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은 “일하는 엄마는 아이한테 늘 죄인이다”라며 미안함을 보였다. 가끔은 “잘 챙기지 못해 죄송하다”며 내게 할 필요가 없는 사과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퇴근 후 시간을 쪼개 학원 상담에 응하는 것만 해도 부모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아이가 일상의 반을 학교나 학원에서 보내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책임 역시 선생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다. 나는 엄마들의 죄책감에 공감하지 못했고, 단지 아이에게 신경 좀 써달라는 의례적인 당부로 여기곤 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얼마 전 한 아이가 자신의 엄마가 ‘엄마 노릇’을 하는 게 불편하다고 상담을 요청했다.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할머니 손에 자란 아이였다. “고등학교 오기 전까지 저한테는 할머니가 엄마고, 아빠고, 전부였어요. 엄마는 가끔 얼굴 보는 사람….” “아빠는?” “아빠는 몰라요.” 그런데 대학 입시를 앞두고 할머니가 양육에서 손을 떼고, 엄마가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아이는 가뜩이나 수험 생활에 큰 압박을 받고 있는데, 자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고 생각한 엄마까지 나서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제 와서 저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지금껏 제가 뭘 하든 관심 한번 주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성적을 물어보고, 평가하고. 낳았다고 다 엄만가? 내 엄마는 할머닌데.”

ⓒ김보경 그림

누구도 아이를 방치한 적은 없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어머니는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아이에게 집중할 수 없었을 뿐이다.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부모의 빈자리는 할머니가 대신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다만 아이가 입시 전쟁에 본격 들어서면서 부모는 더 이상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중3 때 지망 학교를 쓰잖아요. 엄마가 어디어디 쓰라고 하니까 좀 황당했죠. 자기가 뭔데 갑자기….” 부모는 여력을 다해 자녀 입시 문제를 신경 쓰기로 각오했을 터였다. 그러나 부모의 노력은 아이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아무에게나 쉽게 ‘죄송해하지’ 않기를

비슷한 사례가 종종 있다. 일하느라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는 부모, 뒤늦게 학업에 매진하느라 아이를 다른 이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부모 등 열심히 살기 위해 발생하는 양육 공백은 피할 수 없다. 일을 원하는 시간에만 할 수 없는 사정이나 여성의 경력 단절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 부모가 해결책을 가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사이 아이의 마음은 닫혀간다. 아이가 10여 년간 쌓아온 원망은 체념으로 바뀌어간다. “일보다 나를 더 소중히 여기길 바랐지만, 엄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그걸 바라지 않는데 이제 와서 왜 내 인생에 끼어드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계속 나한테 관심을 안 가지면 될 텐데 꼭 문제를 만든다.”

아이에게 그런 부모를 이해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이는 늘 부모를 이해하고, 섭섭함을 삭이며 버텨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제 나름대로 쌓아올린 논리의 벽은 견고했다. 유사한 갈등을 겪던 어떤 학부모는 “너 학원비며 용돈이 다 어디서 나온 것이냐?”라고 호통을 쳤지만, 아이가 “언제 내가 필요하다고 했어? 필요 없다”며 크게 반발해 머리가 띵했다고 토로했다. 한 여학생은 회사에 나가는 엄마를 향해 “나는 절대 일하는 엄마가 되지 않을 거야”라며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그 친구에게 차근히 상황을 설명하고 “너 역시 일하는 여성이 될 것 아니냐?” 물으니, “이런 사회에 태어난 엄마가 안쓰럽지만 나도 불쌍하기 때문에 이해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말문이 막혔다. 자신에게 헌신하지 않은 이에게는 ‘엄마’ 칭호를 내주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이런 결론까지 도달했을지 짐작이 되어 애잔했다.

아이의 성장에 부모의 희생과 헌신을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을까.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가 결핍을 느끼지 않을 정도면 되는 것일까? 모두가 대치동 학부모처럼 아이 입시를 전담하기 위해 이사를 하거나 엄마가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또한 부모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다. 제 삶의 위치를 버리고 남들이 말하는 평균적인 양태를 따라갈 수는 없다.

아이도 엄마도 각자의 트랙을 달리는 것이 잘못이 아님을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서로 납득했으면 한다. 가족 모두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일하는 엄마들이 아무에게나 쉽게 ‘죄송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