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게이트보다 해로운 조류독감
  • 문정우 기자
  • 호수 488
  • 승인 2017.01.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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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이 번져 3000만 마리가 넘는 가금을 도살했다는 사실과 박근혜 게이트 중 어떤 게 더 심각한 뉴스일까. 박근혜 게이트가 가볍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뉴스가 한쪽으로만 쏠리는 게 아쉽다. 박근혜 게이트는 한 나라의 문제이지만 이 조류독감은 인류라는 종 전체가 당면한 도전이다. 이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유행한다면 그 피해 규모는 정치 스캔들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 것이다.

방역 담당자들이 가금을 가스로 질식사시켜 땅에 파묻는, 섬뜩하기 이를 데 없는 장면을 이 행성에 연출한 장본인은 바이러스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독감을 유발하는 플루 바이러스, 즉 인플루엔자이다. 천연두, 흑사병, 콜레라 같은 전염병에 비하면 그저 며칠 앓아누우면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가벼운 병 취급을 받던 이 독감이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고 나서다. 당시 스페인만 언론 검열이 없어서 전염병 창궐 소식이 자유롭게 전해지는 바람에 그런 이름이 붙었지만 이 독감은 세계적인 대유행병이었다. 미국 캔자스 주 해스켈카운티의 미군 병사 주둔지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이 병은 1차 세계대전 말

ⓒ한성원 그림
병사들과 함께 이동하며 전 세계로 퍼져나가 5000만명에서 1억명을 죽였다. 인플루엔자는 1957년과 1968년에도 세계에 대유행병을 일으켜 각각 200만, 70만의 인명을 앗아갔다. 1918년에 비해 전 세계 인구가 4배 이상 불어난 지금 또다시 비슷한 수준의 대유행병이 번진다면 3억5000만~10억명이 사망하리라고 과학자들은 예측한다.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전염병은 기후변화처럼 인간이 초래한 재앙일 가능성이 높다. 바이러스는 보수 성향이다. 좀처럼 숙주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사실 다른 숙주를 만날 기회조차 드물었다. 수백만 년 동안 한 숙주의 몸에서 평화롭게 살던 이 바이러스는 산업화와 세계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벌목과 난개발로 숙주의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덩달아 멸종 위기에 몰렸다. 숙주와는 달리 유성생식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번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 에일리언 같은 생명체(생명체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는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야생동물 밀거래, 자유무역을 틈타 새로운 숙주와 접촉을 늘려갔다.

그런 과정에서 인류에게 자기 이름을 가장 확실하게 알린 대악당은 에이즈 바이러스이다. 침팬지한테서 인간으로 옮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2500만명 이상을 죽였다. 이 밖에 에볼라, 지카, 메르스 따위의 소악당들 역시 숲을 뛰쳐나와 유명해졌는데 그 뒤에서 인간계에 데뷔하려고 기다리는 줄이 끝도 없이 길다. 야생동물의 서식지는 지금도 계속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바이러스가 종간 벽을 뛰어넘을 때 숙주는 큰 피해를 당한다.

인플루엔자는 조류와 돼지, 개, 말, 인간 등을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이다. 이 바이러스가 지금처럼 가금과 인간을 피투성이로 만드는 악마로 변하기까지에는 몇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전문가들은 중국 광둥성을 인플루엔자가 종간 벽을 뛰어넘을 가장 유력한 지역으로 보고 주목해왔다. 오래전부터 광둥성에서는 돼지·닭·오리가 조밀한 곳에서 북적대며 살아왔다. 네 다리 달린 것은 탁자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인의 유별난 식도락과 동종요법(질병 증상과 비슷한 증상을 유발시켜 치료하는 대체 의학) 신봉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세계에서 가장 큰 야생동물 거래 시장이 성업 중이었다. 야생동물과 가금이 함께 뒹구는 일도 흔했다.

광둥은 다른 쪽으로도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수출품 제조 지역으로 떠오른 것이다. 각종 장난감, 운동화, 스포츠 의류, 값싼 전자제품을 생산해 전 세계로 실어 날랐다. 인플루엔자 진화의 진원지로 의심받아온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기동력이 뛰어난 곳으로 변했다. 결국 1997년 광둥성에서 가까운 홍콩에서 어린 소년이 인플루엔자 변종인 H5N1에 감염돼 죽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H5N1은 종 도약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변종이다. 그런데도 종 도약을 이뤘다면 이론적으로는 녀석이 인간 독감 유전자와 재배열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이때부터 국제 공공의료 담당자들은 다시 치명적인 대유행병이 전 세계를 덮칠지 모른다는 악몽에 시달리게 되었다.

인플루엔자는 크게 A, B, C 세 종류로 나뉜다. B와 C는 오랫동안 인간 집단 속에서 순환하며 길들여졌다. 수세기 전에 A형에서 갈라져 나온 듯하다. C형이 통상 감기라고 부르는 질병의 원인이다. B형은 특히 어린이와 노인이 많이 걸리는 전형적인 겨울 독감이다. B형도 매년 많은 사람을 죽이지만 대유행병과는 무관하다. 문제는 A형이다. 아직 야생 상태이고 매우 위험하다. 물새와 오리류가 본래 고향인 놈들은 지금 다른 조류와 포유동물, 그리고 인간으로 횡단해가는 초기 단계에 있다.

