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보는 미국사〉
박진빈 지음
책세상 펴냄
미국 여행을 추천하면, 다들 반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뭐하러 돈 들여 미국을 ‘여행’하냐. 역사도 짧고 문화재도 별거 없는데. 그럴 바엔 유럽에 가지.” 그것도 뉴욕이나 그랜드캐니언이 아니라 시카고, 필라델피아, 세인트루이스 따위를 얘기하면 십중팔구는 인상을 찌푸린다. “너라면 한국 처음 여행하는 외국인에게 창원, 대전, 성남을 추천하겠니?”

낭만과는 거리가 먼 회색빛 공간이지만, 미국 사회와 미국이 주도한 20세기 후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시만큼 좋은 관찰 대상은 없다. 20세기 전반까지 미국은 연방정부보다 지역성이 더 중요한 공동체였다. 지역별 대도시는 인구 이동에 따른 갈등이 물리적으로 표출된 공간이었고, 이 갈등은 대개 연방정부보다 지역사회가 주도해 해결 혹은 무마했다. 저자 박진빈은 〈도시로 보는 미국사〉에서 지역별 역사를 서로 비교하며 미국 사회의 주요 정책적 변화를 읽어낸다.

책에 등장한 도시의 족적을 살피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수자의 눈물을 접하게 된다. 1919년 시카고 인종갈등, 세인트루이스의 공공임대주택 정책 실패, 로스앤젤레스의 아시아인 배격처럼 주요 역사적 국면마다 미국 지역사회는 소수 인종과 계급적 소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공간적으로 거주를 분리하고 정책 수단으로 이들을 공동체에서 배격하는 시스템은 오늘날도 여전하다. 미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2000년대 인기 드라마 〈더 와이어(The Wire)〉를 함께 보는 것도 추천한다. 〈더 와이어〉가 다룬 볼티모어의 속사정도 이 책에서 다루는 도시의 이면과 닮았다.

묘한 기시감이 든다. 한국 대도시, 특히 신생 도시는 점점 미국을 닮아간다. 자동차 중심으로 구획된 설계, 계급적 주거지역 분리, 지역 노조나 공공임대주택의 약화, 젠트리피케이션까지 미국 도시사는 그래서 우리에게 일종의 ‘거울’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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