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일가가 사용하던 ‘대포폰(차명 휴대전화)’을 〈시사IN〉이 단독 입수했다. 하얀색 폴더형으로 세칭 ‘와인폰’이라 불리는 스마트폰이다. 모델명은 LG-F480S이었다. 겉에는 노란색 뽀로로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이 대포폰은 최순실씨가 주도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이하 동계영재센터) 관계자에게 지급된 스마트폰이다. 동계영재센터 설립 실무는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맡았다. 2015년 초, 최순실씨 일가에게서 동계영재센터 이사직을 제안받은 한 인사가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다. 장시호씨에게 직접 전화기를 건네받았다는 그는 뒤늦게 해당 휴대전화를 발견하고 〈시사IN〉에 건넸다. 그는 “이사직을 거절하면서 휴대전화를 돌려줬다고 여겼는데 뒤늦게 발견했다. 재판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 등이 여전히 책임을 떠넘기고 거짓말하는 것을 보고 진실 규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제보하기로 결심했다”라고 말했다.

 

장시호씨의 측근들은 그녀가 원래 쓰던 휴대전화 말고도 까만 폰과 하얀 폰을 가지고 다니고 여러 개를 사용해서 헷갈릴까 봐 일회용 반창고를 붙여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휴대전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2015년 2월부터 한 달가량 사용했다. 장시호씨가 동계영재센터 일을 제안하면서 이모(최순실)와 연락할 때는 이 폰을 쓰라고 했다. 내가 대포폰이라고 사용을 꺼리자 장시호씨가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장시호씨와 함께 살던 임이 ‘다 밀었다’라고 했다. 전에 최순실 쪽이 쓰던 폰이었지만, 데이터를 다 지워 깨끗한 폰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종합하면, 이 대포폰은 최순실 일가가 1차로 사용하고, 장시호씨 측근에게 건네진 다음, 제보자에게 넘어온 것이다. 제보자의 추가 설명이다. “최순실 일가는 대포폰을 많이 사용한다. 폰마다 통화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 원래 쓰는 휴대전화 말고도 최순실은 폴더형 빨간 폰, 하얀 폰, 장시호는 까만 폰, 하얀 폰을 가지고 다니는 걸 봤다. 워낙 여러 개를 사용하다보니 헷갈릴까 봐 저렇게 반창고를 붙여놨다. 다른 폰에도 다른 디자인의 반창고가 붙어 있다.”

〈시사IN〉이 디지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이 대포폰을 복원했다. 제보자가 건네받을 당시 폰에는 ‘회’ ‘짱’ ‘김’이라는 이름으로 번호 3개만 저장되어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회’는 ‘회장의 줄임말’로 최순실씨를 가리킨다. ‘짱’은 장시호씨다. ‘김’은 바로 구속된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을 뜻한다. 김 전 차관은 동계영재센터에 문체부 예산 6억7000만원을 배정하고 문화체육계 국정 현안을 최씨에게 보고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받고 있다.

실제로 제보자는 이 휴대전화로 최순실 회장, 장시호씨, 김종 당시 문체부 차관과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다. 제보자는 “저장된 세 사람 번호도 대포폰이란 걸 알게 됐다. 불법에 동조하라는 듯한 그들의 태도를 견디지 못하고 인연을 끊었다”라고 말했다. 대포폰 판매와 구매는 불법이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1억원 이하 처벌을 받는다.

 

ⓒ시사IN 이명익〈시사IN〉이 입수한 대포폰은 장시호씨(왼쪽 사진)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이사로 영입하려고 했던 제보자가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다. 최순실 일가가 사용했던 대포폰 안에는 최순실씨(오른쪽 사진)와 함께 제주 여행을 갔던 사람들의 번호가 남아 있었다. 이 중 한 명은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대포폰을 복구해보니, 2014년 12월부터 사용 내역이 살아났다. 휴대전화기 제조연월이 2014년 9월임을 감안하면, 사용 초기부터 복구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자 978통과 사진 71장이 나왔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였지만 인터넷 사용 기록은 거의 없었다. 카카오톡도 깔려 있었지만 역시 사용하지 않았다. 제보자는 “최순실 일가는 카카오톡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늘 보안에 신경 썼다”라고 말했다.

