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해야 할까. 어디다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던 출판계다. 큰 출판사든 작은 출판사든, 각자 피해를 떠안고 사태를 관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새해 벽두인 1월2일, 출판계를 강타한 송인서적 부도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2월16일 현재 송인서적 채권단에 따르면 확실한 피해액은 부도 어음 108억원, 송인서적 은행 부채 59억원이다. 나머지 채권 등이 480억원 정도로 파악되지만 유동적이다. 출판사별 재고 물량 등에 따라 최종 피해 규모는 달라진다. 예컨대 부산에서 지역 출판을 이끌어온 산지니의 경우 이례적으로 자사의 피해액을 공개했는데, 그 규모가 어음 4000만원, 책 재고 8500만원에 달했다.

송인서적이 끝내 청산될 경우 각 출판사의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송인서적에 물려 있는 책이 휴짓조각이 될 뿐 아니라, 다시 새로운 도매상을 통해 책을 유통시키는 데 비용이 또 들기 때문이다. 송인서적과 거래해온 출판사는 2000여 곳, 송인서적과 거래를 일원화한 곳도 500여 곳에 이른다.

송인서적의 앞날이 불투명해지면서 출판계에서는 이런저런 오해와 억측도 생겨나고 있다. 송인서적 부도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간다. 출판계에서 논란이 되는 몇몇 대목을 정리했다.

ⓒ연합뉴스1월2일 대형 출판 도매상인 송인서적이 1차 부도를 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출판업계가 술렁였다. 위는 송인서적 하역장 모습.

송인서적은 어떤 곳이었나

송인서적은 출판 도매상이다. 보통 시장에서 도매상은 생산업체에서 물건을 사들여 시장에 내다 판다. 생산업체로부터 얼마를 샀든 물건을 처리하는 건 온전히 도매상의 몫이다. ‘반품’이 가능한 분야도 있지만, 물건이 팔리지 않는 리스크도 대체로 도매상이 떠안는다.

출판업계에서 도매상의 구실은 조금 다르다. 도매상이 생산업체(출판사)로부터 물건(책)을 사들여 시장(서점)에 파는 구조는 똑같다. 문제는 이 책이 시장에서 팔릴지 안 팔릴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결국 출판사와 도매상은 ‘아직 한 부도 팔리지 않은 책’을 두고 가상의 거래 장부를 기록하게 된다. A라는 책이 나왔을 때 도매상이 ‘판매 예상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초기 수금액이 달라진다. 여기에서 문제가 출발한다.

단순 도매상은 많이 팔릴 것 같은 책만 골라 가져가면 그만이다. 출판계는 다르다. ‘많이 안 팔릴 것 같아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책’도 유통시키기로 암묵적 합의가 되어 있다. 이런 책을 서점에 더 많이 진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송인서적의 구실이었다. 이른바 ‘위탁 거래’ 구조다. 송인서점을 단순한 도매상으로 여기는 건 2% 부족한 진단이다.

각 출판사와 송인서적의 관계는 좋게 말해서 끈끈하고, 나쁘게 말하면 불투명했다. 업계에서는 송인서적이 ‘괜찮은 책’의 가치를 더 후하게 쳐주는 편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송인서적 부도 사태를 놓고 출판계가 저마다 조금씩 다른 소리를 내는 이유다.

어음 거래가 문제였나

부도 사태 이후 가장 많이 나오는 말 가운데 하나가 어음 관행이 문제였다는 지적이다. 송인서적 채권단 관계자에 따르면 몇십만원짜리 어음은 물론이고 6~7개월짜리 어음도 존재했다고 한다. 출판사는 송인서적으로부터 이런 ‘문방구 어음’을 받아 인쇄소 등 다른 거래처에 보냈다. 송인서적 부도 이후 연쇄 부도 사태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음 자체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아직 팔리지 않은 책을 놓고 거래를 하다 보니 어음 내역이 주먹구구라는 점이다. 같은 값의 책을 납품해도 누구에게는 1000만원짜리, 누구에게는 900만원짜리 어음을 주었다. 힘들다고 읍소하면 다만 얼마라도 더 쳐주는 식이다. 나중에 도매상이 정산해주기 전까지는 어떤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출판사도 모른다.

