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신해철은 1988년에 대학가요제로 데뷔해서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 당시 그가 쓰고 노래한 곡 ‘그대에게’는 이후 대형 히트는 물론 각종 축제 때마다 울려 퍼지는 ‘올-타임 클래식’이 되었다. 이후 당대의 아이돌 가수로 엄청난 인기를 모으더니, 돌연 넥스트(N.EX.T)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해 충격을 던져줬다.
넥스트를 통해 그는 여러 장의 수작 혹은 걸작을 발표했다. 시간이라는 운명론적 한계를 뛰어넘어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그의 노래들은 부지기수다. 혹시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라는 작품을 최근에 봤는가.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난 후 나는 곧장 그의 곡들 중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Here I Stand For You)’를 떠올렸다. 그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고, 그와 잠깐이라도 함께 일한 것이 축복처럼 느껴졌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라’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기에 조금의 까임도 감당하지 못하는 인물들을 우리는 수도 없이 보고 또 보아왔다. 비단 정치판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세상살이라는 게 풍파를 이겨내는 것과 거의 동의어일 수도 있을 것인데, 자신에게 붙여진 별명조차 오독하는 그에게 ‘스스로 작아지라’니, 이건 ‘페이스북 잘난 척 대마왕’ 배순탁에게 능력을 몇 갑자나 업그레이드해서 갑자기 배철수가 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정치를 한다는 것은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민물장어와도 같은 삶을 마땅히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치는 수십 년간 정확히 그 반대에 위치해왔다. 누릴 것은 다 누렸고, 그러다가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솜방망이 처벌 정도로 모든 것을 무마한 뒤 다시 누리고 또 누렸다.
다음 대선? 다음 총선? 글쎄, 솔직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큰 희망 따위, 예전에 접어버렸다. 광장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을 통해 작은 희망 하나, 가끔씩 발견해왔다는 게 위로라면 위로일 수도 있겠다. 촛불들이 모이고 모여 언젠가는 ‘민물장어의 꿈’을 꾸는 정치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을까. ‘기름장어의 꿈’이 허망하게 흩어지는 것을 보며, ‘어쩌면’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에 조심스럽게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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