그 결과는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국정 목표로 내놓았던 ‘4·7·4 비전(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의 걷잡을 수 없는 추락이다.

한국은행 추산에 따르면, 2011~2014년의 잠재성장률은 3.4%였다. 박근혜 집권 4년차인 2016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4%대로 올라가기는커녕 2%대 후반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잠재성장률은 국가경제의 기초 체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경제성장률은 2014년(3.3%)을 제외하면 박근혜 임기 내내 2% 후반대에 그쳤다(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고용률 역시 70%는커녕 박근혜 취임 전해인 2012년의 59.4%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2016년 고용률이 60.4%다. 지난달에는 58.9%로 취임 전보다 악화됐다. 실업률은 지난해 3.7%로 취임 전해(2012년 3.2%)보다 오히려 높았다. 1인당 국민 총소득은 2014년 2만8070달러로 천장을 친 뒤 다음 해(2015년)에는 2만7339달러로 움츠러들었다. 반면 가계대출 규모는 2016년 말 현재 1344조원으로 취임 전인 2012년에 비해 381조원이나 늘어났다. 저출산 고령화나 산업 구조조정도 추진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트럼프 정부의 글로벌 경제 질서 재편, 사드를 둘러싼 미·중 충돌 등 외부의 격랑이 밀어닥치고 있다. 허송세월 4년의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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