이런 구조가 쌓이다 보면 전체 회계가 엉망이 된다. 출판사에 준 돈과 실제 서점에서 수금한 돈이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손실 파악이 예측 불가능해진다. 출판사는 물론 도매상에게도 불합리하다. 과도한 요구를 계속하는 거래처와는 관계를 끊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송인서적의 부실 경영 뒤에 이런 배경이 있었다. 출판계에서 어음의 역사는 길다. 정확히 언제부터 어음을 돌리기 시작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1980년대 초반 김홍신의 〈인간시장〉이 출판 역사상 처음으로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어음 거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반품 없는 현금 거래’가 이뤄지는 등 지금과는 사뭇 다른 구조였다.

ⓒ연합뉴스2월7일 서울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송인서적 출판사 채권단 전체회의’가 열렸다.

이후 출판시장이 활황을 맞으면서 이른바 ‘밀어내기(출판사가 잘 팔리는 책을 도매상과 서점에 대량으로 떠넘기는 것)’ 영업이 이루어졌다. 그러자 도매상은 안전판으로 출판사에 어음을 끊어주게 된다. 출판 영업으로 잔뼈가 굵은 한 대형 출판사 간부는 “1990년을 기점으로 어음 거래가 본격화되었다. 출판시장 활황의 그늘이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온 관행이 오늘날 사태를 키웠다”라고 말했다.

대형 출판사는 피해를 당하지 않았나

서울 마포구의 한 다세대주택에 입주한 한 사무실은 송인서적 부도로 인한 피해가 억대에 달한다. 1인 출판사 세 곳이 공동운영하는 곳이다. 이 중 한 곳은 지난해 창업했음에도 2000만원이나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하반기 낸 책이 화제가 되면서 주문이 몰렸기 때문이다. 상당수 1인 출판사가 그렇듯 이곳도 송인서적 한 곳으로 거래처를 일원화한 게 화를 불렀다.

이처럼 도매상을 송인서적으로 일원화해온 작은 출판사의 피해는 더욱 크다. 당장 자신이 만든 책을 서점에 보낼 창구가 사라져버렸다. 송인서적과 함께 출판 도매업을 양분해온 북센이 이 틈을 타 신규 거래 업체에 기존과 다른 계약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작은 출판사와 달리 대형 출판사는 이번 사태를 피해 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유는 이렇다. 베스트셀러를 보유한 몇몇 출판사는 송인서적과 어음 거래를 하지 않았다. 현금으로 거래했다. 송인서적에 담보를 잡히는 조건으로 현금 거래를 트기도 했다. 현금을 주면 ‘공급률’을 낮춰주기도 했다.

‘공급률’은 출판사가 송인서적 같은 도매상(서점)에 책을 팔 때 얼마에 파느냐를 나타내는 수치다. 도매상은 보통 정가의 55~65% 정도에 책을 가져와 서점에 70% 정도 가격을 받고 공급한다. 1만원짜리 책을 6000원 정도에 사서 7000원 정도에 되판다는 이야기다. 공급률은 업계 비밀이고 출판사마다 다 다르다. 여기에서 출판사와 도매상(서점) 간에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지난해에는 문학동네가 자사 문학서 공급률을 60%에서 63%로 올리고, 대신 인문서와 학술서는 각각 70%에서 68%, 75%에서 73%로 내리겠다고 선언했다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대형 출판사는 공급률, 현금 거래 등 여러 조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작은 출판사는 그 반대다. 갑을 관계가 서로 혼재되어 있는 구조에서, 온라인 서점을 제외하면 그나마 대형 출판사가 갑에 가까웠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고 대형 출판사가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실제 피해 규모를 파악해보면 대형 출판사의 피해액이 가장 크다는 게 채권단의 이야기다. 자금 융통 등에 여력이 있다는 점에서 낫다 뿐이지, 피해 규모는 작지 않았다.

