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을 다친 김은지 기자가 목발을 짚고 텔레비전 앞으로 왔다. 전혜원·김연희 기자는 마감을 하다 화면을 응시했다. 3월10일 오전 11시21분,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김은지 기자는 화장지를 뽑았다. 전혜원·김연희 기자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모두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난해 9월 〈한겨레〉 1면에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김은지 기자가 처음 ‘안테나’를 세웠다. 김 기자는 박근혜 5촌 살인 사건, 국정원 댓글 사건 등 어려운 취재를 마다하지 않는 정통파다. 김연희·전혜원·신한슬·김동인 기자도 투입되어 자연스럽게 최순실 TF팀이 가동되었다. 하지만 취재원들은 이미 숨어버렸거나 취재를 거부했다. 뻗치기와 낙종의 연속. ‘취재-마감’의 쳇바퀴는 멈추지 않았다.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시사IN〉 기자들의 독종 취재는 법정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13일 안종범 전 수석과 정동춘 전 K스포츠재단 이사장 사이 통화 녹음이 법정에서 재생되었다. “〈시사IN〉이 굉장히 악의적으로 보도한다(안종범).” 악의적인 보도라면, 빼놓을 수 없는 ‘악마 기자’ 주진우 기자가 ‘범죄정보센터’ 노릇을 했다. 주 기자가 독일까지 오가며 취재한 정보를 후배들에게 전달했다. 그런 팀워크 끝에 내리 3주 특종을 커버스토리로 올릴 수 있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시사IN〉이 보도한 특종은 박근혜·최순실과 이재용 부회장의 직거래 의혹이었다. 삼성 기사 삭제 사건을 발단으로 창간한 〈시사IN〉이었기에 감회가 남달랐다.


그렇게 기분 좋은 특종을 연속 보도할 무렵, 현장 기자를 오래 하다 대학으로 옮긴 한 교수가 물었다. “〈시사IN〉은 왜 TV조선이 7월에 보도할 때 주목하지 않았나요?” 뜨끔했다. 솔직히 말하면, 난 TV조선 보도를 신뢰하지 않았다. 진영 언론을 벗어나자고 말로만 떠들었을 뿐, 그 중요한 순간에 진영 논리에 갇힌 것이다. 늦은 후회이고 반성이다. 감시견 노릇에 좌우가 없어야 한다.

대통령이 파면된 날 이 칼럼을 쓰면서 독자들에게 약속한다. 대통령 한 사람의 파면으로 끝나지 않게 감시견 노릇을 철저히 하겠다. 어느 정당이 좋고 나쁜지 성실하고 꼼꼼하게 ‘팩트 체크’를 할 것이며,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이 볼 수 있는 좋은 잡지를 만들겠다. 이번 호는 그 약속을 실천하는 첫 호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통령 파면을 다뤘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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