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박근혜. 민간인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장 마주하게 될 신분이다. 현재까지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는 모두 13가지다.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수수·직권남용·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추가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3월10일 현재 대면조사 등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본격 수사가 이뤄지기 전이다. 탄핵이 인용되기 전까지 박 전 대통령은 헌법상 불소추 특권을 내세우며, 검찰·특검 수사를 모두 거부했다. 파면당하면서 불소추 특권이라는 방패가 사라졌다.

검찰·특검이 기소한 박근혜 게이트 관계자들의 공소장으로 박 전 대통령의 혐의를 살펴봤다(공소장에 나온 혐의의 구체적 내용을 인용했다). 지금까지 기소된 이는 모두 39명이다. 검찰과 특검은 이들의 혐의 정점에 박 전 대통령이 있다고 본다. 최순실씨는 박 전 대통령과 공범 관계다. 최순실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청탁이나 의견을 개진하면, 박 전 대통령은 관료 등에게 지시했다. 그 과정에 관여하고 숨기느라 거짓말을 했던 이들 또한 재판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시사IN 조남진2016년 4월18일부터 10월26일 사이에 최순실씨(왼쪽)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불법으로 만든 대포폰으로 573번 통화를 했다.


삼성 뇌물수수

2014년 9월 초, 최순실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한화에서 삼성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한다. 한화가 정유라씨 지원에 소극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9월15일 박 전 대통령은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따로 부른다.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삼성이 맡아주고 승마 유망주들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좋은 말도 사주는 등 적극 지원해달라’고 요구한다.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진 삼성은 경영 승계를 서둘러야 했다. 박 전 대통령을 매개로 최순실씨와 이재용 부회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2015년 5월 최순실씨는 박 전 대통령에게 대기업의 돈을 받아 재단법인을 설립해 함께 운영하자고 제안한다. 박 전 대통령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에게 ‘삼성 등 대기업 10곳 출연을 받아 각각 300억원 규모인 문화와 체육 분야 재단을 설립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2015년 7월25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두 번째 독대를 앞두고 최순실씨는 두 가지를 주문한다. ‘정유라에 대한 지원을 이행해라.’ ‘장시호와 같이 설립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영재센터)에 후원금을 지원해달라.’ 박 전 대통령은 최씨의 요구를 이 부회장에게 전달한다. 박 전 대통령은 독대 자리에서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승마 관련 지원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도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한 것이냐. 삼성이 한화보다도 못하다. 승마 유망주를 해외 전지훈련도 보내고 좋은 말도 사줘야 하는데 삼성이 그걸 안 하고 있다’라고 이 부회장에게 말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은 영재센터 사업계획안을 건네며 ‘동계스포츠 메달리스트들이 설립한 단체인 영재센터에 돈을 지원하라. 제일기획 김재열 사장에게 지원하게 하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면담 직후 삼성 수뇌부에 ‘대통령이 원하는 사항을 모두 충실히 이행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삼성은 정유라씨 승마 훈련에 78억원을, 영재센터에도 16억2800만원을 지원했다.

 

 

 

 


이날 독대에서 박 전 대통령은 삼성의 민원도 챙겼다. 당시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발원지로 지목돼 여론의 비난을 샀다.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현 정부 임기 내에 삼성 경영권 승계가 해결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금번 메르스 사태가 삼성서울병원이 다시 한번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박근혜).’ 독대 사흘 후,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메르스 후속조치 관리계획에 삼성서울병원은 빠졌다. 그러다 특검 수사가 시작되자 보건복지부는 뒤늦게 움직였다. 지난해 12월26일 삼성서울병원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고, 과징금 806만원을 부과했다.

2016년 2월15일,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과 세 번째 독대를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정유라를 잘 지원해줘 고맙고 앞으로도 계속 잘 지원해달라’고 말했다. 삼성이 26억7000만원 상당의 마장마술용 말 비타나V와 라우싱1233을 정유라씨에게 사준 직후였다. 이 자리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현재 금융위원회에서 검토 중인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계획이 승인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관련 환경규제 완화 및 투자 유치를 위한 세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 바이오산업은 삼성이 이재용 체제를 준비하며 주력하는 분야다. 삼성 바이오로직스는 적자 기업임에도 2016년 11월 증권시장에 상장됐다.

