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얀 그의 피부 위로 광채가 나고 있었다.” 비평가 밥 스탠리의 표현대로 ‘웨이크 미 업 비포 유 고고(Wake Me Up Before You Go-Go, 1984년 빌보드 차트 1위)’의 뮤직비디오에서 조지 마이클은 재능과 자신감으로 충만해 보였다. 듀오 그룹 ‘왬(Wham!)’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조지 마이클은 이후 독립을 선언했고, 솔로 데뷔작 〈페이스(Faith)〉 (1987)로 곧장 슈퍼스타덤에 안착했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서만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을 네 개나 쏘아 올렸다. 그것은 ‘1980년대의 표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마이클 잭슨, 프린스, 마돈나에 비견되는 성취였다.

조지 마이클은 〈페이스〉 이후에도 굉장했다. 〈리슨 위다웃 프레저디스(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1990)은 음악적인 야심을 인상적인 장악력으로 통제하는 데 성공한 앨범이었고, 무려 6년 뒤에 발표한 3집 〈올더(Older)〉에서는 제목만큼이나 더 깊어진 세계를 들려주었다. 그 사이에 그는 프레디 머큐리 추모 콘서트에 참여해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를 거의 완벽한 가창력으로 소화해냈다.

그런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한국에서는 언제나 조지 마이클의 음악적인 측면에만 포커스를 과도하게 맞춰왔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폴 매카트니, 엘턴 존으로 이어지는 영국 출신 위대한 작곡가의 계보를 잇는 송라이팅 재능이나 속된 말로 ‘시디를 먹은 듯한’ 라이브 실력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그의 존재감은 잘생긴 얼굴과 음악적인 영역 모두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일례로, 그는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보수성이 극에 달했던 때에 명성을 얻은 동성애자 가수였다. 게이나 퀴어가 에이즈라는 질병과 동일시되던 그 혹독한 시절에 조지 마이클은 자기 자신이 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후에도 그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 변명하지 않았고, 도리어 그것을 떳떳하게 밝히며 LGBT(성 소수자) 커뮤니티에 횃불을 가져다주었다.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행동함으로써 누군가에게는 불편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숙명을, 당당한 태도로 받아들인 결과였다.
 

ⓒAP Photo‘시디를 먹은 듯한’ 라이브 실력의 조지 마이클.

인종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백인 가수는 흑인의 음악을 ‘착취’하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는데, 그는 백인이었음에도 흑인 음악을 그 누구보다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알았다. 어쩌면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솔풀(soulful)’했던 가수였다. 실제로 그는 〈페이스〉를 통해 빌보드 블랙 앨범 차트에서 1위에 오른 최초의 백인 가수가 되었고, 이를 통해 마이클 잭슨이 그랬던 것처럼 흑인과 백인 간의 오랜 경계를 무너뜨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솔의 여왕’ 어리사 프랭클린이 괜히 그와 함께 듀엣으로 ‘아이 뉴 유 워 웨이팅(I Knew You Were Waiting)’을 녹음한 게 아니다.

블랙 앨범 차트에서 1위 한 최초의 백인 가수

조지 마이클은 ‘왬’ 시절부터 그랬다. 슬로건 티셔츠의 대명사라고 할 ‘CHOOSE LIFE!’를 입고 등장한 그때부터, 영국 광부들의 보조금 문제를 위해 무대에 올랐던 그때부터, 매니지먼트사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미심쩍은 관계에 있다는 걸 알고는 계약을 해지해버린 그때부터, 조지 마이클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노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 그는 거대 음반사의 횡포에 맞서 법정투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3집을 내기까지 6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무엇보다 그는 설령 논란이 있더라도, 지루한 평화에 안주하는 대신 논란의 핵심으로 다가서기를 주저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이 세계는 완전히 망했어요.” 1986년 ‘왬’이 해체하고 난 뒤 조지 마이클은 영국 음악 잡지 〈NME〉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긍정적인 것보다 모든 부정적인 것이 더 빨리 진행되고 있죠”라고 덧붙였다. 슬프게도, 그가 희망했던 세계의 꼴은 현재에도 아직 요원해 보인다. 그의 이른 죽음이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진심으로 마이클 잭슨과 함께 나에게 팝의 매력을 처음 알려준 그의 명복을 빈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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