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주진우·차형석·천관율·김은지·김동인·전혜원·김연희·신한슬 기자)

 

지난해 7월15일,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기지 예정지로 선정된 경상북도 성주를 찾았다.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방문이었지만 오히려 성난 민심에 기름을 들이부은 꼴이 되고 말았다. 마이크를 잡은 황 총리를 향해 생수병과 달걀이 날아들었다. 황교안 총리는 도망치다시피 버스에 올라탔지만 주민들에게 가로막혔다. 황 총리 일행은 6시간이 넘게 포위돼 있다가 주민들의 시선을 따돌린 후에야 겨우 ‘탈출’했다.

기다렸다는 듯 ‘외부세력’론이 불거졌다. 보수 언론들은 황 총리 방문 때 벌어진 소동을 폭력 사태로 규정하고, 이를 ‘전 통진당 관계자’ ‘시위꾼’ 등 외부세력이 조장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경찰도 보조를 맞췄다.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성주군민 외에 타지에서 그날 행사에 참석한 사람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신원 특정 중인 단계다”라고 말했다. 정작 성주 주민들은 “외부세력은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사람들뿐이다”라며 보수 언론의 보도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사IN 조남진지난해 7월14일 성주 사드 배치 반대 촛불집회에서 중고생들이 사드 배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안종범 업무수첩에 ‘정대협 실체’ 메모도

 


〈시사IN〉은 청와대가 ‘외부세력’ 프레임으로 성주 주민들의 반발에 대응하려 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 적힌 ‘7-19-16 실수비’ 메모를 보자. 이는 ‘2016년 7월19일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실수비)’를 뜻한다. 안 전 수석은 ‘성주 집회 학생 400명. 외부세력 대처’라고 썼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성주 주민의 시위를 외부세력에 의한 선동으로 왜곡하고 여기에 ‘종북’ 딱지를 붙여 반대 투쟁을 약화시키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런 논의를 한 날 KBS는 〈9시 뉴스〉에서 ‘경찰, 성주 시위 외부 인사 참가’라고 보도했다. “황교안 총리 방문 때 성주군청 앞 폭력 시위 현장에 전 통진당 관계자 등 외부 단체 인사 10여 명이 참가한 것이 경찰에 의해 확인됐다”라는 내용이다. 주목할 점은 보도가 나간 뒤, ‘윗선’의 압력에 따라 제작됐다는 내부 고발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7월20일, KBS 사내 게시판에는 KBS 전국기자협회 명의의 성명서가 하나 올라왔다. “〈문화일보〉의 ‘성주 시위에 외부세력 개입 확인’ 기사가 나간 뒤 이를 리포트로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기사는 오보였고 확인된 건 단지 ‘통진당 등 정당인들이 시위 현장에서 목격되었다’는 것뿐이었다.” “대구총국 취재 데스크가 리포트를 거부했으나 네트워크 부장이 ‘리포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윗선의 지시를 인정했다.” KBS 기자들은 또 “갑작스러운 사드 배치 발표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보도지침’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KBS 사측은 “성주 외부세력을 부각시키라는 KBS의 보도지침과 윗선의 부당한 지시는 존재하지 않았고, 당시 KBS 전국기자협회의 성명서는 5시간 만에 자진삭제 됐다”라고 해명했다. 반면 KBS 기자협회와 전국기자협회 관계자는 “성명서에 쓴 내용 자체는 틀린 부분이 없다. 다만 ‘보도지침’ 등 몇몇 표현이 오해를 살 수 있을 것 같아 성명서를 내리게 됐다”라고 말했다.

한편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는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 직후 청와대의 태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내용도 나온다. 안 전 수석의 ‘2016년 1월4일 티타임 때 논의’를 뜻하는 ‘1-4-16 티타임’ 메모를 보자. 안 전 수석은 ‘국정 과제’나 ‘체감경기 악화 민심’ ‘창조경제 홍보’ 등을 적은 뒤 ‘10 정대협 실체’라고 썼다. 티타임 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실체를 논의했다는 뜻이다. 2015년 12월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부터 정대협은 “피해자들과 국민들의 바람을 철저히 배신한 외교적 담합”이라며 협상 무효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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