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 (주진우·차형석·천관율·김은지·김동인·전혜원·김연희·신한슬 기자)

 

〈시사IN〉이 입수한 400쪽 가까이 되는,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 ‘축구공’이라는 단어가 두 번 등장한다. 안 전 수석은 업무수첩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썼는데, 앞쪽부터는 시간 순서대로 썼다. 같은 수첩에 뒤쪽부터 역순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따로 적었다. 박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적은 2016년 2월26일 메모를 보면, VIP가 지시하는 1번 안건은 축구공이다(아래 사진). 

 

축구공 제작과 관련된 박근혜 대통령 지시 사항을 기록한 2016년 2월16일의 안종범 전 수석 메모.


앞쪽부터 쓴 같은 날짜의 메모에도 축구공이 나온다. ‘2-26-16 부영 이중근 회장.’ 2016년 2월26일 안 전 수석은 이중근 부영 회장과 정현식 K스포츠재단 당시 사무총장 등을 만나 K스포츠재단 사업 지원을 논의했다. 그 만남 내용을 적은 메모를 보면, ‘1. 에티오피아’ 항목의 ‘K-sports’ 옆에는 ‘축구공 3만 개’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축구공 3만 개는 최순실씨가 관여한 K스포츠재단의 아이디어였다. K스포츠재단 한 관계자는 “최순실 회장이 ‘대통령 아프리카 순방이 있는데 그때 뭐 할 거 없냐’고 물어왔다. 2016년 2월 초쯤 최순실 회장에게 축구공 3만 개를 전달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보고가 올라갔다”라고 말했다. 〈시사IN〉이 입수한 ‘아프리카 스포츠용품 후원’이라는 K스포츠재단 내부 문건을 보면,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웃음을 줄 수 있는 첫걸음”으로 에티오피아·우간다·케냐 3개국에 각각 축구공 1만 개씩 총 3만 개를 전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5월25일부터 6월1일까지 이 3개 나라를 순방했다. K스포츠재단 관계자들도 이 순방에 동행했다.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과 K스포츠재단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은 설립된 지 한 달 남짓한 신생 재단에 자신의 해외 순방과 관련된 사업을 맡기고 이를 최순실씨로부터 ‘직보’받았다. K스포츠재단 직원에게 보고받은 최순실씨가 이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박 대통령은 관련 지시를 안 전 수석에게 내린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씨→박근혜 대통령→안종범 수석’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또 한 번 확인된 셈이다. 박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의 인사와 사무실 장소, 함께 일할 컨설팅 업체 더블루케이(최순실씨 회사)까지 최순실씨 말을 그대로 읊은 게 수첩 곳곳에서 확인된다. 그날 ‘VIP’의 네 번째 안건은 ‘K-sport 이사장 월급:현실화’였다.

당시 제작한 축구공 샘플.


대통령이 K스포츠재단 이사장 월급까지 챙겨

K스포츠재단은 2016년 2월26일 대통령 지시 전에 재단 로고가 들어간 샘플 축구공을 제작했다. 〈시사IN〉이 입수한 당시 샘플 축구공 사진(위의 사진)을 보면 삼성·현대· LG·CJ·한화·부영 등 K스포츠재단 출연 기업들의 로고가 박혀 있다. K스포츠재단 내부 회의록을 보면, 2016년 2월26일 안종범 전 수석과 만난 정현식 당시 사무총장은 “이번 해외 순방 시 축구공 3만 개 전달하려고 한다. 비용이 꽤 소요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 전 수석이 “축구공에 (후원) 기업 로고는 넣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기업 출연 규모도 다 다르고 대기업들은 자체 홍보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라고 답했다. 안 전 수석은 “KOREA만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KOREA만 들어간 축구공 견본이 있으니 보내주겠다”라고 말했다. K스포츠재단 관계자는 “최순실 회장이 이후 자체 브랜드 샘플 공 제작에 대한 추가 지시를 하지 않았다. 순방 일정도 촉박해 더 이상 사업이 진행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실제 5월 아프리카 순방 때 삼성·현대차· SK·LG·롯데 등 5개 기업은 3개국 주민과 어린이에게 가방, 문구류, 유로 2016 공식 축구공 등 총 5만 점을 전달했다.

 

기자명 특별취재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