카카오톡 친구 명단에 최순실 측근 장순호

카카오톡 친구 24명 목록에 ‘장순호’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장씨는 최순실씨 측근이다. 최순실씨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장순호씨는 독일에 있는 최씨의 연락을 받고 더블루케이에서 가져온 컴퓨터 5대를 망치로 부수는 등 증거인멸에 동참했다. 2016년 2월29일 정현식 당시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 등이 박영춘 SK 전무를 만나는 자리에도 장씨는 동석했다. 이 자리에서 K스포츠재단 관계자들은 재단이 아닌 최순실씨가 세운 독일 회사 비덱스포츠로 80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대포폰을 복구해보니, 휴대전화의 첫 사용자는 장시호씨의 측근 임 아무개씨였다. 114에서 받은 ‘임 고객님의 이동전화번호에 가입되어 있는 유료 부가서비스는 총 1개입니다(2015년 2월13일)’와 같은 문자를 받았다. 임씨는 장시호씨와 함께 살며 장씨의 집사 구실을 했다. 임씨가 장씨를 위해 한 일 가운데 대포폰 개설도 있었다. 임씨의 한 지인은 〈시사IN〉과 전화통화에서 “임이 주변 친구들에게 명의 좀 빌려줄 수 있냐고 묻고 다녔다. 자기 명의로 폰을 만들 수 있는 개수가 다 찼다면서 여러 명에게 물어봤다”라고 말했다.

임씨는 실제로 〈시사IN〉이 입수한 휴대전화로 대포폰 개설을 위해 업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임씨는 2015년 1월30일 010-****-3838 번호와 암호 같은 문자를 주고받았다(아래 그림 참조). 임씨가 먼저 상대방에게 ‘5777 8777 9777’이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대포폰 개설 업자로 추정되는 상대방이 ‘4*** 4777, 4*** 5777, 3*** 5777, 4*** 8777’ 등의 문자를 임씨에게 연속으로 보냈다. 그러자 임씨가 이 중 숫자 하나를 고르고, 가격을 알려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해당 숫자는 전체 대화의 맥락상 휴대전화 번호로 보인다. 010을 생략한 채 번호를 요구했다. 이를테면 임씨가 상대방에게 전화번호 끝자리가 *777인 대포폰 개설이 가능한지 알려달라는 뜻의 문자를 보내자, 상대방은 관련 번호를 7개 보내주었다. 이렇게 번호를 몇 차례 더 주고받은 다음 가격을 흥정한다. 번호당 90만원이 넘어가는 ‘황금 번호’부터 9만원짜리 ‘저가 번호’까지 다양했다. 오랫동안 거래한 듯 임씨는 상대방에게 ‘전 디씨해주셔야저’라고 문자를 보냈다. 돈을 보내고 거래 종료를 선언하기까지는 90분 정도 걸렸다.  

상대방은 임씨에게 번호 이동 시 유의 사항도 알려줬다. ‘변경이 끝나봐야 알 수 있으나 간혹 문의한 번호가 없을 경우도 있으니 없으면 환불이나 다른 번호를 골라야 하고, 카카오톡은 기존 번호 대화 내용 사진이 다 지워지니 캡처나 메모를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소프트 앞으로 입금을 해달라며 계좌번호도 보냈다. 기자는 해당 번호가 정말 대포폰 업자인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폰을 만들고 싶다”라는 기자의 문의에 010-****-3838 번호 사용자는 전화를 잘못 걸었다고 답했다.

