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장이나 건설 현장, 공공부문 등에서 임시직 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틈날 때마다 현장에서 일하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한국 노동자들이 현격한 ‘분단’ 상태에 있음을 몸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대기업 정규직 및 공공부문’과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사이에 존재하는 임금, 복지, 노동강도, 노동조건 측면의 격차가 너무 심하다. 심지어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추세다. 현장에서 만난 두 집단 가운데 밑의 계층을 나는 ‘하층 노동자’라고 부른다.
20대 막노동 청년
20대 후반이던 그 청년은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5년 여름, 그는 경주의 한 건설 현장에서 나와 함께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전엔 경북 왜관시에 있는 현대자동차 하청 부품공장에 다녔다. 하루 10시간씩 힘든 일을 하면 월 220만원 정도 받았다. 기업 복지는 전무했다. “비전이 보이지 않아서” 사직한 그는 중소기업 노동자와 ‘노가다(막노동)’ 생활을 전전하며 생계를 잇고 있었다.
청년에게 소원이 있다면, 현대자동차의 정직원이 되는 것이었다. 매우 높은 연봉에 일도 편하고 해고될 위험 역시 없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에 다니는 친구의 어머니에게 취업을 부탁했다가 실패한 적도 있었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지인(知人)인 현대차 관리직 간부에게 부탁해서 아들을 생산직 직영(정규직)으로 취업시켰어요. 친구는 연봉 많이 받고 잘살아요. ‘백’이 없으면 현대차 같은 대기업 직영으로 들어가기 힘든 것 같아요. 노조 간부에게 돈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그러나 들어가기만 하면 팔자 고치고 본전 이상을 뽑아요. 울산 사람들은 현대차 직영 노동자들을 귀족이라고 합니다. 자기들만 잘살려 한다고 욕도 하지요. 돈 없고 ‘백’ 없어서 대기업 못 다니면 일만 죽도록 하고 서러워요. 저는 ‘노가다’ 조금만 더 하다가 다시 중소기업 쪽으로 옮기려고요. 갈 데가 없어요.”
스스로 비슷하다고 생각해온 친구와 자신의 현재 처지가 하늘과 땅 차이가 되어버린 것에 엄청난 서러움을 느끼는 듯했다. 단지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렇게 말했더니, 청년은 “맞아요. 어디에 소속되느냐, 어느 직장에 다니느냐에 따라 신분과 인생이 결정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대기업 정규직의 고임금과 안정된 일자리가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현실이 서글펐다. 청년기에 이미 하층 노동자라는 자신의 ‘신분’을 자각해버린 그로서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높고 튼튼한 성채 안에 있는 것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40대 여성 공무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40대 후반 여성 6급 지방공무원은 “사는 게 괜찮아요. 일도 편해요”라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중반, 그녀와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20대에 공직으로 들어선 그녀는 당시만 해도 공무원의 지위가 요즘처럼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아는, 대기업 정규직이나 공공부문 소속이 아닌 40대 여성들이 받는 월급은 대충 160만원 정도였다. 그래서 여성 공무원에게 연봉을 물어보았다.
“마트나 편의점 등에서 일하는 제 친구들의 월급은 정말 적더군요. 저는 호강하는 셈입니다. 연봉은 6000만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저 같은 공무원보다는 교사들이 조금 더 많이 받아요. 저만큼 장기근속했다면 세전 기준으로 7000만원 넘을걸요. 정년퇴직하면 공무원 연금으로 월 200만원 이상 나와요. 주변의 공무원들 가운데는 더 많은 돈을 받았으면 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만족합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관공서나 교육기관 등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기간제) 노동자들도 불만이 큰 계층이다. 지방의 한 시청에서 일하는 20대 비정규직(기간제 계약직) 여성 노동자는 정규직 공무원들과 자신이 같은 업무를 하고 있는데도 처우가 너무 달라서 비애를 느낀다고 말했다.
“시청 사무실에서 공무원과 기간제 계약직이 함께 일해요. 업무는 같아요. 오히려 계약직이 일을 더 많이 하지요. 공무원들은 근무시간에 밖에 나가 사적 볼일도 보고, 피곤하면 휴게실에 가서 한두 시간 쉬다가 들어오지만, 우리는 자리에 늘 붙어 있어야 해요.”
계약직들은 ‘잘릴까 봐’ 필사적으로 일한다.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들의 여유 있는 업무 태도가 고깝게 보일 수밖에 없다. 공무원은 월급제인 반면 계약직은 일급제다. 그녀가 매월 받는 돈은 120만원 정도. 더욱이 명절휴가비도 성과상여금도 없다. 그녀는 “차별이 너무 심해요. 우리는 종이에요”라고 말했다. “공공부문에 계시니 ‘관노비’라고 할 수 있겠군요”라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네, 맞아요! 기간제는 관노비예요. 우리나라엔 관노비 천지예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만 양반으로 대우받지요.”
최근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정규직과 2차 협력사 사내하청 노동자 간의 연봉 격차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무려 5배였다. 정규직만 누리는 복지까지 포함하면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동일하거나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하는데, 심지어 ‘하층 노동자’들이 더욱 힘든 일을 맡는데도 단지 소속에 따라 이토록 처우가 다르다. 하층 노동자 수탈에 기반한 ‘노동신분제’ 사회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설사 고용 형태의 다변화 및 비정규직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해도 심각한 문제다.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대기업, 대학, 은행, 병원, 공기업 등 집합적 대형 사업장들이 외주화, 용역화, 간접고용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노동 유연화’로 하층 노동자를 양산해왔다. 그러나 다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국가와 대자본(집합적 대형 사업장), 그리고 정규직 노조가 함께 만든 ‘기득권 연합’이 지금 체제의 형성에 톡톡히 기여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은행 및 공기업의 정규직, 공무원, 교수 등 ‘노동신분제’ 상위 계층이 누리는 고임금과 직장 복지 혜택엔 비정규직 하층 노동자들의 희생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 ‘기득권 연합’에 속하는 계층의 고임금과 안정된 일자리를 감안하면, 한국은 ‘신자유주의 사회’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오직 청년,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등 ‘힘없는 자’들에게만 일면적으로 관철된다. 국민의 99%가 아니라 하위 80% 계층을 수탈하는 ‘정규직 자본주의’인 것이다.
올해 대선을 통해 수립될 새 정부는 기형적인 노동시장의 불균형과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같은 ‘노동자 내부의 격차’에 국가·자본과 함께 책임을 져야 할 공공부문 및 대기업 노조 역시 현실을 직시하고 기득권 양보에 나서는 사회연대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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