2016년 5월 최순실씨는 에티오피아 순방길에 오르는 박 전 대통령에게 삼성에 감사의 뜻을 전해달라고 요청한다. 박 전 대통령은 국빈 방문 만찬장에서 사절단에 동행한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을 헤드테이블에 앉게 했다. 먼저 악수를 청한 박 전 대통령은 박 전 사장에게 ‘승마 등 지원을 해주어 감사하다.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최씨는 박 전 사장에게 ‘악수는 잘 하셨냐?’라고 직접 확인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최순실씨는 평소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은 공직에 추천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12년 정치 풍자 프로그램 〈여의도 텔레토비〉를 방송하고 2013년 영화 〈변호인〉을 제작한 CJ가 찍혔다. 최씨는 CJ를 콕 집어 좌파 성향이라고 비난했다. 2013년 7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조원동 전 경제수석을 불러 ‘이미경 CJ 부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이듬해 미국으로 떠났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취임 뒤 블랙리스트 작동이 본격화되었다. 그는 취임 직후인 2013년 8월21일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종북 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CJ 등 재벌들도 줄을 서고 있다.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9월30일 박 전 대통령도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 특히 롯데와 CJ 등 투자자가 협조하지 않아 문제다’라고 발언한다.

 

 

 

 

 


그 결과 2014년 4월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민간단체보조금 TF를 설립해 ‘좌파 성향’ 문화계 단체와 인사들을 임의로 지정해 지원에서 배제한다. 정부 정책 반대나 야당 인사 지지를 기준으로 ‘문제 예산 130건, 문제 단체 3000여 개, 좌편향 인사 8000여 명’이 선별된다. 또 문체부 산하 공모사업의 심사위원과 정부위원회 위원 중 ‘좌파 인사’를 골라낸다. 이를 바탕으로 작성된 ‘문제 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보고서는 김기춘 전 실장의 검토를 거쳐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된다.

이때부터 청와대 정무수석실→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문체부를 통해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적용된다. 문체부는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개인·단체를 정부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다. 신동철 당시 정무수석실 비서관은 새로 부임한 조윤선 정무수석에게 블랙리스트 업무를 이렇게 보고했다. ‘보조금 문제와 우파 지원 문제가 소통비서관실의 가장 큰 현안이다. 좌파 단체는 자생력이 강한 데 비해, 우파 단체는 정부 지원이 없으면 거의 유지를 못한다. 상부 지적에 따라 좌파 인사 등을 정부위원회나 지원에서 배제하도록 조치한다.’

블랙리스트 업무를 적극 수행하지 않은 문체부 고위 공무원은 해임당했다. 2014년 7월부터 10월까지 줄줄이 문체부를 떠나야 했다. 유진룡 장관 면직, 조현재 1차관 경질, 1급 최규학·김용삼·신용언 실장은 사표를 썼다. ‘성분불량자’로 찍힌 탓이었다.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실장은 유 전 장관 후임인 김종덕 당시 장관에게 이들의 사표를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청와대는 세월호와 관련된 움직임도 틀어막았다. 유진룡 전 장관에게 김기춘 전 실장은 ‘세월호 유족 편에서 정부를 비난했던 예술계와 학계 인사에 대한 정부 지원을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2014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가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결정하자 조윤선 당시 정무수석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이를 방해했다. 조 전 수석은 정관주 당시 비서관 등에게 ‘〈다이빙벨〉 상영관의 전 좌석 관람권을 일괄 매입해 시민들이 관람하지 못하게 하고, 폄하하는 관람평을 게시하도록 하라’고까지 지시했다. 〈다이빙벨〉을 상영한 다음 해에는 영화진흥위원회가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을 14억6000만원에서 8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삭감했다.

