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재담과 기행으로 국민들의 병신년을 훈훈하게 매조져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반 전 사무총장은 2월1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제가 주도해 정치 교체를 이루고 국가 대통합을 이루겠다는 순수한 뜻을 접겠다”라고 말했다.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일부 정치인들의 이기주의적 태도” 때문이라고 밝혔다. 1월12일 귀국한 지 3주 만이었다.

ⓒ연합뉴스

반 전 총장은 그간 수차례 본인의 ‘순수’함을 입증한 바 있다. 청정 알프스 산맥의 만년설로 만든 물 에비앙을 선호한다. 지하철 승차권 발매기에 1만원권 지폐 두 장을 함께 욱여넣을 정도로 문명의 이기에 오염되지 않았다. 봉사활동 중 노인에게 죽을 떠먹이면서 턱받이를 찬 것도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백옥 같은 몸에 지저분한 음식이라도 튀면 누가 책임지겠는가? 음해를 일삼아온 무리들은 지금이라도 회개할 일이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국산 구정물을 수시로 음용해서인지 참으로 악랄하다. 한 트위터리안은 맹랑하게도 “요즘 늙은이들은 끈기가 없어”라고 평했다. “최단기 퇴물” “열쩡이 부족한 듯” “노오력을 더 했어야징! 세계로 나아가서 막막 노오오오력을 했어야징!”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을 두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자문과 협력을 구하고 조언을 부탁하는 등 국가에 기여될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라고 말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멕이는 거다. 일 없으면 나와서 ‘볼란티어(volunteer·자원봉사)’나 하라는 것”이라는 댓글이 적혔다.

끈기 있게 노오력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박사모(사진)다. 그런데 이들의 ‘볼란티어’는 꽤 험난해 보인다. 한 박사모 회원은 “청와대 가는 길에 가방을 뒤져서 태극기를 빼앗아갔다”라고 썼다. 다른 회원은 “헌법재판소 가는 길에 좌파들의 미행이 있었다. 서울 지하철 안국역만 통과할까 봐 경로 바꿔가면서 간신히 도착했다”라고 토로했다.

노익장들의 상상 활극을 두고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헬조선에서 고생하지 마시고 구렉시트(Gumi+Exit)로 독립하세요”라는 응원글이 올라왔다. 지하철이 안국역에 서지 않을까 봐 발을 동동 구르는 순수한 어르신이 보이면 슬쩍 귀엣말을 해주자. “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세워줄 거예요.”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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