인플루엔자를 들여다보면 작은 버섯과 대못 모양이 빽빽한 타원체임을 알 수 있다. 대못이 분자 사슬 3개가 얽힌 구조의 헤마글루티닌(Hemagglutinin·HA)이라는 단백질이다. 적혈구와 접합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버섯은 대못보다 수가 적은데 뉴라미니다아제(Neuraminidase·NA)라는 강력한 효소이다.

HA는 인플루엔자가 숙주 세포의 문을 따고 진입하기 위한 열쇠이다. 통상 A형의 HA는 물새의 창자 세포만을 열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 HA의 아미노산을 약간만 치환해도 인간 세포를 뚫을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인간과 A형 HA의 접촉 빈도가 높아지면 열쇠를 변형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바이러스가 이런 식으로 종 도약을 이루면 숙주 몸에 기생하는 다른 바이러스와 유전체를 재조합해 다른 숙주를 전염시킬 능력을 얻는다. 그러자면 자손 바이러스를 조합해 죽어가는 숙주에서 빠져나와야 하는데 그때 NA가 활약을 한다. HA가 솜씨 좋은 도둑이라면 NA는 유능한 탈옥수이다. 인플루엔자 A의 아형(subtype)은 바로 HA와 NA의 특징에 기초해 분류한다. 그게 1980년부터 채택된 HxNy란 명칭이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을 일으킨 종은 H1N1이다. 다행스럽게도 NA는 항바이러스 물질에 취약하다. 1993년 자나미비르(리렌자), 1997년 오셀타미비르(타미플루) 등 강력한 뉴라미니다아제 억제제가 개발돼 독감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이 두 가지가 지금까지 개발된, 조류독감의 급격한 발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유일한 약품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수억 마리를 학살한 이유가 '영문을 몰라 무서워서’라니

1997년 종간 장벽을 뛰어넘은 H5N1은 2004년 다시 한번 세계보건기구의 전문가들을 기절할 지경으로 몰았다. 타이 북부의 한 작은 마을에서 H5N1의 인간 대 인간 감염 첫 사례로 의심할 만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마을 주민은 닭을 방목하며 국민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투계에서 한몫 잡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소중한 닭들이 죽어 나자빠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열한 살 소녀 사꾼딸라가 병에 걸려 죽었다.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던 어머니 쁘라니도 비슷한 증상으로 죽었다. 국제 공공의료계는 두려움에 떨었다. 쁘라니의 몸속에서 발견된 바이러스가 변형되지 않아 호흡기를 통한 인간 대 인간 감염으로는 볼 수는 없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쁘라니가 딸의 체액과 지속적으로 접촉해 감염된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됐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2004년 쁘라니가 사망한 이후 10년이 넘는 동안 인간 대 인간 감염으로 죽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동물로부터 감염돼 사망하는 숫자는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렸다. 살인자의 대열에 H3, H4, H6, H7, H9의 아종이 가세해 경쟁 중이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H5N1을 비롯한 각종 조류독감 변종에 희생된 이들은 600명을 넘어섰다. 어느 것이나 치사율이 60%를 넘을 만큼 치명적이다.

공공의료 전문가들은 조류독감이 대유행병으로 번지지 않기를 기도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 방향으로만 치닫는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2025년까지는 공장형 양계를 방목형으로 대체한다는 방침이지만 중국·인도·타이·한국 등에서는 이런 일들이 아직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형편이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정정 불안으로 전 세계에서 6000만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 내전이나 경제 위기가 닥치지 않았더라도 세계 각국에서는 빈부격차가 심해져 도시 슬럼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었다. 이런 도시 빈민 밀집 지역에서 H5N1이 인간 대 인간 감염의 기교를 익힌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사막화, 습지 파괴, 관개수로 건설은 물새류를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형편이다. 그들과 가금류의 동선은 점점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물새에서 가금류로 건너가 변종이 된 바이러스는 방향을 역으로 틀어 활기찬 물새들을 흐물흐물한 고기 덩어리로 만들고 있다. 그 변종은 다시 가금류와 인간에게 돌아와 복수의 칼날을 휘두를 것이다. 4대강 사업과 올해 우리가 겪는 유례가 없는 조류독감 확산도 무관하다고 말하기 힘들다. 인간이 자연에 가한 충격은 인플루엔자를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로 만들었다.

공공의료 체계의 후퇴 역시 세계를 위험에 빠뜨렸다. 1990년대 이후 맹위를 떨친 세계화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공공의료 예산의 축소를 불렀다. 메르스 사태 때나 이번에 우리 방역 체계가 맥을 못 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조류독감의 거의 유일한 예방약이자 치료제인 타미플루 공급량을 민간 기업인 스위스 로슈 사가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세계보건기구가 방치하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H5N1이 종간 벽을 뛰어넘은 지 올해로 20년째이지만 연구는 199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실은 ‘정확하게 아는 게 없다’는 게 학계의 고백이다. 어떻게 해서 이 바이러스가 그렇게 신속하게 퍼지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옷이나 신발에 묻어가는지, 에어로졸처럼 공기 중에 퍼지는지, 고양이나 들쥐가 옮기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믿어지는가. 우리가 지금까지 산 생명 수억 마리를 학살한 가장 큰 이유가 영문을 몰라 ‘무서워서’라니. 이 분야에서 고전이 된 탁월한 책 〈조류독감〉을 쓴 마이크 데이비스에 따르면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대유행병의 도래를 기다리는 중이다. 고작 연못에 떠 있는 오리나 이웃집 고양이를 불안하게 쳐다보면서 말이다.

참고한 활자:〈조류독감〉(돌베개), 〈바이러스 대습격〉(알마), 〈음식과 요리〉(백년후),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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