가장 힘든 곳은 중간 규모 출판사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당장 사업체 운영이 어려울 지경으로 타격을 입은 곳이 적지 않음에도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업계의 피해 구제책이 5인 이하 출판사에 집중되면서 오히려 중소 규모 출판사가 피해 사각지대에 들어간 듯하다”라고 말했다.

도서정가제가 송인서적 부도 원인?

송인서적 사태의 불똥이 난데없이 도서정가제로 튀는 형국이다. 도서정가제로 책값 할인율이 낮아지면서 독자들이 책을 외면해 송인서적이 부도에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정가제 시행 이후 각 서점의 공공도서관 납품 경쟁 때 최저가 낙찰 관행이 사라지면서 유통업계가 혼탁해졌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최근 몇몇 언론이 이런 유의 기사를 내보내며 정가제를 비판하고 나섰다.

ⓒ시사IN 신선영도서정가제가 송인서적 부도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왔지만 도서 판매량이 줄었다는 데이터는 없다.

그런데 실제로 정가제 시행 이후 도서 판매량이 줄었다는 데이터는 없다. 오프라인 서점의 경우 제자리걸음이고, 온라인 서점은 판매량과 판매금액이 모두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홈쇼핑 등에서 대폭 할인 판매하던 전집류 정도가 도서정가제의 직격탄을 맞았으리라 파악한다. 책을 살 사람은 정가제 이후에도 꾸준히 책을 구매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도서정가제는 ‘상생’의 취지로 만들어졌다. 출판사에 적정 제작비를 보장해주고, 온라인 서점과 할인 경쟁으로 도태되는 지역 서점의 경쟁력을 살리기 위한 조치였다. 최근 특색 있는 작은 서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 역시 도서정가제와 무관치 않다. 온라인 서점과 동네 서점의 가격 차가 좁혀지면서 소비자들이 작은 서점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게 출판계의 분석이다. 한 출판 유통업체 관계자는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전집류 제작 관계자들의 불만이 꾸준히 쌓여왔다. 최근 송인서적 부도를 계기로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송인서적 회생은 가능한가

송인서적 부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미 한 번 도산했다. 당시 출판사들은 채권이 휴짓조각이 되는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논란 끝에 송인서적 스스로 내놓은 구제안을 지지했다.

비극은 19년 만에 되풀이됐다. 이번엔 양상이 다르다. 출판인회의를 중심으로 출판계 전체가 ‘질서 있는 회생’을 다짐하는 분위기다. 과거 부도 때는 한 푼이라도 건지기 위해 도매상으로 몰려가 자기 책을 빼오기 바빴다. 사태 초기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출판인회의는 실사 과정에서 회생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현금 흐름이나 수익률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는 게 실사에 참여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어음을 할인해주거나 직원과 친인척에게 15% 고리로 돈을 빌려 비용을 충당하는 등 전근대적 경영 방침을 개선하면 기사회생할 수 있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물론 여기에는 출판계의 ‘적극적인 판단’도 한몫했다. 송인서적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곳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실제 회생 과정은 1998년 이상으로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각 출판사가 보유한 채권 80% 정도는 탕감해줘야 인수자가 움직이리라는 소리도 나온다. 출판계로서는 다시 한번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다만 출판계 전체의 공감대가 있다. 송인서적 하나를 살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복잡하게 엉켜 있는 서지 정보, 판매 정보, 물류 시스템 등 출판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이참에 바로잡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공교롭게도 2월16일 문체부가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송인서적 사태를 의식해서인지 각기 따로 노는 생산·유통 시스템을 통합하겠다는 것을 첫 번째 과제로 삼았다. 출판기금 확충 등도 내세웠다. 박효상 한국출판인회의 유통위원장은 “생산·유통 시스템 통합은 그동안 출판계에서 꾸준히 요구해왔던 내용이다”라며 조건부 환영의 뜻을 비쳤다.

문제는 실천이다. 과거에도 출판 진흥 계획안이 나왔지만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거의 없었다. 박근혜 게이트로 마비 상태가 된 문체부가 얼마나 의지를 보일지도 미지수다. ‘사후약방문’이라도 제대로 써내지 못한다면 출판계가 어떤 도매상 하나를 살릴 이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