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세 가지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좋은 제목은 내용을 요약하고 있으며, 다른 책과 차별 짓게 해주며, 독자를 유혹해야 한다. 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의 〈밧줄〉(바다출판사, 2015)은 요약과 차이라는 두 가지 기능은 완수했으나, 유혹에는 실패한 제목이다. 이런 경우 ‘띠지’에 적힌 문구가 제목의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다.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바닥에 밧줄이 하나 놓여 있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소설에 대한 독후감을 쓰면서 매번 작품의 내용부터 요약하는 일은 성가시다. 하지만 자칫 이 작업을 너무 소홀히 하면 방백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게 될 독자와 내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줄거리는 공유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줄거리 요약을 핑계로 원고지를 쉽게 메울 수 있으니 이 일도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밧줄〉에 관한 한 그럴 필요가 없겠다. 밧줄이 떨어져 있던 곳은 농가 스물세 채와 밀밭 그리고 목장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며, 이 마을은 울창한 숲에 빙 둘러싸여 있다. 이웃 마을은 망망대해와 같은 숲속에 작은 섬처럼 흩어져 있을 것이다.

우의(寓意·allegory)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언뜻 동화처럼 읽힌다. 이 작품은 두 가지 간편한 해석을 허용하는데, 먼저 이 작품의 장소라고 할 수 있는 숲은 우리를 역사적 알레고리로 이끈다. 각 나라나 민족은 자신의 정체성을 기탁하는 지리적 심상을 가지고 있다. 영국은 바다, 스위스는 산, 유대인은 사막(광야), 독일은 숲이다. 숲을 뜻하는 독일어 발트(wald)를 모른 채 독일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는 단언이 있을 만큼 숲은 독일인의 삶과 문화에 단단히 밀착되어 있다. 그러면 프랑스는 평야일까? 엘리아스 카네티는 독일인의 숲에 해당하는 프랑스인의 집단 상징은 혁명이라고 한다. 한국에도 세계인을 놀라게 한 촛불이 있다.

ⓒ이지영 그림
마을 사람들은 시커먼 숲을 향해 길처럼 뻗어난 밧줄의 정체를 놓고 회의를 한 끝에, 밧줄 끝을 찾아가는 원정대를 꾸렸다. 여자와 노약자만 남겨놓고 원정에 나선 남자들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밧줄을 따라 기약 없이 숲속을 헤매게 된다. 소풍과 같았던 첫째 날이 지나가고 이틀째부터 굶주림과 분열을 겪게 된 원정대는 나흘째 되던 날, 사람이 살지 않는 텅 빈 마을을 발견하고 빈집에 들어가 마음껏 약탈을 한다.

크게 눈에 띄는 주인공이 없는 이 작품에서 라우크는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인물이다. 먼 마을에서 온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떠돌이 교사로, 우연히 원정대에 합류한 다음 비범한 지식과 화술로 원정 이틀 만에 지도자가 된다. 사냥개 두 마리를 거느린 라우크는 원정대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 때나 지쳤을 때마다 달콤하고 힘찬 뿔피리를 부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뿔피리를 불면서 “우리한테는 단 하나의 슬로건만이 존재하오. 전진! 계속 전진!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라고 독촉하는 이 인물의 원형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이고, 피리 부는 사나이의 현대적 번안은 히틀러다. 이웃 마을에서 온 라우크가 뿔피리를 부는 지식인이었던 것처럼, 히틀러 역시 이웃 나라(오스트리아)에서 온 화가이자 엄청나게 난독을 한 독서가였다. 그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는 이본 셰라트의 〈히틀러의 철학자들〉(여름언덕, 2014)과 티머시 W. 라이백의 〈히틀러의 비밀 서재〉(글항아리, 2016)에서 확인할 수 있다. 라우크의 선동에 따라 텅 빈 마을을 약탈하는 마을 사람들은 독일 민족의 생활공간 확보라는 허울로 동부 유럽을 침공했던 히틀러와 나치를 떠올려준다.

〈밧줄〉
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 지음
강명순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는 어리석음

숲이 〈밧줄〉을 잊고 싶은 독일의 과거사로 인도했다면, 밧줄은 우리를 신화적이고 묵시적인 알레고리에 빠트린다. 밧줄은 형태상으로 뱀과 닮았으며 실제로 이 작품에서 밧줄이 하는 역할이 유혹이었다는 것을 상기할 때, 밧줄은 뱀의 은유다(작가는 이런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모양새만 보면 딱 기어가는 뱀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 뭐란 말인가?”). 밧줄의 끝 모를 유혹에 이끌린 마을의 장정들은 숲속에서 늑대의 습격을 받거나 서로를 죽이고 뿔뿔이 흩어진다. 그사이에 오랫동안 마을에 남아 있던 여자들과 노약자들은 원정대를 기다리다 지쳐 다른 마을을 찾아 떠난다. 작중에 나오는 두 개의 텅 빈 마을은, 밧줄(뱀)이 여기저기 출몰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행은 동화마다 등장하는 주요 모티브다. 보물을 찾아 떠나는 동화 속의 여행은 온갖 통과제의적 고행 끝에 내적 성숙을 이루게 된다. 거기에 비하면 황금 양털이니 성배(聖杯)니 불로초니 하는 것들은 모두 내적 성숙에 부수된 하찮은 장식이다. 이런 동화 양식과 비교해본다면 〈밧줄〉에 동화적 요소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은 여행의 끝에서 환멸을 마주하고 마는 소설이지 결코 동화가 될 수 없다. 추수기도 팽개친 채 밧줄의 끝을 찾아 숲을 헤매었던 마을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은, 원래의 밧줄과 열십자(十) 형태로 엇갈린 채 지나가는 또 다른 밧줄이다. 이 작품에서 열십자는 구원이 아닌 절망과 혼란의 표식이다. 동화에서라면 열십자를 얻은 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행복한 결말을 맞겠지만, 이들에게는 집으로 돌아갈 기력도, 돌아갈 집도 없다.

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은 이 작품을 출간한 2014년, 〈거인〉(바다출판사, 2016)도 함께 발표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틸먼은 열여섯 살에 199㎝이던 키가 계속 자라나 서른 살에는 3m에 이르렀다. 우리는 우리가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신체와 다른 신체를 가진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신체에만 관심이 있지 그가 가진 교양과 내면에는 무관심하다. 작가는 피아노와 책 읽기에 몰두하는 거인의 생애를 제시하는 것으로 틸먼의 부모와 이웃은 물론 사회 전체가 장애인에 대해 집단적으로 놓치고 있는 비가시적 진실을 드러낸다. 이럴 때는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라는 구호가 폭력이다. 최소주의적인 접근을 취하는 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의 소설은 작가의 본직인 직업 외교관이 놓여 있는 특수한 작업환경과 능률적이고 정확한 업무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사족이다. 히틀러는 오해 될 게 없는 인물이지만, ‘거짓말쟁이 선동가’의 대명사인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본디 민중의 영웅이었다. 궁금하신 분에게 아베 긴야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한길사, 2008)를 권한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페미니즘 이슈와 젠더 감수성이 후보와 정책을 판별하는 기준이 되었으면 좋겠고, 여성을 비하하는 미스(Miss)라는 멸칭이 사라지는 원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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