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치는 물론 외치에까지 관여할 수 있는 백악관 선임고문에 내정된 쿠슈너가 난제 중 난제로 꼽히는 중동 평화 문제에 적극 관여할 뜻을 보이면서 워싱턴 외교가의 우려가 자못 크다.

쿠슈너는 정통 유대인 가문 출신이다. 그가 이스라엘의 명운이 걸려 있는 중동 평화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쿠슈너의 생각과 행동이 친이스라엘 일변도로 흐를 경우 자칫 역대 미국 행정부가 유지해온 중동 정책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 팔레스타인 측이 이미 깊은 우려를 표시한 가운데 론 더머 미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쿠슈너가 이스라엘의 안보와 미래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며 기대감을 공개적으로 표출했다.

쿠슈너는 2009년 결혼에 앞서 아내 이방카를 유대교로 개종시킬 만큼 정통 유대교인이다. 그의 부친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 여론에도 이스라엘이 추진하는 유대인 정착촌 건설의 강력한 후원자다.

ⓒGPO도널드 트럼프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오른쪽).
더욱이 쿠슈너는 중동 관계자들에게는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다.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고위 인사들마저 최근 들어서야 ‘쿠슈너 탐구’에 골몰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오랜 보좌관인 도레 골드, 미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지낸 살라이 메리도르, 네타냐후 총리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야코브 아미드로르 등도 쿠슈너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

그런데도 쿠슈너는 대선 유세 시절 미국 내 친이스라엘 인사들과 트럼프 사이 가교 구실을 맡았다. 트럼프가 지난해 9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와 회동한 것도 실은 쿠슈너의 작품이었다. 지난 연말 그의 부모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각기 영유권을 주장하는 예루살렘을 방문해 의료센터 부지용으로 거액을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고질적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 분쟁을 종식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통한 중동 평화 해법을 고수해왔다. 그러던 중 오바마 행정부와 이스라엘 정부 사이에 심각한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다. 이런 예민한 문제에 쿠슈너가 아직 명확한 견해를 표출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의 강력한 천거로 차기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에 지명된 데이비드 프리드먼은 기존 미국 정부의 기조와 달리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 반대와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공개적으로 주창해온 인물이다. 이스라엘 처지에서는 강력한 우군을 얻은 셈이다. 팔레스타인 측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고 유사시 유혈 분쟁이 재연될 수도 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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