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주진우·차형석·천관율·김은지·김동인·전혜원·김연희·신한슬 기자)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는 2015년 7월19일에서 2016년 10월28일까지의 대통령 지시,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티타임 회의 등에서 논의된 내용이 담겨 있다. 2014년 6월14일부터 2015년 1월9일까지 기록된 김영한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 등의 지시·회의 사항이 적혀 있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을 빼곡히 담은 두 기록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세월호’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정책조정수석으로 일한 안종범 전 수석의 기록에도 ‘세월호’가 등장한다. 2016년 3월6일 박근혜 대통령 지시를 의미하는 ‘3-6-16 VIP’ 문구 밑에는 테러방지법, 할랄 식품, 파견법 등 현안 가운데 ‘9. 세월호’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박 대통령이 어떤 맥락에서 세월호를 언급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메모 17일 뒤인 3월23일 서울행정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대통령비서실의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또 같은 달인 2016년 3월28일에서 29일 이틀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제2차 청문회를 열었다. 이에 앞서 2016년 2월26일자 ‘2-26-16 실수비’(이병기 당시 비서실장이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를 가리킨다) 메모에는 ‘8. 세월호 BH 자료 요구→자료 제출 불가’라고 적혀 있다. 특조위가 요청한 자료 제출을 거부하라고 지시한 내용으로 추정된다(아래 그림 1).
2015년 12월14일부터 사흘간 세월호 특조위가 제1차 청문회를 개최할 당시에도 청와대는 청문회 일정을 주시했다. 제1차 청문회 전날인 2015년 12월13일 ‘12-13-15 티타임’이라 적힌 메모의 1번 안건은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였다. 같은 날짜 메모에는 ‘6. 산케이’도 적혀 있는데, 이 메모 나흘 뒤인 2015년 12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기사화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청와대는 추가 대응을 하지 않기로 했다. 2016년 1월15일 ‘실수비’에도 ‘3. 세월호 특위’가 등장한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특조위를 탄생부터 지속적으로 방해했으면서도 일정을 챙기며 동향을 주시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민정수석으로 일한 김영한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청와대의 인식이 훨씬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14년 10월27일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을 의미하는 ‘長(장)’이라는 글자 옆에 ‘세월호 인양-시신 인양 X, 정부 책임, 부담’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게 대표적이다. ‘시신 인양은 정부에 부담이 되므로 안 된다’는 취지의 지시를 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어서 논란이 되었다.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이 부분을 집중 추궁받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당일 오전에는 “작성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도 가미돼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가, 오후에는 “시신을 인양하지 않으면 오히려 정부에 부담된다는 취지였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세월호는 일관되게 책임 회피와 공작의 대상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세월호는 일관되게 책임 회피와 공작의 대상이었다. 2014년 7월3일 김기춘 비서실장은 ‘세월호 참사 원인’에 대해 ‘청와대 보고, 그 과정의 혼선 X’라고 말한 것으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 기록되었다.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를 보면, 2014년 7월13일 김기춘 비서실장은 세월호 특조위의 법적 근거인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국난 초래’ ‘좌익들 국가기관 진입 욕구 强(강)’이라고 규정했다. 2014년 10월11일 김기춘 비서실장을 뜻하는 장 옆에는 ‘세월호 특별법 예외적인 法(법), 보상 형평성. 과거-미래 先例(선례)-치밀한 검토’라고 쓰여 있다. 희생자 가족이 원했던 진상규명과는 동떨어진 목적으로 세월호 특별법을 바라본 것이다. 진상규명 과정 자체에도 직접 개입했다. ‘세월호 감사원 감사 결과-전원구조 발표→감사원 발표 시기’(2014년 9월16일)처럼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민정수석실은 독립기관인 감사원의 세월호 참사 감사 동향도 확인했다.
세월호 특조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2014년 11월28일 김영한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서도 잘 드러난다. 업무일지는 ‘세월호 진상조사위 17명-부위원장 겸 사무총장, (정치지망생 好)’라고 적고 그 밑에 ‘②석동현 ①조대환’이라고 썼다. 새누리당은 그해 12월 여당 몫의 특조위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으로 조대환 변호사, 비상임위원으로 석동현 변호사를 선정했다. 조대환 변호사는 세월호 특조위를 ‘세금 도둑’이라고 비난하며 해체를 주장하다 사퇴했다. 박 대통령은 직무정지 전 마지막 인사로 조대환 변호사를 민정수석으로 임명했다. 석동현 변호사는 20대 총선에 새누리당 부산 사하을 예비후보로 활동하다가 공천에서 배제되면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적대적 시선 역시 곳곳에서 확인된다. 2014년 8월22일 김기춘 비서실장을 의미하는 ‘장’ 옆에 ‘세월호 유가족(학생 유가족) 外(외) 기타 유가족 요구는 온건. 合理的(합리적) 이들 入場(입장) 반영되도록 하여 中和(중화)’라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업무일지에 적었다.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0일간 단식을 벌이다 병원에 이송된 다음 날인 2014년 8월23일 ‘장’ 옆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자살방조죄. 단식 생명 위해행위. 단식은 만류해야지 부추길 일 X. 국민적 비난이 가해지도록 언론 지도(왼쪽 그림 2)’ 이른바 세월호 유가족 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김기춘 비서실장이 한 지시는 이렇다. “세월호 유가족 폭행-월요일 지휘-기민하게 일하도록→지휘권 확립토록.” 민정수석실은 또 세월호 유가족을 변호한 변호사들의 사법연수원 기수, 출신 지역, 학력, 주요 경력을 파악하기도 했다. 최순실씨 민원에는 그토록 기민했던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는 굼뜨고 특조위 방해와 유가족 적대에는 ‘기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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