민간 인사 및 최순실 이권 사업 개입

이상화 KEB하나은행 프랑크푸르트 전 지점장은 최순실씨의 ‘독일 금고지기’로 통한다. 독일에서 근무하던 2015년 8월, 이 전 지점장은 최씨의 자산관리를 도왔다. 석 달 후 최씨는 하나은행 유럽 총괄법인사무소가 룩셈부르크에 생긴다는 소식을 접했다. 최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유럽 총괄법인을 프랑크푸르트로 옮기고 법인장으로 이상화를 임명해달라’고 요청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안종범 전 수석에게 지시를 내렸다. 안 전 수석은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정 전 부위원장은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에게 이를 전달했다. 인사 청탁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유럽 총괄법인 신설 계획 자체가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최순실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박 전 대통령에게 ‘이상화를 국내에서 해외업무를 총괄하는 본부장으로 임명시켜달라’고 요청했다. 박 전 대통령은 또 안 전 수석에게 지시했고 같은 방식으로 인사 청탁이 전달됐다. 하나은행은 이씨를 해외 총괄본부장 대신 삼성타운 지점장으로 임명했다. 그러자 최순실씨가 본부장 인사 청탁을 박 전 대통령에게 다시 했고, 결국 안 전 수석은 2016년 1월21일 김정태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다. ‘(내가) 언제 센터장 했다 나중에 본부장 승진시키라고 했습니까? 당장 승진시키세요. 무조건 빨리 하세요. 지금 이거 내 이득을 위해서 합니까.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갑니까.’ 결국 하나은행은 이틀 후 조직개편까지 하며 본부장급 자리를 두 개로 만들었다. 이상화씨는 글로벌영업 2본부장으로 임명됐다. 박 전 대통령은 은행 인사에 개입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를 했다.

게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 추천으로 삼성 출신인 유재경씨를 미얀마 대사에, 코트라 출신인 김인식씨를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이사장에 앉혔다. 외교부에서 올린 외교관 출신이 있었지만 이를 무시했다. 외교 경험이 전무한 ‘최순실 사람’을 임명한 것이다. 이들은 최씨 이권이 개입된 미얀마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위해 움직였다. 유재경 대사는 미얀마 현지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 등을 진행해 큰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최순실씨는 MITS라는 미얀마 개발 회사의 주식 15.3%를 차명으로 가졌다. 김인식 KOICA 이사장은 2016년 5~7월쯤 대통령 해외순방에 동행하면서 상황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이상화씨를 통해 최순실씨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비선 의료 및 대포폰 이용

커튼이 쳐진 카니발 승합차는 수시로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정식 출입 절차를 거치치 않고 관저로 향했다. 운전석에는 이영선 청와대 경호관, 커튼으로 가려진 뒷좌석에는 매번 다른 사람이 앉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전부터 삼성동 사저를 드나들던 ‘주사 아줌마’ ‘기치료 아줌마’다. 최순실씨가 박 전 대통령에게 소개한 무면허 의료업자였다. 무면허 의료행위는 의료법상 불법이다.

김영재·박채윤 부부도 이영선 경호관의 차를 타고 청와대 관저를 출입했다. 성형외과 김영재의원의 김영재 원장 또한 최순실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소개한 ‘비선 의료진’이었다. 김 원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2014년 5월 멍을 빼는 주사제인 히알라제 등을 놔주는 등 2013년 12월께부터 2016년 9월께까지 여러 차례 청와대에 들어갔다.

박 전 대통령은 김영재·박채윤 부부 사업체의 해외 진출도 챙겼다. 안종범 전 수석을 통해 중동·중국 진출뿐만 아니라 이 사업체 제품을 청와대 설 선물세트로 택하는 등 이권 사업을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최순실씨 또한 이임순 순천향대 산부인과 교수를 통해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에게 김영재·박채윤 부부 사업을 로비했다. 이임순 교수는 서창석 병원장에게 ‘(김영재·박채윤 사업인) 미용성형에 사용되는 실이 있는데 대통령께서 관심이 많은 제품이라고 하니 서울대병원 성형외과로 연결해주면 좋겠다’라며 박채윤씨를 소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포폰(차명 전화)을 사용했다. 이영선 청와대 경호관은 2013년 10월부터 최순실씨가 검찰에 긴급체포된 지난해 10월까지 대포폰을 모두 52대 개통했다. 지인이 운영하는 경기도 부천의 한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대포폰을 주기적으로 만들었다. 불법으로 만든 대포폰으로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와 2016년 4월18일부터 10월26일 사이에만 573번 통화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은 이영선 경호관의 대포폰으로 2016년께에는 박채윤씨와 통화하기도 했다.

이 경호관이 대포폰을 전달한 사람은 둘 외에도 ‘문고리 3인방’이라 불린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 및 윤전추 행정관 등이었다. 최측근 사이 연락은 대포폰을 이용했다. 대포폰은 개통뿐만 아니라 사용도 형사처벌 대상(전기통신사업법 제32조의 4 제1항 제1호)이다.

 

기자명 김은지·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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