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28일 열린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신의 노래’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수상한 그녀는 무대에 오른 뒤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혔다. “친구가 돈, 명예, 재미 세 가지 중에 두 가지 이상 충족되지 않으면 가지 말라고 했는데 시상식이 재미도 없고 상금이 없다. 명예는 정말 감사하다.”

그러면서 자신의 수입을 아주 구체적으로 얘기해줬다. “지난달 수입이 42만원이더라. 음원 수입이 아니라 전체 수입이다. 이번 달엔 고맙게도 96만원이다. 그래서 여기서 상금을 주면 좋겠는데 상금이 없어서 지금 이 트로피를 팔아야겠다.” 바로 이 뮤지션, 이랑은 “월세가 50만원이므로 50만원부터 경매 시작한다”라고 말했고, 곧 이 트로피는 50만원에 낙찰되었다. 이후 사람들의 반응이 폭발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참고로 이 트로피를 산 주인공은 이랑의 소속사 사장이었다. 현실 풍자를 하기 위해 기획된, 일종의 퍼포먼스였다는 얘기다.

피드백은 폭발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했다. 대부분 의견을 어떻게든 존중할 수 있지만, 그 와중에 다음과 같은 글이 보여 잘 유지해왔던 내 평정심이 순식간에 흔들렸다. “예술이란 원래 가난을 각오해야 하며, 가난 속에서 훌륭한 예술이 만들어진다.”
 

ⓒ연합뉴스가수 이랑은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수상한 트로피를 50만원에 판매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아, 저 지겨운 레퍼토리! 대체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 것일까. 정말이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끝내주는 예술작품을 창조한 내추럴 본 갑부 리스트’로 이 지면 전체를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양심적인 필자이기에 그런 비겁한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대신 저 짜증나기 그지없는, 가난과 예술을 병치하는 언어가 얼마나 비겁한 태도인지 말하고자 한다.

비단 예술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정신적 질병은 무엇일까?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내 경우, 그건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에 있다고 확신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편하고, 그게 쉽기 때문이다. 비겁하고 안일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굶주림은 예술을 돕지 않는다”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는 것에는 시간이 들고 품이 든다. 게다가 문제를 캐내는 과정에서 온갖 잘못된 관행이 밝혀지기 마련이다. 몇몇 정치인과 기업가가 괜히 “요즘 청년들은 ‘노오력’이 부족하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는 게 아니다. 이렇게 해야만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낸 문제들을 별다른 ‘노오력’ 없이도 은폐해버릴 수 있는 까닭이다. 내 영혼의 파트너 김세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가 외면할 때 그들은 모면한다.

대한민국의 음악 시장이 기형적인 수익 분배 구조로 성장했다는 것은,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보면 알 수 있는 엄정한 ‘팩트’다. 이거 조금 공부하기 귀찮아서 “가난은 예술의 숙명” 따위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도처에 널려 있다. 저열하고 추악한 짓이다.

“굶주림은 예술을 돕지 않는다. 그저 방해할 뿐이다. 인간의 영혼은 위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찌 됐든 인간은 한 푼짜리 막대사탕보다는 고급 비프스테이크를 먹고 반 리터들이 위스키를 마신 다음에야 훨씬 더 글을 잘 쓸 수 있다. 궁핍한 예술가라는 신화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소설가 찰스 부코스키의 말이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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