임씨는 〈시사IN〉이 입수한 대포폰으로 대부분 ‘유진이 언니(장유진:장시호씨의 개명 전 이름)’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010-****-1400 번호였다. 임씨는 ‘장유진’ ‘장’ ‘파’ 같은 이들의 비행기표 예매 내역을 캡처해서 이 번호로 보내고 확인받기도 했다. 장시호씨의 한 측근은 “장은 장시호의 아들, 파은 외국인 가정부”라고 말했다.

최순실씨 골프 멤버로 지목된 하정희도 등장

010-****-1400 번호가 장시호씨 대포폰임을 방증해주는 문자는 이 외에도 많았다. 장시호씨 개명 전 이름 ‘장유진’과 제주도 사무실 주소가 적힌 편지봉투 사진 등도 복구됐다. 장시호씨가 자신과 가까웠던 이가 구속되자 서울구치소에 위로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임씨는 또 최순실씨가 실소유한 카페 테스타로싸, 플레이그라운드 관계자 등과 ‘유진이 언니’ 지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현재 010-****-1400 번호는 신호가 갔지만 받지 않았다.

 

 

 

임씨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를 보면, 그가 최순실 일가의 일을 하면서 어떤 지시를 받고 어떻게 이행했는지 상세히 담겨 있다. 그중에는 ‘최서원’이라는 이름도 눈에 띄었다. 최서원은 2014년 최순실씨가 개명한 이름이다. 2015년 2월6일 18시23분 임씨는 010-****-1400(장시호 번호로 추정) 번호로부터 ‘하정희, 송, 최서원 일요일 11시 월요일 2시 대한항공 747’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장시호씨가 임씨에게 세 사람의 제주행 왕복 비행기 티켓 예매를 지시하는 문자로 보인다.

임씨는 세 사람의 제주 여행을 보좌했다. 연이어 장시호씨가 ‘최서원 5***-1010, 하정희 6***-1010, 송 4***-1010’이라는 짧은 문자를 보낸다. ***은 모두 같은 번호다. 즉, 휴대전화 번호 중간 부분 첫 자리 빼고 모두 같은 번호를 임씨에게 보내줬다. 비슷한 대포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하정희라는 이름은 고영태씨가 최순실씨와 함께 골프를 친 멤버로 지목한 인물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에 따르면, 하씨는 최순실씨와 경복초등학교 학부모 모임 멤버로 김종 전 차관과 최씨를 연결해줬다. 또 하씨는 한양대에서 강의를 하다가 순천향대 교수로 특혜 채용되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기자는 해당 번호로 각각 전화를 걸어봤다. 최서원씨 번호는 신호음이 가자마자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된다’는 안내가 나왔다. 하정희씨 번호는 ‘고객의 요청으로 인해 당분간 착신이 금지되어 있다’는 안내가 나왔다. 송씨 번호는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지만 남자 어린이였다.  

복구한 대포폰에는 승마 관련 문자도 있었다. 2015년 1월28일 12시11분 ‘승마협회 정산 내역 메일로 보냈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라는 수신 메시지가 복구되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장시호씨 실소유의 라임프로덕션은 2014년 11월 대한승마협회가 주최한 ‘승마 활성을 위한 FEI(국제승마협회) 국제교류포럼’ 행사의 대행을 맡았다. 라임프로덕션은 장시호씨 측근들이 사내이사로 올라 있다. 임씨는 이 회사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대한승마협회는 ‘최순실·정윤회 라인’이 장악한 상태였다. 이후 대한승마협회와 최순실씨 일가의 유착 의혹은 정유라씨 지원과 관련해 끊임없이 불거졌다.

장시호씨는 지난해 12월7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대포폰을 사용한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대포폰을 몇 개 쓰느냐는 장제원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지금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장 의원이 “하얀색 2G폰 2개를 쓴 적 있지 않으냐”라고 추궁하자 그제야 장씨는 “회사 직원들끼리 연락할 때는 그렇다”라고 인정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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