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를 봤다. 가상의 원전 사고를 그린 이 영화는 꽤 흥미로웠다. 원전 폭발에서부터 피해자들의 처참한 모습,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들까지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원전 사고의 실상은 영화보다 훨씬 더 비참할 듯하다.

ⓒ시사IN 양한모

한국 정부는 원전을 증설할 계획이다. 원전은 전기 생산비용 측면에서 화력이나 수력발전보다 파격적으로 싸다. 원전 폐기는 ‘값싼 전기의 시대’가 끝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원전 폐기물(수백 년이 지나도 독성이 순화되지 않는다)을 영구적으로 저장해야 하는 비용과 위험성 때문에라도 ‘값싼 전기’를 무조건 옹호하기는 힘들다. 더욱이 원전 사고가 실제로 터질 때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피해 규모를 감안하면, 사고 가능성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좌시할 수 없다. 사회적·정치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다만 한국의 ‘공론장’이 그만큼 성숙해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치인 등 공론장의 주역이 ‘단기적 수익(정치적 인기)’에만 매달리는 구조가 정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전에 근본적 문제 제기를 했다가 ‘전기요금 대폭 인상’ 미수범으로 간주되면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이런 공론장의 구조 때문에 엉뚱한 정치적 약속들이 등장하게 된다. ‘복지 대폭 확대’를 주장하면서 그 재원인 증세에는 반대한다. 청년 고용도 늘리고 정년도 연장하겠다고 한다. 고소득 노동자들의 처우를 완벽히 보호하는 동시에 저소득 불안정 노동자의 처지를 대폭 개선하겠다는 호언장담도 등장한다. 누구의 지지도 잃기 싫은 모양이다. 예산 제약에 부딪히면 기득권(극소수 부유층과 대기업)의 세율을 크게 올리면 된다고 한다. 이렇게 걷을 수 있는 재원과 약속한 복지 예산 사이의 금액 차이는 거론하지 않는다. 한국의 보수 정당은 어려울 때마다 휴전선 북쪽으로 달려간다. 그들에게 북한은 ‘어머니의 품’이다. 마찬가지로 민주·진보 성향의 정당들에게 기득권은 ‘어머니의 품’이자 만병통치약이다.

개혁은 장기적으로 전체 시민의 이익을 겨냥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일부 집단의 이익을 다른 집단으로 이전시키는 것이 불가피할 경우가 많다. 원전이 정말 위험하다면 전기요금이 오르더라도 폐기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복지를 확대하겠다면 중산층의 세율도 높여야 한다. 새 정부는 단기적 인기가 아니라 용감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기 바란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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